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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가장 Dec 11. 2020

외로움 그 끝에 서다

[독서 산문 59-1]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_김초엽 지음


※ 해당 산문은 소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먼 곳의 별들은 마치 정지한 것처럼 보였다. 아무리 닿으려 해도 결코 닿을 수 없는 별들의 간절함이 가느다란 별빛을 타고 전해지는 것만 같다. ‘안나’는 슬렌포니아로 떠난다. 결코 갈 수 없더라도, 결국 가야만 하는 그곳. 남편과 아이들이 있는 곳. 아니, 이제는 그들이 묻혔을 곳. 어느새 등 뒤로 작아진 지구가 희미해진다. 죽음처럼 고요하다. 그녀의 숨소리가 유일한 소음처럼 느껴진다. 그 마저도 곧 고요해지겠지만. ‘안나’는 차라리 눈을 감는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 그 안에 박혀있는 외로움의 파편들. 그녀는 마치 바다 한가운데 홀로 남겨진 듯 막막하다. 쓸쓸한 별빛이 거친 파도가 되어 그녀를 덮칠 것만 같다. 외로움의 끝에 선 그녀는 두렵다.




  ‘관내 분실’의 엄마 ‘은하’역시 스스로 지독한 외로움을 선택했다. 그녀가 ‘마인드’에서 느꼈을 외로움, 나는 그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두렵기만 하다. 죽은 듯 고요한 세상에 덩그러니 홀로 남겨진 느낌, 외로움이 두려운 것은 그 고요함이 죽음과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안나’가, 그리고 ‘은하’가 그토록 간절히 바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고립이 아닌 연결을 원했다. 사랑하는 가족과의 연결을. 소란스럽고, 때로는 힘들고 아프더라도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기쁨을 말이다. 우리는 ‘연결’을 통해 비로소 복작거리는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보여주기 위한 행복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에서 ‘릴리’는 얼굴 흉터 때문에 차별을 받는다. 그녀는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늘 행복한 세상을. 다행히도 그녀는 신인류를 만드는 데 성공했고, 그녀가 만든 세상은 늘 행복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행복의 근원을 알 수 없었다. 마치 자랑하기 위한 SNS처럼 공허한 행복이었다. 그래서일까? 어떤 순례자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들은 지구에서 진정한 사랑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사랑은 사랑하는 이들을 단단히 묶어 연결한다. 연결이 외로움의 부재라면, 그리고 연결을 통해 행복할 수 있다면, 이러한 연결은 자랑이 아닌 사랑으로 주고받아야 한다. 행복은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밖을 향한 자랑 같은 행복은 결국 초라한 외로움을 남길 뿐이다.


  삶에서 외로움을 완전히 걷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그 외로움의 총합을 줄일 방법은 없을까? ‘나의 우주영웅에 관하여’는 이에 대한 대안을 상징적으로 제시한다. 인류는 욕심이 많다. 더 먼 우주를 가장 빨리 발견하고, 누구보다 먼저 가고 싶어 안달이다. 처음 가본 우주를 배경으로 인증샷이라도 찍으려는 것 같다. 마치 외계 생명체가 눌러줄 ‘좋아요’를 기대하는 것 같다. ‘재경’은 반대편 우주로 출발하기 전날 우주가 아닌 심해로 뛰어들었다. 그녀의 목표는 인류의 성과가 아닌 자신의 성장이었다. 누구보다 건강한 신체를 갖게 된 그녀는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자유를 택했다. 그렇다. 외로움의 총합을 낮추는 방법은 ‘외연의 확장’이 아닌 ‘내면의 사랑’이다. 남이 아닌 나를, 자랑이 아닌 사랑을, 밖이 아닌 안을 향하는 것이다.


  이러한 선택은 ‘스펙트럼’의 ‘희진’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녀는 외계인과 무려 40년을 함께 지냈지만, 입증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그녀는 허언증으로 내몰리지만, 끝까지 구체적인 사실을 숨긴다. 그녀는 알고 있다. 인류의 호기심은 결코 순수하지 않다는 것을. 그녀는 외계인과 함께한 최초의 인류라는 영예를 포기하는 대신 ‘루이’와의 추억을 가슴 깊이 간직한다. ‘희진’은 자랑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추억을 소중히 사랑했다. 덕분에 그녀는 평생 행복할 수 있었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채 언제나‘루이’와 함께 할 수 있었다. 이처럼‘재경’과 ‘희진’은 진정한 사랑을, 진정한 행복을 선택했기에 비록 혼자였지만 외롭지 않았을 것이다.


  ‘공생 가설’에서 보여주는 연결은 독특하다. 이야기 속 인류는 ‘류드밀라’를 그리워한다. 과학자들은 아직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하지만, 그리움의 근원은 어쩌면 이미 오래전에 파괴된 ‘류드밀라’에 살았던 외계인들이 인간의 의식에 숨어 지내며 서로 고향을 그리워했던 의식이 인간에게 전이된 것일 수도 있다고 결론 내린다. 외계인들도 외로움을 연결로 달랬나 보다. 비록 고향 행성은 사라졌지만 그렇게라도 서로 연결된 채 외로움을 달랬던 것은 아닐까? ‘감정의 물성’에서 ‘보현’이 그토록 우울체에 집착했던 건, 아니 자신이 힘듦을 우울체 때문이라고 믿고 싶었던 건 오히려 ‘정하’의 사랑이 간절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와 진정으로 연결되고 싶었을지 모른다. 껍데기뿐인 위로가 아니라 진실로 함께 있음을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물성의 감정’이 아니라 사랑하는 남자 친구와, 그리고 세상과 연결된 ‘진짜 감정’은 아니었을까?




  다시 ‘안나’의 우주선. ‘안나’는 서늘한 기운에 잠에서 깼다. 계기판은 이미 작동을 멈췄다. 여긴 어디쯤일까? ‘안나’는 조종석에 붙여둔 가족사진을 바라본다. 이미 누렇게 바랜 사진이지만, 그날의 웃음소리는 마치 어제처럼 또렷하다. 그녀는 힘겹게 손을 올려 사진 끝을 가만히 만져본다. 그날의 햇살이 손끝을 타고 전해지는 것 같다. 뜨거운 눈물이 두터운 우주복 위로 툭 떨어졌다. 그녀는 다시 고개를 들어 수많은 별들을 바라보았다. 슬렌포니아, 그곳에서 가족들도 나를 그리워했겠지. 그들을 생각하니 왠지 포근한 느낌이다. 이제 우리 다시 만나자. 혼잣말을 중얼거리곤 다시 눈을 감으며, 활짝 웃어본다.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 얼굴은 사진 속 ‘안나’처럼 행복하기만 하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 그 안에 촘촘히 빛나는 반짝이는 결정들. 따뜻한 별빛이 포근하게 그녀를 감싸는 것 같다. 외로움의 끝에 선 그녀는 비로소 행복하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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