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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가장 Apr 02. 2020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

[서평 40] 보다 _김영하 지음


  “보다”는 살인자의 기억법으로 잘 알려진 김영하 작가의 에세이 모음집이다. 타인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언제나 흥미롭다. 내가 에세이를 읽는 이유다.  이번 책 ‘보다’에는 삶과 죽음, 인생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담겨있다. 인류가 존속하는 한 ‘삶과 죽음, 인생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리 꺼내도 마르지 않는 화수분일 것이다. 더구나 김영하는 소설가이지 않는가. 그의 생각이 더욱 궁금했다.


이번 책 '보다'에서는 '말'보다 다양한 '생각'이 담겨있다



  #1. 사람 보기


  첫 이야기는 부자와 빈자를 가르는 것으로 시작했다. 도구는 시간이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스마트폰 중독을 ‘시간’의 관점에서 사회문제를 연결해 풀어냈다. 이밖에도 이 책에는 부자와 빈자에 대한 이야기가 여러 번 등장한다. 서로 다른 소재를 통해 풀어냈음에도 모두 공감가는 이야기였다.


  이번 책에서 특히 놀랐던 점은 작가가 영화를 해석하는 깊이였다. ‘신세계’를 통해 바람직한 아버지의 모습을 고민하고, ‘그래비티’에서 에피쿠로스적 계시를 끌어와 영화를 설명하는 부분은 감탄하며 읽었다. 같은 영화를 보면서 내가 느낀 건 고작, ‘재밌다’ 정도였는데 말이다.


  추석을 ‘농촌의 명절’이라는 관점에서 변해가는 사회상을 꿰뚫어 설명하고, 영화 ‘아무도 오지 않았다’를 통해 미래의 아버지 상은 어떠할지 가름해보는 모습에서 세상과 사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흔적이 느껴졌다.



  #2. 세상 보기


  사실 이번 책은 ‘소설가 김영하’의 에세이였기 때문에 읽게되었다. 책을 읽기 전 그 안에 다채롭고 아름다운 표현이 많이 녹아든 에세이였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했다. 실망(?)스럽게도 기대했던 소설스러운(?) 표현은 별로 없다. 대신, 세상과 사람을 대하는 작가의 진지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요리프로그램으로 비유하자면, 이번 책은 김영하라는 유명 셰프가 방송을 위해 치밀하게 준비해서 화려하게 셋팅한 요리라기보다는 카메라가 꺼지고 스태프를 위해 뚝딱뚝딱 차려낸 담백한 집 밥 같은 느낌이다.


  이번 책에서 다룬 세상이야기는 대부분 여운이 남는 이야기였다. 특히, 인상적인 두 챕터를 꼽자면 바로 ‘시간 도둑’과 ‘택시라는 연옥’이다. ‘시간 도둑’에서 스마트폰을 소재로 시간을 빼앗기는 자와 그 시간을 가져가는 자로 계층을 구분 하여 사회구조를 설명한다. 시간을 가진 자가 부와 여유를 갖게 된다는 설명은 신선한 접근이었다.


  ‘택시라는 연옥’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다. 택시요금 인상처럼 조금은 민감한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그 원인을 작가스럽게(?) 파고들어간다. 특히, 택시를 연옥에 비유한 것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택시의 도입부는 소설에나 등장할 법한 사회를 소개하며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당긴다. 본론부에서 택시를 천국과 지옥의 중간인 연옥에 비유한 것은 소설가다운 발상이라 생각했다. 멋진 표현이었다.


택시는 그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도, 그것을 이용하는 승객에게도 큰 만족을 주지 못한다. 그런데도 택시는 사라지지 않는다. 아무도 좋아하지 않지만 언제나 거기 있는 존재, 그것이 택시다. 천국도 지옥도 아닌, 택시는 교통수단 세계의 연옥이라 할 수 있다. - 보다(김영하) - 



  #3. 소설가가 에세이를 쓴 이유


  끝으로 ‘작가의 말’을 옮기며 서평을 마무리 하고 싶다. 책의 맨 끝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소설가 김영하’가 왜 에세이를 쓰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한동안 나는 망명정부의 라디오 채널 같은 존재로 살았다. 소설가가 원래 그런 직업이라고 믿었다. 국경 밖에서 가끔 전파를 송출해 나의 메시지를 전하면 그것으로 내 할일은 끝이라고 생각했다. 2012년 가을에 이르러 내 생각은 미묘하게 변했다. 제대로 메시지를 송출하기 위해서라도 내가 사는 사회 안으로 탐침을 깊숙이 찔러 넣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보는 것, 듣는 것, 경험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글로 표현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보다(김영하) - 
그래서 아주 오랜만에 고정적으로 여러 매체에 동시에 기고하기로 마음먹었다. 정해진 마감일에 맞춰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보고 경험하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숙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깊이 생각하고 그것을 정연하게 써내도록 스스로를 강제하게 된다. 그렇게 적은 것을 다시 보고 고치는 것이 그 마지막이다. 이 순환이야말로 한 사회와 세상을 온전히 경험하는 방법이 아닐까.- 보다(김영하) - 



  #4. 작가 김영하에서 지성인 김영하로


  나는 이 책을 통해 ‘소설가 김영하’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는 그저 인기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다. 감히 나는 그를 ‘이 시대의 아픔을 함께 고민하려 무던히 애쓰는 지성인’이라 부르고 싶다. 이번 책 ‘보다’는 그런 그의 노력이 담긴 소중한 결과물인 셈이다. ‘보다’와 함께 시리즈로 펴낸 ‘말하다’와 ‘읽다’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작가 김영하의 생각을 더 살펴보고 싶어졌다. 지금도 어디선가 누군가는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것들을 자기만의 관점에서 진지한 고민으로 꾹꾹 눌러 담고 있을 지성인 김영하를 기대한다.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은 언제나 흥미로운 법이니까.


지성인 김영하의 진지하지만 진부하지 않은 진짜 진심을 기대해 본다


* 본 서평은 책의 내용을 옮겨적고, 개인적인 생각을 덧 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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