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서 산문

유전자 오디세이, 그 험난한 여정

게놈 오디세이 _ 유안 A. 애슐리 지음(최가영 옮김)

by 백가장

험난한 여정은 그 자체로 훌륭한 목적지가 되기도 한다. 마치 좋은 질문이 그 자체로 훌륭한 답이 되듯이 말이다. 릴라니와 연구자들, 의사와 과학자들이 떠나는 여정이 세상에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게놈 오디세이>는 좋은 시작이 될 책이다. 책을 통해, 이 글을 통해, 릴라니를 통해 더 많은 인력이 ‘게놈 오디세이’에 동참했으면 한다. 더 많은 후원으로 그들에게 힘을 보태주었으면 한다,


# 보이지 않는 고통

코로나에 확진되었을 때, 나는 많이 아팠다. 오한, 발열, 인후통 등 온갖 감기 증상은 한꺼번에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정작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바로 ‘근육통과 신경통’이었다. 몸살과 함께 찾아온 근육통은 열이 내리면서 이내 잦아들었지만, 신경통은 그 후로도 꽤나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신경통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물론, 심한 경우에는 피부에 물집이 생기거나 벌겋게 일어나기도 한다지만, 다행히 나는 그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았다. 보이지 않는 고통만 있을 뿐 보이는 흔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정말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아팠다. 비대면 진료로 처방받은 진통제를 먹고 나서야 겨우 가라앉았다.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고통은 설명할 수 없기에 답답하다. 그래서 더 괴롭다. 고통은 본래 개인의 영역이라서 고통의 공감은 역설에 불과하다지만, 그날의 신경통은 누군가가 좀 알아줬으면 할 정도였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고통을, 결코 공감할 수 없는 타인의 고통을 나누려 애를 쓰고, 심지어 그 고통을 없애고자 평생을 헌신하는 이들도 있다. 바로 희귀병 연구자들이다. 책 <게놈 오디세이>는 그들의 다사다난한 여정을 다룬 책이다. 희귀병 연구자들은 병의 원인과 해결책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을 한다. 당장 답을 찾을 수도 없는 질문을 말이다. 아직 원인조차 알 수 없는 희귀병을 들여다 보고 또 들여다보며 날을 지새운다. 책의 제목인 ‘오디세이’에서 느껴지듯 그들의 연구과정은 마치 거센 파도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선원처럼 보였다. 그들의 행보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나침반도 없이 출발한 이들은 망망대해에서 스스로 정한 길을 따라 굳센 항해를 이어간다. 좋은 질문은 그 자체로 훌륭한 대답이라 했던가? 희귀병을 연구하고 치료했던 과학자와 의사들은 어느새 제법 그 방향을 찾은 것 같기도 하다. 원인조차 알 수 없었던 희귀병, 그 보이지 않는 고통을 세상에 보여주고, 함께 나누고자 했던 연구자들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책 <게놈 오디세이>는 어쩌면 숙연한 책이다.



# 과학은 멈춰 서는 안 된다

<게놈 오디세이>는 희귀병을 연구하는 과학자와 의사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생명과학기술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유전자 검사와 치료, 그리고 희귀병처럼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그래서 더욱 알려지지 않았던 고통의 원인을 찾아 나서는 이들의 탐험기가 생생하게 담겨있다. 마치 ‘오디세이’의 험난한 여정을 보는 듯 흥미롭다. 실제 환자의 치료 사례는 마치 의학 드라마 보는 듯 생생한 긴장감을 전하기도 했다. 특히, ‘릴라니 그레이엄’의 사례는 인상적이다. 릴라니는 열세 살의 나이에 이미 심정지를 경험한다. 원인조차 알 수 없는 병 때문에 언제든 심장이 멈출 수도 있다는 진단을 받은 릴라니는 몸 안에 제세동 장치를 품고 다녔다. 이 후로도 몇 번의 심정지를 겪었지만, 릴라니는 굳건히 자신의 삶을 이어갔다. 하지만, 역경은 쉼 없이 찾아왔다. 심장 사정은 날이 갈수록 나빠졌다. 릴라니는 결국 심장을 이식받기에 이른다. 수술은 다행히 성공적이었지만, 하늘도 무심하지, 릴라니는 심장이식 전과 같은 증상이 또다시 나타나게 된다. 하는 수 없이 그녀는 세 번째 심장 수술을 통해 다시 제세동장치를 몸에 심어야만 했다. 이제 겨우 스무 살의 나이에 일반인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시련을 겪은 릴라니는 그럼에도 살아간다. 결코 멈추는 법이 없었다. 오히려 블로그와 강의를 통해 환자 권익 운동가로서 제2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녀의 심장처럼 그녀는 여전히 내 달리는 중이다.


