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서 산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가장 Nov 11. 2020

당신만 힘든 게 아니다. 모두들 그렇게 살아간다.

[독서 산문] 54. 12가지 인생의 법칙 (조던 피터슨 지음)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고통을 피할 방법은 없다. 이는 인생을 열심히 사는 사람도 대충 사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원대한 목표를 갖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삶의 고통은 더 클 수도 있다. 고통은 기대와 현실의 불일치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면 두려움을 느낀다.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가면 인간은 고통을 느낀다.


# 삶은 고통이다

  고통을 피하고 싶다. 모든 것을 예측한다면 고통이 사라질까? 그렇다면 모든 것을 예측하는 것은 가능할까? 불가능하다. 우리는 복잡한 사회에 속한 채 살아간다. 개인은 수많은 연결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는 반드시 어딘가의 구성원일 수밖에 없다. 자녀이면서 부모이고, 직장인이면서 동호회 회원이기도 하다. 이렇듯 우리는 다양한 곳에서 수많은 연결을 만들며 살아간다. 우리는 수많은 연결을 모두 예측할 수 없으며, 그렇다고 모든 연결을 끊을 수도 없다. 무인도에서 홀로 살아간다고 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날씨조차 예측할 수 없으며, 동식물을 포함해서 우리를 둘러싼 다양한 환경을 절대로 통제할 수 없다. 통제할 수 없고, 예측할 수 없으니, 고통은 당연하다. 설령 모든 것이 완벽하게 통제되고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춰진 상태로 홀로 고립되어 살아간다 해도 고통을 피할 수는 없다. 연결은 사회뿐 아니라 내 머릿속에도 이미 빽빽하다. 머릿속 생각도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 춤추는 코끼리를 떠올리지 않으려 하면 할수록, 머릿속은 춤추는 코끼리로 가득해진다.


  삶은 안타깝게도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이 더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들은 중요한 순간마다 분명한 목표를 세우고 자신과 상황을 통제하며 살아간다. 성공의 경험치가 쌓일수록 노력의 방향과 방법은 세련되고 수월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고통스럽다. 그들은 자기 자신은 물론 주변도 최대한 통제한다. 온갖 역경에도 자신의 목표를 현실을 바꿔 나간다. 각고의 노력으로 끝내 목표를 이루고 현실과 기대를 일치시키기도 한다. 목표를 이루었으니 이제 고통은 끝난 걸까?


  기대와 다른 현실,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은 혼돈스럽다. 혼돈은 고통을 불러온다. 누군가는 이런 혼돈 속에 무력한 삶을 살아가거나 심지어 타인의 삶까지 파괴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즐거운 고통'을 즐긴다. 목표를 이룬 그들은 뻔히 힘들 줄 알면서도 또 다른 목표를 세운다. 또다시 현실과 기대를 분리한다.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또다시 시작하겠노라고 다짐한다. 그들은 고통을 즐긴다. 현실을 넘어서는 이상적인 자아를 위해 기꺼이 가시밭길에 발을 내딛는다. 현실의 혼돈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마치 그들은 폭풍이 몰아치는 망망대해 한가운데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 나침반이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언제나 밝게 빛나는 북극성이 있으며, 지쳐 쓰러져도 일으켜주는 든든한 후견자의 지원을 받는 것 같아 보인다. 그들은 혼돈 속에도 자신을 잡아주는 굳건한 법칙이 있기 때문이다.


  질서는 혼돈의 해독제다. 질서는 편안하고 안정된 상태다. 하지만 지루하다. 재미없고 따분하기까지 하다. 혼돈은 복잡하고 불안하지만, 즐겁고 재밌기도 하다. 불쑥 떠오른 아이디어는 뜻밖의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우리는 질서와 혼돈의 경계를 걸어가야 한다. 안정을 추구하되 삶을 발전시켜야 한다. 절제를 바탕으로 정제된 삶을 살되, 정체되어서는 안 된다.


  인류의 상상력은 법칙과 규칙을 만들어냈다. 인류는 이러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국가와 조직이라는 가상의 개념을 믿으며 살아간다. 덕분에 우리는 '국가'라는 가장 안정적인 질서를 제공받았다. 인류는 국가와 조직, 그리고 법과 규칙 안에서 발전해왔다. 질서와 혼돈은 서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 혼돈 속에서 질서는 체계를 갖추었고, 질서 속에서 혼돈은 문명을 발전시켰다. 법칙과 규칙 같은 질서가 혼돈의 해독제라면, 새로움과 불규칙 같은 혼돈은 질서의 자양분이다.


