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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가장 Dec 08. 2020

'완전 탈락'으로 알게 된 것

[독서 산문 62] 사는 게 힘드냐고 니체가 물었다 _박찬국 지음


  하루 종일 기다렸다. 밤새 잠도 못 잘 정도였다. 종일 새로고침을 눌러가며 공지사항을 확인했다.

“OO 독후감 공모 당선작 공고”

  두둥. 심장이 요동친다. 떨리는 손으로 공지를 눌러본다. 차마 볼 수 없어서 눈을 감았다가 가늘게 실눈으로 내 이름을 찾아본다. 그런데, 없다. 아무리 찾아도 내 이름은 없다. 최우수상도 우수상도 입선도 아니다. 초등부에도 중고등부에도 성인부에도 없다. 믿기지 않았다. 몇 번이나 다시 공지를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하지만, 없다. 그냥 ‘완전 탈락’이었다. 이메일이 안 갔나?


이게 진짜 일리 없어.


  맥이 탁 풀리는 기분이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 공고를 확인하는 순간 세상 모든 의욕과 희망이 사라졌다. 그것들은 내 몸에서 주르륵 흘러내려 모조리 빠져나가는 듯했다. 머릿속에는 그저 ‘왜 내 이름이 없지? 왜 탈락인 거지?’라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자만의 끝을 향해 내달리고 있던 것이다.

     

  솔직히 이번 공모전은 정말 많이 기대했다. 사실 최근 몇 개의 독후감 공모전에서 연이어 당선되었다. 3개의 공모전에 응모해서 2개가 당선되었기에 자신감은 하늘을 넘어 저 멀리 성층권까지 치솟았다. 그리고 이번 작품은 내가 봐도 가장 잘 쓴 글이었다. 그야말로 ‘영혼을 갈아 넣어 혼신을 다해 쓴 글’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당연히 무리 없이 ‘완전 당선’ 하리라 기대했다. 심지어 당선 소감을 발표하는 꿈을 꾸기도 했다. 그런데... 탈락이라니... 그것도 '완전 탈락'이라니...     


  처음 공모전에 당선되었을 때는 마냥 기쁘기만 했다. 그동안의 노력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자꾸만 의도치 않은 생각이 불쑥 끼어들었다. ‘내가 정말 글을 잘 쓰는 건 아닐까? 전업 작가를 해야 하나?’  우습게 들릴지 몰라도, 당선 기사가 신문에 나오는 걸 확인했을 때만 해도, 나는 정말 진지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다. 글쓰기는 내게 여전히 어렵고 힘들기만 한데, 전업 작가라니...

    

  생각해보면, 글쓰기는 정답도 없고, 자격증도 없다. 글은 읽는 이에 따라 느끼는 감정은 제각각이다. 독후감이나 산문에 잘 쓰고 못쓰는 '수준'이 있다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억지라 생각한다. 솔직히 내가 공모전에 당선된 것도 운이 좋아서였을 것이다. 나는 당선 이후로 몇 개의 공모전에 더 응모했다. 물론 글 한편마다 온 정성을 다했다. 밤잠을 줄여가며 쓰고 또 썼다. 고치고 또 고치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결과는 노력에 비례하지 않는 법. 연이은 ‘완전 탈락’을 겪고 나서야 깨달았다. ‘완전 당선’을 기대했던 나를 돌아보며 깨달았다. 내가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구나.

 

인생은 욕망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와 같다. -쇼펜하우어 -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지 못한 것을 보면 갖고 싶고, 갖고 나면 실증 내기 마련’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다.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세상 모든 물건을 소유할 수도 없고,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한계는 있다. 그리고 아무리 글을 잘 쓴다고 해도 모든 공모전에 당선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완전 탈락’이 괴롭다. 그 괴로움의 원인은 뭘까? 내게 글쓰기가 과연 공모전 당선을 위한 것이었나? 글쓰기가 돈벌이의 수단에 불과한 것인가?


  공모전 ‘완전 탈락’은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목적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소유인가? 존재인가? 글로써 무엇을 소유하려 하는가? 어차피 인생이 욕망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와 같다면 어떤 욕망을 위해 글을 쓸 것인가? 어떤 욕망을 소유해야 할 것인가? 결론은 물질이 아닌 경험을 소유하자는 것이다. 글은 쓰는 것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쓰기와 독서의 결과물이 아닌 그 자체의 경험을 욕망해야 한다. 지겨워지면 또 다른 책을 읽고, 새로운 글을 쓰면 된다.


  글쓰기와 독서는 그 자체로 즐거움을 준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은 끈기와 노력을 필요로 한다. 이것은 의식적인 노력이기에 쉽지 않다. 오히려 고통스럽다. 하지만, 한 권의 책을 읽을 때마다, 한 편의 글을 쓸 때마다 행복하다. 해냈다는 성취감으로 뿌듯하다. 조금 더 성장한 나를 만나는 기쁨이 있다. 나 자신이 조금 더 강인 해지는 기분이다. 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마저 든다. 앞으로도 공모전에는 응모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처럼 당선되고 싶어 안달 내기보다는 그저 ‘영혼을 갈아 넣은 글’을 써냈다는 것 그 자체로 만족해 보려 한다. 살면서 미친 듯이 최선을 다해보는 경험, 사실 그것만큼 매력적인 욕망도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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