심장은 멈춰 서는 안 된다. 심장이 계속 뛰어야만 하는 이유는 그 피가 곧장 뇌로 향하기 때문이다. 심장이 멈추면 뇌는 피를 공급받을 방법이 없다. 과학 역시 마찬가지다. 과학은 멈춰 서는 안된다. 과학이 멈추면 인류의 성장 역시 멈출 것이기 때문이다. 릴라니처럼 희귀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은 지금의 과학이 ‘치료라는 혈액’을 공급해 주지 않았다면, 어쩌면 원인도 모르는 병 때문에 고통 속에서 살다가 짧은 생을 마감해야 할지도 모른다. 생사를 가르는 희귀병 앞에서는 간절한 기도와 믿음 말고도 과학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은 멈춰 서는 안 된다. 특히, 희귀병의 치료처럼 ‘고통을 줄여주는 분야의 과학’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과학은 쉬지 않고 내달려서 치료라는 혈액을 모두에게 공급해 주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가난한 자들에게도 말이다.


고통은 공평하다. 고통은 피부색도, 지갑의 두둑함도 신경 쓰지 않는다. 누구라도 병에 걸릴 수 있으며, 그 병은 언제라도 희귀병이 될 수도 있다.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고통은 불공평하다. 고통은 약자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평소 건강관리가 소홀한 저소득층, 더 많은 스트레스에 노출되는 사회적 약자들, 의료보장이 부족한 후진국일수록 아프니 말이다. 그래서 과학은 멈춰 서는 안 된다. 더 효과적인 치료법을 개발하고, 더 저렴한 치료제를 제공할 때까지, 과학은 더 내달려야만 한다. 적어도 아직은 그렇다.


과학이 발전할수록 정밀한 진단이 가능해진다. 정밀한 진단을 받는 것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진단이 정밀할수록 최적의 치료 설계가 가능해진다는 데 있다. 희귀병 중에는 면역계가 오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면역계는 병원균에 대한 저항과 공격을 통해 우리 몸을 보호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런데, 이러한 면역계가 망가지면 면역계는 우리 몸을 적군으로 잘못 생각해서 공격한다. 이것이 바로 ‘자가면역질환’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가면역질환의 상당수가 여전히 원인을 알 수 없는 희귀병이다. 원인을 알 수 없으니, 진단이 불가능하다. 맞춤형 진단을 할 수 없으니, 만병통치약을 처방하는 경우가 있다. 정확한 원인을 알지 못하는 경우, 면역계가 과도하게 활약해서 자신의 몸을 망가뜨리는 환자에게 흔히 의사들은 면역계 기능을 전방위에 억제하는 스테로이드 같은 약물을 사용한다. 대게 효과는 확실히다. 통증은 잦아들고, 면역계도 정상으로 되돌아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대형 망치로 작은 못을 때리면 못이 한 방에 박히기야 하겠지만, 무고하게 주변이 더 큰 피해를 입기 십상이다. 기존의 의학으로는 희귀병의 원인을 알아내기가 어렵다. 책 <게놈 오디세이>에서는 유전자 분석을 통해 이러한 희귀병의 진단과 치료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책에서 볼 수 있듯, 발전된 과학은 정밀한 치료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더 많은 이들을 고통 속에서 건져낼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과학은 멈춰 서는 안 된다.