“우리는 좁고 곧은길을 걸어야 한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12가지 법칙은 '그곳'에 있기 위한 지침이다. '그곳'은 혼돈과 질서의 경계선 위에 있다. 그곳은 우리가 안정을 누리면서도 얼마든지 탐험과 변화, 수정과 협력을 시도할 수 있는 곳이다. 그곳은 우리의 삶, 그리고 삶에서 피할 수 없는 고통을 정당화하는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곳이다.”  - 12가지 인생의 법칙 p.18 -


  삶은 고통이며, 우리는 그 고통을 피할 수 없다. 고통은 혼돈을 가져온다. 혼돈을 줄이고자 질서를 만들었지만, 질서 안에서 정체된 삶은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질서와 혼돈 안에 한 발씩 걸쳐두고 삶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비록 자신의 삶이 고통뿐이라 하더라도 좌절할 필요가 없다. 고통뿐인 삶이니 차라리 이 삶을 끝내야 한다는 생각도 옳지 않다. 누군가 삶의 이유를 묻는다면,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이유가 무엇이던 태어났으니 열심히 살아야 한다."라고 답하겠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자신의 삶을 발전시켜야 한다. 피할 수 없는 고통을 기꺼이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어차피 삶은 고통이기에. 그러니 설령 어렵고 힘든 일이 나를 끌어내리더라도 주저앉지 마라.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단지 이것뿐이다.

나만 이렇게 힘든 게 아니다. 모두들 그렇게 살아간다.



# 고통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고통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제 아무리 장황하게 설명해도 타인은 자신의 고통을 완벽히 알아들을 수 없다. 똑같은 병이라 해도 통증은 제각각이다. 시원한 바람도 누군가는 바늘로 찌르는 듯 아프게 느낄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싱그러운 오이 냄새 역시 사람에 따라서는 심한 고통으로 느끼기도 한다.


  타인의 고통을 모른 척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오히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내가 다 겪어봐서 안다."는 식의 오만함은 피해야 한다. “많이 힘들었겠구나” 정도의 공감이어도 충분하다.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으나, 그렇다고 해서 상대의 고통을 하찮게 무시해서는 절대 안 된다. 만약 주변에, 아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의 고통에 관심을 가져보라. 그리고 가만히 들어보라. 때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적극적인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고통이 지극히 개인적인 것에서 시작한다면, 고통을 해결하는 것도 지극히 개인적일 수밖에 없다. 누가 대신 해결해주지 않는다. 상대는 당신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 방법이 없다. 그러니 그 고통을 해결해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때론 그럴싸한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그게 해결책이 될지, 고통을 더 키울지는 당사자만 알 뿐이다. 삶이 고될수록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마라. 삶의 고통을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직접 해결해 나가야 한다. 자신의 삶에 책임을 다해야 한다. 할 수 있다. 누구나 그렇게 살아간다.


  세상을 원망하기 전에 자신부터 변하겠다고 결심하라. 그런 후에 올바른 목표를 세워라. 작은 목표를 이루고 또 이뤄라. 더 큰 목표를 세우고 더 큰 노력을 기울여라.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개인의 삶을 넘어 인류를 향한 원대한 목표를 세워라. 그 시작은 고통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삶은 고통이고, 지극히 개인적이라는 사실을 똑바로 마주해야 한다. 고통을 피할 수 없으며, 고통을 통해 성장할 수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좌절하고 무너지지 마라. 용기를 내라. 누구나 할 수 있다. 혼돈을 두려워하고 피할 필요는 없다. 혼돈은 또 다른 질서를 만들 수 있는 기회다. 성장할 수 있는 열린 세계다.


"나는 이제 여정의 목적지에 지친 채 서 있구나.
지친 머리는 월계관을 쓰고 있기도 힘들구나.
그래도 내가 했던 일을 기쁘게 돌아볼 수 있는 까닭은
누가 뭐라 하든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 쇼펜하우어 - 

 


[독서 산문] 54. 12가지 인생의 법칙 (조던 피터슨 지음)


※ 위 글은 책의 내용을 옮겨 적고, 개인적인 생각을 덧붙였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성공을 위해 반드시 해야할 한 가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