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_이다혜 지음
일 년에 책 한 권 읽지 않았던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작년부터 거의 2년 동안 60권이 넘는 책을 읽고, 100개가 넘는 글을 썼다. 적잖은 글을 썼지만 아직도 글쓰기는 어렵다. 여전히 글은 ‘써야 한다’는 부담이다. 다들 책을 읽어야 한다고 하니 책을 읽고, 왠지 글도 써야만 할 것 같아서 써보려 애쓰고 있다. 의무감으로 책을 읽고, 숙제처럼 글을 쓴다. 시킨 사람도 없는데 제출하지 않으면 어딘가 찜찜하다.
올해 초 흥미로운 소설책을 한 권 읽었다. ‘테드 창’의 ‘숨’. 책장을 넘기는 게 아까운 책이었다. 다음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서 후루룩 읽고 싶기도 하고, 너무 소중해서 아껴 읽고 싶기도 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은 결국 글쓰기로 이어졌다. 이 소설의 산문은 정말 잘 쓰고 싶었다. 그런데, 내 글은 욕심만큼 시원스레 써지지 않았다. 유독 힘들었다. 이미 책은 수개월 전에 읽었지만 도무지 글을 쓸 수 없었다. 굉장히 놀라운 이야기들이었지만, 그 내용을 서평으로 어떻게 써내야 할지 막막했다. 서평은 한 단어에서 멈췄다. “경이롭다.” 놀랍다는 표현으로는 아쉬웠다. 점 하나를 찍기는 했지만 한 개의 점으로는 선을 연결할 수 없다. 더 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하얀 화면에 멈춰 선 커서처럼 머릿속도 그저 깜빡깜빡 정지된 느낌이었다.
이번 책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는 이처럼 답답한 마음에 한줄기 탄산수 같았다. 쭈굴 해진 마음의 따뜻한 위로였다. 다양한 형식의 글쓰기를 어떻게 하면 진정 즐길 수 있는지 지극히 개인적인 입장에서 풀어낸 이 책을 읽고 기어이 ‘숨’의 산문을 써냈다. 이 책은 어렵지 않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글쓰기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책을 ‘딴짓의 상징’으로, 글쓰기야 말로 ‘궁극의 자기 개발서’라고 말하는 작가의 농담에 큭큭 웃기도 하고, 다양한 글쓰기의 구체적인 실전 각론에 밑줄을 빡빡 긋기도 했다. 게다가 작가가 직접 쓴 아름다운 글도 만나볼 수 있는 멋진 책이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통해 글쓰기를 좀 더 편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당신이 쓴 글을 세상 그 누구도 안 읽을 수 있지만, 당신 자신은 읽는다.
-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다혜 지음) -
내 글의 첫 독자는 나 자신이라는 것. 글을 써야 하는 이유가 이보다 매력적일 수 있을까. 작가의 이 말에, 아니 작가의 이 글에 나는 용기를 냈다. 나는 그동안 나를 누르던 부담을 내려놓았다. 테드 창의 ‘숨’이 경이롭다면 무엇이 경이로운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어떤 장면에서 그렇게 생각했는지 조금씩 구체화했다. 그리고 그 근거를 조금씩 찾아가며 글을 ‘완성’했다. 그렇다. 나는 그렇게 또 하나의 글을 ‘완성’했다. 그거면 충분하다. 작가의 말처럼 글을 ‘완성’하는 훈련이 중요하다. 세상 그 누구도 아닌 내 힘으로 마무리한 글처럼 뿌듯한 것도 드물다. 깔끔하게 마무리한 업무처럼, 제대로 마친 여행처럼, ‘완성’한 글은 뿌듯하다.
‘악상이 떠오르지 않는 작곡가’처럼 나도 글감이 떠오르지 않아 막막한 경우가 많다. 조금도 앞으로 나가지 않고 모니터 화면처럼 머릿속이 하얗기만 하다. 두려움에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어린아이처럼 주변을 맴돌다가 이내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반복할 뿐이다. 작가는 이처럼 ‘도무지 풀리지 않는 글이라도 글을 풀어내기 위해 깊이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한 번쯤은 깊이 생각하며 어려움을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해봐야 한다고, 그러한 도전을 해보라고. 자꾸 그만두면 네 인생도 그렇게 그만둘 거냐? 고 말하는 것 같다.
이번 책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는 즐겁게 읽고, 가벼운 마음으로 썼다. 의무감이 아닌 취미처럼 즐겼다. 자, 이제 다음 책을 읽어야 한다. 아니, 어디 한번 읽어볼까~? 처음부터 잘 쓸 수도 있겠지만, 꾸준히 쓰다 보면 편하게 쓸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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