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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가장 Dec 04. 2020

일상의 구조조정(feat. 코로나)

[독서 산문 54-1] 12가지 인생의 법칙 _조던 B. 피터슨 지음

  회식 공지. 금일 19:00, OO횟집. 전원 참석 바람

 

 17시. 갑자기 회식을 알리는 문자가 도착했다. 어제는 본부 회식, 오늘은 부서 회식... 회식이 너무 많다. 무슨 시무식을 1월 내내 할 작정인가 보다. 다 같이 힘내자는 의도는 이해한다. 하지만, 연일 의미 없는 회의와 회식은 오히려 의욕을 사라지게 만든다. 모이지 않으면 죽기라도 하는 걸까? 아, 그래서 회-사(會-死)인가.


  하지만, 이런 일상도 이제는 추억이다. 어느새 회의는 간소화되었다. 대부분 서면보고로 대신한다. 그래도 꼭 회의를 해야 한다면 필수 인원만 참석한다. 그것도 마스크를 착용하고,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수시로 손을 소독하면서. 이젠 꼭 필요할 때만 어쩔 수 없이 모인다. 회식은 회의보다 더 간소화되었다. 저녁 회식뿐 아니라 점심도 가급적 몰려다니지 않으려 애를 쓴다. 여전히 이따금씩 회식이 있긴 하지만, 사람이 많지 않은 식당에서 가볍게 식사만 하고 서둘러 마무리한다. 연일 계속되는 회의와 회식으로 지쳐갈 올해 초, 이런 일상은 채 1월이 끝나기 전에 조용히 사라졌다. 끈질긴 회의와 질펀한 회식은 이제 추억이다. 코로나 덕분(?)이다.


  작년 말 나는 운 좋게도 이직에 성공했다. 이미 두 아이의 아빠인 나는 ‘중고 신입’으로 이직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용기를 냈다. 그래서 더 절실했다. 함께 입사한 ‘보통의 신입’들보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컸다. 빨리 인정받고 싶었다.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업무상 회의는 물론이고, 회식에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일단 참석하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나는 ‘중고 신입’이지 않은가? 체력은 의욕에 미치지 못했다. 무리했나 보다. 몸이 힘들었다. 코로나는 이런 나에게 ‘잠시 쉬어라가’라는 신호처럼 찾아왔다.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일상이 바뀌었다. 이제 더 이상 귀찮은 모임은 나가지 않는다. 회의도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열리지 않는다. 다들 개인위생을 각별히 챙기고, 혹여나 자신 때문에 불쾌하지는 않을까 서로를 배려하는 분위기다. 난생처음 재택근무도 해봤다. 코로나로 인한 변화는 혼란스러웠지만, 일상은 차분해졌다. 특히, 회식과 같은 술자리는 거의 사라졌다. 회식은 업무의 연장이었다. 다분히 보여주기 위한 자리였다. 상사의 눈치를 보며, 억지로 분위기를 맞춰주고, 높으신 분의 훈계와 파란만장한 시절의 영웅담을 들으며, 술의 힘을 빌려 만들어진 분위기에 취해 모두가 같은 마음인 줄 착각하게 만들어주는 자리였다. 1차, 2차, 3차...로 계속되는 회식으로 나는 몸과 마음이 지쳤다. 지친 건 나뿐만이 아니다. 아빠와 남편의 빈자리를 온몸으로 감당해낸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회식은 아빠와의 놀이를, 남편과의 대화를 빼앗아갔다.


