그날은 예상치 못한 소나기가 내렸다. 아무런 각오도 준비도 하지 못한 채 홀딱 젖고선 하늘만 원망했다. 아니! 비 온단 말 없었잖아! 허공에 흩날리는 외침은 끝내 하늘까지 닿지 못했다.
가림막 하나 없는 거리에 덩그러니 놓인 나는 대자연 앞에 힘없이 날리는 나뭇잎과 다를 바 없었다. 외롭고, 무능했다. 그리고 바뀌지 않는 현실을 탓하는 찌질한 모습까지. 이윽고 체념하고 돌아와 옷과 머리를 말렸다. 비참하지만 달리 방도가 있는 건 아니다. 그저 젖은 몸과 옷이 다시 뽀송해지길 기다리고 또 기다릴 뿐.
예고 없이 찾아온 소나기는 짧은 순간 나에게 많은 불행과 불편을 던져주고 사라진다. 세상살이도 이와 같지 않을까. 모든 계획은 변수의 반복으로 변화하지 않던가. 어릴 적 절대로 지켜지지 않던 방학 생활계획표, 시험기간 동안 열심히 준비하겠다는 짧은 각오도 수차례의 방해와 변화로 결과는 달라지곤 한다. 그리고 우리의 불확실한 미래는 늘 계획과는 다른 모습과 형태로 다가오고, 그것을 직면하는 순간 공황상태에 빠지곤 한다.
인생의 시험과 불행들은 찰나의 순간에 몰아치고,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해 좌절한다. 소나기에 홀딱 젖은 듯이. 익숙해질 법도 한데 아직도 버겁고 힘들다. 어떻게든 이겨내자! 이 또한 지나가리, 생각하고 넘기면 또 날씨 흐림.
하지만 젖은 머리를 말리면서 창문을 바라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화창한 날씨가 펼쳐져 있다. 비 온 뒤 하늘은 너무도 푸르고 맑다. 이것이 바로 자연의 섭리다. 늘 소나기 같은 불행 뒤에 맑은 하늘이 기다리고 있었음을, 너무 강렬한 충격에 헤어나지 못해 차마 보지 못했던 것이다. 사실 소나기는 치열한 현실의 열기를 식히라는 하늘의 작은 배려가 아니었을까. 잠깐 젖고, 천천히 기다리면 땅은 곧 단단히 굳고 옷은 다시 깨끗하게 마를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