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빚을 지고 있습니다. 채권자는 잠입니다. 얼마나 지독한지 한번 빚을 지면 절대 갚지도 못하게 합니다. 사정사정해서 겨우 주말에 몰아서 잔다 한들 그동안 부족한 잠의 이자만큼도 안받아줍니다. 우리가 잠을 너무 얕잡아 보았습니다. 빌릴 때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막상 갚으려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갚을래도 시간이 없다구욧!! 죄..죄송합니다. 앞으로 꼬박꼬박 잘 잘게요.
야근과 회식, 공부와 게임으로 빼앗긴 잠을 보충할 방법은 사실상 없습니다. 그야말로 ‘수면부채“는 갚을 방법이 없습니다. 매일 매일 꼬박 꼬박 충분히 자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직장은 ‘화수분’입니다. 계속 다닐 수만 있다면 월급이라는 돈이 끊임없이 솟아납니다. 돈 말고 일도 끊임없이 엄청 나옵니다. 이놈의 일은 정말이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끝이 없습니다. 그러니 직장인은 늘 시간이 부족합니다. 공부하는 학생들도 시간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해야 할 공부는 아직도 산더미같이 남았는데, 책장은 몇 시간째 꿈쩍도 하지 않으니 말이죠. 그래도 버티고 버텨서 시간을 채우고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갑니다.
어쩔 수 없이 오늘도 야근입니다. 시간의 구조조정에서 가장 먼저 손대는 것은 역시나 잠입니다. 잠을 줄여가며 일을 하고, 맥주를 마시고, 넷플릭스를 봅니다. 그렇게, 적게 자고 열심히 일한 자신을 ‘오늘도 보람 있게 살았다’며 칭찬합니다. 잠을 줄이고 그 시간에 술을 마시며 티비를 본 자신에게 ‘그래도 나를 위한 보상의 시간이었다며 잘 쉬었다’고 위로해줍니다. 아닙니다. 보람 있게 살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을 위한 보상의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잠이 부족했다면, 그 무엇을 해도 이로울 게 없습니다. 그저 갚을 수 없는 빚, ‘수면부채’만을 또 떠안았을 뿐입니다.
#1. 미라클 모닝이 진리인가? 나는 아침잠이 많은데?
“새벽시간을 활용해라.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아먹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보편타당한 세상의 이치 같아 보이기까지 하는 이 말은 사실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진리는 아닙니다. 사람마다 수면 패턴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왜 수면 패턴이 사람마다 다른 걸까요? 모두 같은 시간에 자고, 일어나서 다 같이 활동한다면 생존과 발전에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요? 이러한 의문에 답을 하려면 머나먼 옛날 동굴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이제 막 나무에서 내려온 인류는 동굴에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이제야 비로소 깊은 잠을 청할 수 있었습니다. 기분 좋게 다 같이 자려고 이부자리를 폈는데, 밖에 늑대가 어슬렁거립니다. 큰일입니다. 이러다 일가족이 몰살되게 생겼습니다. 졸리지만, 누군가는 지켜야 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과장하기는 했지만, 이러한 상황으로 사람마다, 나이마다 수면패턴이 달라졌다는 가설이 있습니다. 번갈아 교대로 자야만 누군가는 보초를 설수 있으니 말이죠. 어찌보면 개인마다 수면패턴이 달라진 것은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진화의 선택이 아니었을까요?
실제로, 나이에 따라 잠이 오는 시간이 다릅니다. 갓 태어난 아이기는 패턴이랄 게 딱히 없습니다. 그저 생존을 위해 먹고 잘 뿐입니다. 그러다가 100일이 지나고 1년이 되면서 밤낮을 구분하기 시작하고, 일정한 패턴이 생기게 됩니다. 보통 해의 움직임과 비슷한 양상을 보입니다. 그러던 어린아이들은 점점 잠드는 시간이 뒤로 밀립니다. 그러다 16살이 되면 절정에 다다릅니다. 밤 11시, 12시가 되어도 초롱초롱 게임에 몰두합니다.(더러는 공부에 몰두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게 정상적인 패턴입니다. 20살을 기준으로 다시 수면시간은 앞으로 당겨지고, 노년이 되면 다시 어린아이처럼 일찍 잠이 듭니다. 대신 노인은 어린 아이와 달리 깊은 잠을 오랫동안 이루기 힘듭니다. 자주 깨고, 수면의 질도 나빠집니다. 나이가 들면서 새벽잠이 없어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입니다.
