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서 산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가장 May 02. 2020

비워낼수록 채워지는 행복

[서평 42-1] 굿 라이프 _ 최진철 지음


행복한 무소유의 방법


# 버릴수록 더 많이 얻을 것이다?


  “네 안의 불필요한 욕심이 고뇌와 번민을 불러일으킬지니, 내려놓아라. 버리고 또 버리면 더 큰 만족과 더 깊은 평안을 얻으리라.”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본 얘기 같지 않으세요? 하지만, 말이 쉽지 내가 가진 걸 내려놓는 다는 게 어디 쉽나요?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내려놓음’은 소위 깨우침을 얻은 고귀한 분들만 할 수 있는 숭고한 삶의 방식이라고 치부해버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그들과 선이라도 그어야 ‘내가 못하는 것은 내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분들이 너무 뛰어나기 때문이야. 그러니 나는 괜찮은 거야. 부족한 게 아니야.’라고 위로라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과연 내려놓으면 더 큰 만족을 얻을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내려놓아야 하는 걸까요? 역사 속 위대한 인물들처럼 처자식 다 버리고 저 깊고 깊은 산속 떠나버려야만 행복할까요? 설령 홀연히 떠나버린 아빠는 행복하다 하더라도 평생 아빠를 그리워할 아내와 아이들도 과연 행복할까요?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한 일상 속에서 ‘무소유’를 실천할 방법은 없을까요? ‘무소유’를 통해 행복해질 방법은 정녕 깨달음 밖에 없나요?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 무엇을 버려야 하나?


  버려야 행복하다면, 무엇을 버릴지 부터 생각해 봅시다. 결론적으로, 행복한 사람은 소유보다는 ‘경험’을 중시합니다. 물건을 사더라도 그 물건이 제공하는 경험을 얻기 위한 소비를 하는 사람 말입니다. 반대로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물건 그 자체를 소유하기 위해 소비하는 사람입니다. 심지어 경험을 통해서도 그 경험을 소유화, 물질화 해버립니다. 다음을 한번 보시죠. 이모와 조카가 식당에서 나누는 대화 입니다.


“그런데 내 기억 속에는 왜 니네 이모부가 하나도 없을까. 마치 나 혼자 다녀온 것 같아. 이모부는 말야. 어디서든 사진 세장만 찍으면 끝이야. 내 사진 한 장. 자기 사진 한 장. 그리고 우리 둘이 찍은 사진 한 장. 그리고 밤이면 호텔로 돌아와 그날의 지출과 내일의 예상 지출을 계산해서 지갑을 정리하고 나면 곧바로 잠이 든단다.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에는 말야. 또 밤마다 앉아 찍어온 사진을 앨범에 정리하는 거야. 내 사진, 자기 사진, 우리 둘 사진, 페이지 하나에 똑같은 배경의 사진 석 장을 나란히 붙여놓고는 다음 페이지에 또 내 사진, 자기 사진, 우리 둘 사진...다녀와서 얼마 동안은 집에 손님이 오면 언제나 그 앨범을 내오곤 했어. 여기가 그 유명한 로마 스페인 광장. 여기는 파리 노트르담 성당. 여기는 영국 런던탑...” - 모순 (양귀자 지음) -


  소설 ‘모순’의 주인공 ‘안진진’에게 이모가 자신의 여행 경험을 이야기 하는 장면입니다. 이모는 자신의 여행 경험을 조카에게 푸념하듯 얘기 합니다. 작가는 이런 이모의 여행 경험을 ‘사진만 있고 추억이 없는 이모부, 제목만 있고 본문이 없는 속이 텅텅 빈 기이한 소설책’이라고 표현합니다. 인상적인 비유입니다.


  경험을 늘리기 위해 무작정 여행만 하는 것이 답은 아님을 말씀드리고 싶어서 인용했습니다. 소중한 사람과의 여행에서 단순히 나중에 자랑하기 위한 사진만 찍는다면 과시하기 위한 비싼 시계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여행지'는 과연 누가 정한 걸까요? 그런 곳을 남들 따라 휩쓸리며 여행하면 과연 더 행복할까요?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음식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며, 빨리 ‘좋아요’를 누르라며 휴대폰만 바라보는 모습은 이제 낯설지 않은 풍경입니다. 차라리 그 시간에 곁에 있는 소중한 이의 눈을 바라보고, 허리를 숙여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따뜻한 미소로 공감했다면 어땠을까요? 차가운 휴대폰 속 ‘좋아요’ 한 개가 아닌, 따뜻한 표정과 반짝이는 눈빛으로, 그리고 다정한 몸짓으로 결코 잊을 수 없는 세상 가장 따뜻한 ‘좋아요’를 백만 개 쯤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행복한 삶을 위해 우리는 이처럼 ‘살아 숨 쉬는 경험’을 가져야 합니다. 반대로 불필요한 과시욕은 버려야 합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경험은 ‘속이 텅텅 빈 기이한 소설책’일 뿐입니다. 이런 경험은 차라리 ‘무소유’하는 편이 낫습니다. 우리는 소유에 대한 관점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치렁치렁 달고 다닐 장식품이 아닌, 경험을 위한 소유, 관찰하기 위한 소유, 시간을 사기 위한 소유로 프레임을 전환할 필요가 있습니다. 버려야 할 것은 남과의 비교와 이를 통해 인정받고 싶은 과시욕입니다.



