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싯배가 출항하기 전, 배 위에는 조촐한 저녁 밥상이 차려졌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내 모습을 보더니 맞은편에 앉아 식사를 하시던 아저씨가 말을 걸어왔다.
“사람들이 잘 못 알고 있는데! 든든히 묵어야 배 멀미를 안 합니데이. 마이 드소!”
처음 보는 분이었지만 아마도 배에 타기 전, 나와 지인들이 나눈 대화를 들었던 모양이다.
“아 그래요? 제가 잘못 알고 있었네요. 든든하게 먹어야겠어요. 감사합니다. 맛있게 드세요.”
나는 웃으며 대답하고는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 말을 믿었다기보다는 제발 그렇게 되길를 바랄 뿐이었다.
“강한 사람이 버티는 것이 아니고 버티는 사람이 강한 겁니데이.”
피식 웃음이 나왔다. 수도 없이 들어왔던 말이지만 다시 들어도 맞는 말이었다.
“그럼요. 어떻게 온 건데요... 끝까지 버텨내고 말겠습니다.”
나는 결연한 의지를 내비쳤지만, 솔직히 멀미를 이겨 낼 자신이 없었다. 그 고통은 의지로 극복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차만 타면 하도 멀미를 하는 통에 그 단어만 들어도 속이 미식미식거렸다. 나는 밥을 다 먹고 멀미약을 두 알이나 먹었다.
사실 표정이 어두운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그날은 날씨가 좋지 않아서 고기가 잘 잡히지 않을 것 같다고 선장님이 운을 띄웠고, 그래서 그런지 승선한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 같았다.
‘오늘은 정말 최악이 될 거야.’
해가 점점 지고 있었고, 모슬포항을 떠난 배도 점점 더 먼바다로 향했다. 모두들 갈치를 많이 잡기 위해 선수 쪽을 선호했지만, 나는 낚싯배의 뒤쪽에 자리를 잡았다. 선미 쪽이 멀미를 덜 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어느새 망망대해는 칠흑이 감싸 안았고, 파도는 더욱더 거칠어졌다. 배는 쉴 새 없이 요동치고 있었다. 나는 혹시라도 멀미를 할까 봐, 그래서 이번 일정을 다 망쳐버릴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무섭진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거친 파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배는 앞을 향해 계속해서 나아갔다. 휘청휘청 거리는 몸을 간신히 고정하고, 어찌 보면 무모해 보일 수 있는 여정을 이겨내는 배를 보고 있자니 갑자기 가슴이 울컥하는 느낌이 들었다. 멀미와는 비슷한 듯 다른 느낌이었다. 그 모습이 감동적이라고 해야 할까. 목 빠지게 기다리던 공연이 사람들의 환호 속에서 막이 올랐을 때 느껴지는, 가슴속에 뭔가 묵직한 것이 위장을 타고 올라오는 것 같은 그런 기분 말이다. 그것은 마치 이곳 제주에서의 새 출발을 잘 해내고 싶은 나의 간절한 소망 같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앞으로 펼쳐질 험난한 여정을 보여주는 예고편 같기도 했다. 벅차오르는 것 같기도 했고, 두렵기도 했다. 그런 내 감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배에 같이 오른 두 형님이 나에게 물었다.
“괜찮아?”
“네, 아직은 생각보다 괜찮네요.”
“그래, 가까이 보지 말고 멀~리 봐~”
그렇지. 멀리 봐야지. 아득하지만 저 멀리 봐야지. 멀고 길게. 인생은 마라톤이라지 아마.
저 멀리 항구 쪽을 바라보니 인간이 만들어낸 빛이 별처럼 빛나고 있었고, 먼바다에는 먼저 조업을 나온 고기잡이배의 집어등이 우리를 인도하는 등불처럼 비추고 있었다. 상쾌한 바닷바람이 나를 감싸 안아줬고,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와~ 좋다.
나를 걱정해 주시는 두 분의 형님과 오랜만에 함께 있으니, 같이 했던 10년이 넘는 세월의 풍파가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지나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이 새삼 나를 울컥하게 만드는 것 같기도 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유일하게 남은 인간관계가 있다면 그분들이었다. 회사에는 노동조합이 있었는데 노조위원장의 연임이 오래도록 계속되면서 조합은 썩어가고 있었다. 말로는 노조원들을 위해 일한다지만 회사에는 찍소리도 못하면서, 연임을 위해 인기몰이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동물농장에 돼지들 같았다. 나는 그런 것들이 불만이었다.
입사 2년 차에 임기가 3년인 노조위원장 선거가 다가왔다. 때마침 나와 생각이 같은 형님 두 분을 알게 되었다. 그중에 한 분이 위원장에 출마한다고 했고, 운동원으로 같이 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나는 망설임 없이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솔직히 누군가를 위한다거나, 정의를 외친다거나 하는 마음 같은 것은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형님들이 멋져 보였다. 그 안에 진심이 느껴졌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들로 작은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영상을 찍어서 편집을 하고 거친 연설문을 조금 다듬는 정도였지만, 정작 제일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기득권에 맞서야 하는 용기, 그것이 필요했다. 아무도 나서려고 하지 않는 일이었고, 사람들은 행여나 줄을 잘못 선 후폭풍을 두려워했다. 어느 편에 서야 할지, 어떤 선택이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일인지 머리를 굴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으니까. 다들 말로는 바뀌어야 한다고 떠들어 댔지만, 정작 중요할 때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침묵은 동조가 되어 버린다는 그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그렇게 3번의 위원장선거를 치르면서 썩어빠진 권력보다 침묵하는 사람들이 더 미웠었다. 기득권에 맞서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것이 두려워서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고 사는 것은 더 지옥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들은 나와 달랐다.