  코로나는 일상의 구조조정에 한몫을 담당했다. 나는 삶의 우선순위를 바꾸었다. 우선 술자리 같은 의미 없는 시간을 잘라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무엇을 채워 넣을지 고민했다. 그리고 비워진 시간을 가족으로 채우기로 했다. 그동안 가족은 말로만 소중했지, 실상은 늘 ‘다음에’였다. 술자리가 줄어든 만큼 여유시간은 늘어났다. 그렇다고 회사 일이 편해진 것은 아니다. 일은 줄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느라 야근도 많이 했다. 하지만, 그저 술자리를 줄였을 뿐인데도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은 실제로 크게 늘었다.(반성할 일이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코로나가 끝난다고 하더라도 술자리만큼은 반드시 줄이겠노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일상의 구조조정은 ‘사회생활’을 줄이고 ‘가정생활’을 늘리는 것이었다. 마치 풍선의 한쪽을 누른 것처럼 가족과의 시간은 불쑥 늘어났다. 일상은 다시 짜였다. 하나는 비워지고 다른 하나는 채워졌다. 나는 시선을 돌렸다. 이젠 밖에 아니라 안을 바라보았다. 그 결과 이제는 일상이 바뀌었다. 적어도 예전처럼 밤늦도록 휘청거리거나, 쓰린 속을 부여잡고 힘겨운 아침을 맞이하는 일은 없다. 이제는 늦게 퇴근하더라도 아이들이 잠들 때까지 곁에 있어주고, 아침이면 서로를 안아주며 행복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일상이 가족과의 시간으로 채워질수록 재미도 늘어났다. 사실 처음에는 가족이 어색했다. 갑자기 늘어난 긴 시간을 함께 하자니 서로 불편했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더구나 서로에 대해 아는 게 없다 보니, 간단한 대화조차 툭툭 끊어졌다. 몇 마디 나누지도 못한 채 각자 휴대폰만 만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서로에 대해 알아갈수록 함께 하는 시간이 재밌어졌다. 가족에 대한 배경지식이 늘어날수록 자꾸만 가족들이 보고 싶어 졌다. 진심으로 퇴근시간이 기다려졌다. 그동안 힘겨웠던 육아가 즐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코로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늘어난 시간이, 가족과 함께 하는 지금이 너무 소중하다. 그리고 이토록 소중한 가족들을 더 깊이 사랑하고 싶다. 내 사랑을 더 잘 표현하고 싶다. 그래서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 생각을 좀 더 들여다보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왜 그것을 원하는지 좀 더 분명하게 알고 싶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내 생각을 좀 더 분명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고맙고 그리운 감정을, 아프고 서운한 감정을 좀 더 솔직하고 분명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왠지 분명하게 표현하면 내가 꿈꾸는 행복이 조금 더 분명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동안 고민은 더 깊어졌다. 이미 삶의 시선은‘밖에서 안’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제 조금 더 깊이 들어간다. 나는 나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왜 가족이 소중한가? 그들에게 내가 주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수많은 질문의 조각들은 결국 하나로 모아진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세상은 혼자가 아니다. 세상에는 나와 비슷한 문제를 고민하는 이들이 분명히 있다. 그리고 그러한 이들은 생각보다 많다. 뿐만 아니라, 어떤 이들은 그럴듯한 해결책을 이미 내놓기도 했다. ‘책’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그래서 요즘 나는 비슷한 책을 읽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과 ‘함께’ 책을 읽는다. 그들은 코로나 이후에 새로이 만난 사람들이다. 코로나로 생겨난 ‘사회적 거리두기’는 불필요한 만남을 줄여줬다. 역설적이게도, ‘사회적 거리두기’는 진정한 모임이라면 직접 만나지 않아도 괜찮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랜선 모임’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나는 비대면으로 독서모임에 참여하면서 오히려 더 많은 책을, 더 깊이 읽었다. 물론, 그들과 직접 만났다면 더 좋았겠지만, 영상으로 만나는 모임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누군가와 연결된 느낌은 랜선으로도 충분했다.


  나에게 책 읽기와 글쓰기는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그 시간은 솔직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 과정은 진정한 나를 만나기 위한 노력이었으며, 노력의 목적은 역시나 ‘사랑’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함이다. 나는 소중한 이에게 내 마음을 온전히 보여주고 싶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이유는 몸과 마음을 다해 온전히 사랑하고, 그들과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함이다. 나는 많이 행복해졌다. 최근 들어 자연스럽게 웃기 시작했고, 마음에도 여유가 생겼다. 물론, 지금도 이따금씩 화를 낸다. 하지만, 왜 화를 냈는지조차 몰라서 답답한 경우는 크게 줄었다. 책 덕분이고, 글 덕분이다. 우리가 가족은 코로나로 인한 불편을 더 이상 불평하지 않기로 했다. 삶은 언제나 고통과 함께 하는 것이기에 이번에도 기꺼이 견뎌보자고 다짐했다. 인생의 위기 역시 늘 찾아왔기에 이번에도 슬기롭게 이겨내 보자며 서로를 다독였다. 차라리 코로나를 기회라 생각하기로 했다. 엉겁결에 늘어난 시간이지만, 덕분에 우리 가족은 더 큰 행복을 고민할 수 있게 되었다. 더 많은 시간을 부대끼며 살아갈 수 있었다. 코로나가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지만, 확실한 건, 그 끝에 서 있는 우리 가족은 분명 지금보다 단단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모두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어야 한다. 불필요한 관계는 잘라내고, 소중한 관계를 더욱 돈독히 만들 필요가 있다.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코로나로 비워진 시간을 주변의 소중한 사람으로 채우면 된다. 그렇게 비움과 채움으로 일상을 구조조정해야 한다. 그들과 함께 서로 의지하며 이 힘든 시기를 살아내야 한다. 남의 시선을 의식한 채 자랑으로 가득한 삶의 가면을 이제 벗어야 한다. 그리고 그 뒤에 가려졌던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자. 이젠 자랑하기 위한 삶이 아닌 사랑하기 위한 삶을 살아가자. 더 이상 남을 의식하지 말고, 나를 의심하지 말자.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나를 돌아봐야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스스로 답을 찾아 나서야 한다. 코로나는 남을 비우고 나를 채울 수 있는 기회다. 외롭고 힘든 지금이기에 오히려 나부터, 내 가족부터, 소중한 사람들부터 사랑으로 가득 채워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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