수면패턴은 나이 뿐 아니라 사람에 따라 차이를 보이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새벽을 선호하기도 하고, 한밤을 최적의 시간으로 꼽기도 합니다. 그러니, 모두에게 ‘아침형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다그치지 말아주세요. 아침잠이 많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저 잠을 참고 견디라는 폭력적인 지시에 불과하니까요.
밀린 잠 좀 갚을께요. 그게 그렇게 잘못인가요?
#2. 수면 부채. 왜 그리 위험한가?
개인마다 수면패턴의 차이는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우리는 모두 인간이라는 같은 ‘종’입니다. 보편적으로 타당하게 적용되는 ‘종’특성에 따르면 인간은 하루 24시간 중 16시간을 활동하고 8시간을 자야합니다.
수면 부채는 만기일 일시상황이 불가합니다. 사실 중도 상환도 잘 안받아 줍니다. 매일 갚아야 합니다. 밀린 잠을 몰아서 자도 소용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 졸음은 결코 참을 수가 없습니다. 쏟아지는 졸음을 억지로 참다보면 결국 ‘미세수면’에 빠지게 됩니다. 졸음이라고 표현하는 미세수면은 우리의 뇌가 잠깐 동안 잠드는 현상입니다. 운전 중 미세수면 즉, 졸음운전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졸음운전이 위험한 이 위험한 이유는 위험한 순간에 그저 반응속도가 느려지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상황에 관계없이 그 반응이 완전히 멈추기 때문입니다.
세수를 하거나, 커피를 마시면 잠이 깬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졸음을 이겨냈다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졸음은 파장의 형태로 반복되기 때문에 잠시 잠을 깬 것처럼 보이지만, 곧이어 더 큰 파장으로 더 큰 졸림으로 우리를 위협합니다. 반복해서 말씀드리지만, 우리는 결코 졸음을 이길 수 없습니다. 졸릴 땐 자야합니다. 그래야 뇌를 보호하고, 우리 몸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잠을 못자 피곤할 때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팔과 손의 핏줄이 도드라져 보였던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몸과 머리가 무겁고 미열이 있는 것처럼 피로한 경험 말입니다. 이는 수면이 부족할 때 교감신경계가 과잉반응을 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우리 뇌는 수면 부족 현상을 ‘포식자로부터 도망쳐야할 때, 생명의 위협을 느낄 때’와 같은 위협으로 인식합니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입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면, 스트레스 때문에 잠을 못자는 것이 만병의 근원입니다. 흔히 병명이 없는, 그저 스트레스라고 원인을 갖다 붙인 다양한 증상들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부부가 모두 건강한데 불임이나 난임인 경우에도 평소 그들이 잠은 제대로 자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잠은 면역체계를 망가뜨리기 때문입니다.
#3. 그래도 시간이 부족하다면?
낮잠이라도 주무세요. 틈날 때마다 쪽잠이라도 주무시길 권합니다. 시간이 부족할수록, 해야 할 일이 많을수록 잠을 하루 일과 중 최우선 순위로 관리하셔야 합니다. 잠은 충분히 그럴만한 자격이 있습니다. 잠은 결코 버리는 시간이 아닙니다.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하고, 정화하는 시간입니다. 새로운 정보를 처리하고 저장하는 시간입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시간입니다. ‘미라클 모닝’이냐 ‘미라클 이브닝’이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진정한 미라클은 슬리핑에서 시작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