환자를 고통 속에서 건져 올리기 위해, 세상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실제로 이를 위해 전 세계 과학자들은 가히 헌신적이라 할 만큼 노력하고 있다. 책 <게놈 오디세이>는 유전자를 이용한 희귀병 치료를 주로 다루고 있다. 책에서 잠시 소개하는 유전자 검사와 치료는 상상이 어려울 세밀하고, 복잡한 영역이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세포, 그 세포 속 핵과 핵 속에 담긴 염색체, 또다시 그 안에 담긴 유전자를 다루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심지어 그 작은 유전자 안에 담긴 30억 개에 달하는 유전정보를 일일이 분석하는 것이 유전자 분석의 시작이라고 하니, 일반인의 입장에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다. 유전자 치료의 어려움은 세밀함과 복잡함 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엄청난 부담을 떠안은 채 연구 중이다. 생각해 보면, 그들은 희귀병을 다루는 사람들이 아니던가? 매 순간 환자들의 고통을 가까이에서 접하면서, 자칫 그들의 작은 실수가 누군가의 생사를 가를 수도 있다는 부담감은 늘 그들의 어깨를 무겁게 했을 것이다. 이 역시 나로서는 상상조차 힘들었다. 유전자 치료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과학자들, 그들은 진정 ‘오디세이’처럼 험난한 여정을 견뎌내는 선원들과 다르지 않다. 그들은 유전자의 바다에 몸을 던진 이들이다. 그들이 무사히 바다를 건넜으면 한다. 비록 성과가 없더라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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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전자보다 중요한 것

우리는 아직 유전자에 대해 모르는 것이 더 많다. 유전자 역시 우리에게 모든 답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답은 우리의 상상 속에 있다. 어쩌면 희귀병의 열쇠 역시 유전자 안에 이미 담겨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과학의 발전이 언제나 그러하듯이, 이제 첫걸음을 떼기 시작한 유전자 치료 분야 역시 성공보다는 실패가 많다. 어쩌면 한동안은 더 많이 실패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실패가 결코 의미 없는 희생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적어도 미래의 우리 자손들은 지금 그들의 노고 덕분에 좀 더 확실한 치료를 받게 될 것이니 말이다.


우리는 모두 유전자를 갖고 있다. 유전자는 유성생식의 결과이며, 우리는 모두 ‘결과물’이기에 당연히 유전자를 선택할 수 없다. 우리는 부모로부터 유전자를 물려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안에는 좋은 유전자도 나쁜 유전자도 있기 마련이다. 좋은 유전자만을 취사선택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가능하다고 한들, 그것은 자연의 섭리에 어긋나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 유전자를 품고 있는 우리 자신이다. 릴라니의 사례는 유전자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릴라니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 자신의 병을 알아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아직은 그 원인이 무엇인지,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태였다. 마치 릴라니의 유전자가 릴라니의 장차 나아갈 길까지 정해준 것은 아니었듯 말이다. 유전자는 그저 몰랐던 사실을 드러내 보였을 뿐이다. 그걸 가지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것은 유전자가 아니라 그 유전자를 가진 릴라니인 것이다. 릴라니는 희귀병을 받아들였다. 고통과 고난이 뻔히 예상되는 자신의 삶을 기꺼이 살아내기로 다짐한다. 그리고 물려받은 유전자와 상관없이 의연하게 살아나가고 있다. 심장이 멈추면 다시 살리면서 까지 말이다. 릴라니는 ‘자신이 부모로부터 무엇을 물려받았는가?’를 고민하는 대신 ‘자신이 세상에 무엇을 물려줄 수 있는가?를 고민한다. 이러한 릴라니의 모습은 유전자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이를 작가는 이렇게 표현했다.


유전병이 있는 집안이든 아니든 부모가 자식에게 ‘좋은 유전자’와 ‘나쁜 유전자’를 모두 남기는 것은 지극히 마땅한 자연의 섭리다. 물론 유전자는 중요하다. 그러나 더하면 더했지 그에 못지않게 가치 있는 게 따로 있다. 한 사람을 정의하는 것은 그 사람이 상대방을 대하는 말과 행동, 그가 자라온 환경, 역경을 만날 때 발휘하는 정신력임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게놈 오디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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