# 무소유를 소유할 수 있는가?


  뜬 구름 잡는 소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무소유를 통해 진정한 행복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소유’를 위해 지금 가진 물건을 죄다 내다 버릴 필요는 없습니다. 무소유를 통한 행복은 물건의 많고 적음을 따지는 것은 아닙니다. 여행과 같은 경험을 얼마나 많은지, 유명한 곳을 얼마나 다녀왔는지 비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진 물건이 많아도 이것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연결해주고, 소중한 추억과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준다면 소유한다 해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아무리 적게 가졌더라도 남과 비교하고, 더 버리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고, 인정받기 위해 집착한다면 결코 행복한 삶이라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는 물건이 아닌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남과의 비교를 버려야 합니다. 그렇게 타인의 시선과 평가를 내려놓고, 진정한 자신과 만나야 합니다. 행복은 바로 그 안에 있습니다. 어쩌면 법정 스님이 말씀하시려는 ‘무소유’가 물건이 아닌 ‘마음의 욕심’은 아니었을까요? 스님이 말씀하신 진정 ‘버려야할 것’이 욕심은 아니었을까요? 누구보다 난초를 아끼고 사랑하는 난초에 대한 욕심, 한 겨울에도 번들번들 기름져서 생기 넘치는 이파리를 가진 난초를 키우고 싶은 욕심, 방문객에게 난초를 자랑하며 ‘나는 이렇게 난초도 잘 키우는 사람이야.’라고 자랑하고 싶은 욕심 말입니다. 버려야 할 것은 난초가 아니라 난초를 통해 자신이 남보다 비교우위라는 과시욕은 아니었을까요?


  우리도 얼마든지 무소유를 소유할 수 있습니다. 물론, 소유를 소유할 수도 있겠죠. 중요한 것은 무소유를 소유하든, 소유를 소유하든 우리는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남에게 자랑하기 위한 욕심은 내려놓고, 즐겁고 재미난 이야기로 가득 찬 경험을 소유하려 노력한다면 그 어렵다는 ‘무소유’를, 뿐 만 아니라 ‘무소유를 통한 행복’까지도 우리는 해 낼 수 있습니다.


소중한 사람과 즐거운 이야기. 그게 바로 여행의 진정한 의미 아닐까요?


  소유와 무소유, 그리고 행복에 관한 현실적인 조언이 잘 담긴 구절을 인용하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바로 ‘굿 라이프’라는 책입니다.


  소유 소비보다는 경험 소비가 행복에 미치는 힘이 단연코 크다. 소득이 늘어나는 것에 비례해서 행복이 늘어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사람들이 늘어난 소득으로 행복에 큰 도움이 되는 경험을 사는 데는 인색하고, 행복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소유를 늘리는 데 집중하기 때문이다.
  소유하지 않는 삶이 행복할 수 있는 이유는 소유에 대한 욕망을 삶에 대한 경험과 관찰로 대체하기 때문이다. 경험하기 위한 소유, 관찰하기 위한 소유, 시간을 사기 위한 소유로 프레임하기 시작하면 소유가 사라지기 시작한다.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소유에 얽매이지 않는 무소유의 삶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경험은 우리를 비교로부터 자유롭게 한다. 경험의 삶이 곧 무소유의 삶인 이유는 무소유의 본질이 소유가 유발하는 비교로부터 자유이기 때문이다. 소유를 모두 버려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무소유의 삶이 부담스러운 우리에게 경험의 삶은 아주 좋은 대안이다.
  진정한 행복이란 진정한 자기를 만나는 경험이며, 진정한 자기와의 조우는 경험을 통해 이루어진다. 무소유의 삶은 진정한 자기를 만나는 삶이다. 행복한 사람은 자신의 소유 리스트를 늘리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 이력서를 빼곡하게 채워나가는 사람이다.
  소유가 대화의 주제가 되면 그 대화는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소유는 비교를 유발하기 때문에 소유에 대한 대화는 관계를 위협한다. 반면에, 경험에 관한 대화는 즐거움을 창출한다. 경험은 소유보다 훨씬 더 관계 지향적이다.


※ 본 글은 책의 내용을 옮겨 적고, 개인적인 생각을 덧붙였습니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61810085


그리고, 원문

https://bsread.tistory.com/208


매거진의 이전글 시간이 부족할수록 습관이 전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