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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가장 Nov 22. 2020

인류를 향한 깊은 고민

테드 창 "숨"


 경이롭다

  테드 창의 ‘숨’을 이 보다 더 잘 설명할 말이 있을까? 이 책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말 그대로 경이롭다. 이야기는 흥미롭고, 주제는 매력적이다. 이야기의 소재 역시 다채롭다. 순간이동, 평형상태, 자유의지, 인공지능, 기억과 기록, 창조설, 평행세계까지. 그야말로 자유자재 능수능란하다. 단언컨대, 내가 지금 이 순간 가장 부러운 사람은 ‘아직 이 책을 펼치지 않은 사람’이다.


 # 자유의지

  과연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일까? 과연 우리는 정말로 ‘자유의지’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걸까? 혹시, 이 모든 것이 이미 정해진 운명은 아니었을까? 작가는 책 전반에 걸쳐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만약 모든 것이 정해진 절차대로 움직인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도 그 절차를 벗어날 수 없다면 행복할까? 만약 정해진 운명을 알 수 없어 불행하다면, 그 모든 시나리오를 알게 되면 행복하기만 할까? 작가는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자유의지와 행복에 대해 깊이 고민한다. 만약, 시간을 되돌려 과거의 잘못으로 돌아갈 기회를 얻는다면, 그리고 만약 바꿀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과연 지금보다 나아질까? 과연 지금보다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 그게 꼭 과거로 돌아가야만 가능한 걸까? 과거의 미래가 지금이듯, 미래는 지금의 노력으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이제 저에겐 카이로에 있는 '세월의 문'으로 되돌아갈 노자조차 없지만, 저는 저 자신이 상상 못 할 행운을 맛보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잘못을 돌아볼 기회를 얻었고, 알라가 어떤 방식의 구제를 허락하시는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 무엇도 과거를 지울 수는 없습니다. 다만 회개가 있고, 속죄가 있고, 용서가 있습니다. 단지 그뿐이지만,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테드 창) -



 # 인공지능의 양육

  인공지능을 어린아이처럼 양육하는 것은 가능할까? 작가는 ‘인공지능의 양육’이라는 소재를 통해 ‘진정한 관계’의 의미를 되돌아본다. 진정한 관계는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진정한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려는 노력이 없다. 상대가 연인이든, 아이든 동물이든, 진정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배려하고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에서 ‘애나’가 고된 삶을 살면서도 사랑하는 ‘잭스’를 위해 불편한 삶을 감수하듯 말이다. 애나는 ‘잭스’에게 이런 노력을 가르치고 싶다. 상대를 위해 자신의 욕구를 조절하는 능력 말이다. 이러한 경험은 알고리즘적으로 결코 압축할 수 없으니,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야기의 마지막은 인상 깊다.

애나는 게임을 종료시키며, 인터콤으로 잭스를 부른다. “놀이 시간은 끝났어. 잭스. 이제 숙제해야지.”
-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테드 창) -



# 망각이라는 행복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 행복할까? 작가는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에서 모든 것은 것을 기록하는 장치인 ‘리멤’을 통해 기록과 기억의 차이를 통해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찾아 나선다. 모든 것을 기록하는 완벽한 기억력은 사실상 축복이 아니라 재앙에 가깝다. 우리의 기억은 재편집된 감정이기 때문이다. 기억은 사진처럼 또렷할 수 없다. 차라리 흐릿하다. 기록이 사진이라면, 기억은 사진을 찍을 당시의 감정에 가깝다. 마치 형체가 없는 구름처럼, 두루뭉술한 느낌이 기억이다. 하지만 기억은 이처럼 불분명하기 때문에 인간에게 필요하다. 고통의 순간은 잊혀 지기 마련이며, 아무것도 아닌 순간이 행복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죽일 듯이 미운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용서하는 경우도 있다. 안타깝지만 행복의 기쁨도 평생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때문에 우리는 또 다른 행복을 위해 목표를 세우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이 온전히 또렷하게 기록된다면 어떨까?

내 어린 시절 전체를 연속적으로 찍은 동영상에는 사실들은 가득하겠지만, 감정은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내가 나의 어린 시절을 기록한 모든 동영상을 불러낼 수 있는 환경에서 성장했다면, 특별히 어떤 날을 선택해서 더 많은 감정을 부여하지는 못했을 것이고, 노스탤지어의 핵심이 되어줄 수 있는 경험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테드 창) -


  사람은 수많은 이야기로 이루어진 존재다. 기억이란 우리가 살아온 모든 순간들을 공평하게 축적해놓은 결과가 아니라, 우리가 애써 선별한 순간들을 조합해 만들어낸 서사이다. 설령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사건들을 경험하더라도 우리가 똑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내지는 않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특정 순간들을 선별하는 기준은 각자 다르며, 그것은 우리의 인격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작가의 능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영상 기록장치인 ‘리멤’을 책과 연관 짓는다. ‘말’이 아닌 ‘글’이 전하는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당시 과거의 인류가 겪었을 혼란을, ‘글’이 아닌 ‘영상’으로 기록된 기억을 접할 미래의 인류가 겪을 혼란과 교차 편집하면서 흥미를 더한다. 마치 두 편의 영화를 동시에 접하듯 매력적이다.



# 평행세계

  하나의 사건으로 두 사람의 운명이 갈렸다. 피해자인 ‘비네사’는 평생토록 가해자를 원망하며 자신의 삶을 망가뜨렸다. 가해자인 ‘데이나’라고 해서 편안한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다. 그녀는 평생토록 당시의 선택을 후회하고 자책했다. ‘데이나’는 할 수만 있다면 과거의 선택을 되돌리고 싶다. 평범할 수도 있을 이 이야기는 작가의 상상력을 만나 영화처럼 전개된다. 바로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이라는 단편이다.  너무나 매력적인 이 이야기는 평행세계를 통해 한번뿐인 우리의 삶을 다른 각도로 바라본다. 나에게는 한번뿐인 삶이지만, 드넓은 우주에 어딘가에 있을 나와 똑같은 삶을 살고 있을 누군가. 그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순간의 선택과 그로 인해 달라지는 결과들. 작가는 이처럼 놀라운 상상력을 통해 ‘후회도, 원망도, 미련도’ 부질없음을 말하고 있다.

 


 “매력적이다”

  ‘숨’은 테드 창의 여러 소설을 한데 모아둔 작품집이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숨’은 그냥 평범한 소설책이 아니었다.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반짝이는 이야기였다. 인류와 인간을 향해 던지는 진지한 질문이었다. 그리고 그 질문의 답을 치열하게 고민했을 작가의 깊고 조용한 ‘숨’이었다. 이제 독자가 답할 차례다. 그래서 어찌 살 것인가?




[독서 산문 60] 숨 _테드 창 지음




원문링크

https://bsread.tistory.com/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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