그 덕에 나는 회사를 다니는 내내 소위 말하는 빨갱이로 살았다. 2년 차부터였지만 끝끝내 부러지지 않고 15년 차를 맞이하였으므로, 줄을 잘못서면 명이 짧아진다는 사람들의 말은 거짓이 되었다. 누구보다 회사 일을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으니 이 정도 불평을 한다는 것은 떳떳할 일이 아닌가.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것은 애정에 가까웠다. 다행히 형님들은 내 뒤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그분들은 나에게 '불평불만'이라는 것은 질문을 던지는 일이라고, 끝없는 질문을 던지는 일이므로 그것은 결국 열정의 한 형태라고 말해주었다. 그런 형님들을 보고 있으면 힘이 났다. 불평불만이 많은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질문을 던지며 살아도 괜찮다고, 그분들의 삶이 증명이라도 하듯 나에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우리는 진 게 아니에요. 분명히 사람들의 마음속에 작은 질문이라도 남겼다고 생각해요. 그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정말 의미 있는 일이었어요. 적어도 저에게는 말이죠.”
아첨이나 입바른 소리가 아니라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놨다는 솔직한 고백이었다. 내가 제주도에 온다고 했을 때도 아내만큼이나 나를 믿어주신 분들이었다. 그렇게 믿고 따르던 형님들이 제주도에 오신다는 연락이 왔다. 매 년 제주도 갈치잡이를 한 번 가자고 했었는데 살다 보니 시간 맞추기가 영 쉽지 않았었다. 그런데 내가 제주도에 살게 될 줄이야. 제주도에는 내가 사는데 낚싯배 예약은 형님들이 다했다.
“다 예약해 놨으니 몸만 와!”
군대에서 면회를 맞이하듯이 반가운 마음이 들었고, 만만치 않은 가격인지도 모르고 나는 알겠다고 덜컥 대답을 해버렸다. 하지만 멀미를 걱정하던 나는 그날이 다가올수록 배를 타기가 무서워지고 있었다. 마침 일기예보에서 그날의 날씨가 좋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고 좋은 핑곗거리가 생겼다고 생각했다.
“제가 보기엔 바람이 많이 불어서 배가 출항을 못할 것 같은데요?”
“선장이 가자고 하면 가는 거야. 아니면 마는 거지 모.”
그렇지. 아니면 마는 거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변하지 않은 당당한 형님들의 모습이 반가워서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 그때처럼 일단 가기로 정했으니, 어떻게 되든지 가보는 수 밖에는 없었다.
바다낚시는 해본 적도 없었다. 낚싯줄을 매는 법도 미끼를 끼는 법도 전혀 몰랐다. 갈치 낚시 경험이 많은 제일 큰 형님이 혼자서 낚시채비를 해주고 있었다. 나는 어깨너머로 어떻게 하는지 유심히 봤지만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오히려 유독 눈에 띄는 것은 큰 형님의 돋보기안경이었다. 연단에 서서 확신에 찬 연설을 하던 큰 형님이었다. 그랬던 분이 언제부턴가 돋보기 없이는 생활이 힘들다고 하셨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서 내가 해보겠다고 해도 요지부동이었다. 하긴 그 흔들리는 낚싯배에서 형으로서 해줄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겠지. 그런 마음을 생각하니 더 이상 보챌 수가 없었다.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도움을 받으며 곁을 지켰다.
갈치낚시가 시작되고 미끼를 껴서 던졌다. 처음부터 갈치가 딸려 나오는 것이 신기했다. 갈치가 미끼를 물었다기보다는 미끼가 갈치에 달라붙은 것 같았다. 심심치 않게 고등어도 붙어 있었다. 역시 낚시는 물고기가 잡혀야 제 맛이다. 하지만 다른 분들은 내색이 별로 좋지 않았다. 갈치가 생각보다 작은 녀석들이 올라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 접하는 나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먼바다를 주시하며 아무 생각 없이 바늘에 미끼를 달고, 낚시 줄을 던지고, 당기고, 달고, 던지고... 그러다 낚싯줄이 다른 분의 낚싯줄과 엉키기라도 하면 아무 말 없이 엉킨 낚싯줄을 풀어냈다. 신기하게도 풀리지 않을 것 같던 낚싯줄은 어떻게든 풀어지고 있었다. 오랜만에 그런 몰입의 시간이 좋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갈치는 잡히지 않았다. 하나 둘 체념하고 잠을 청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것은 무언의 항의 같았다. 반면에 우리 일행은 밤 새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회사를 다니면서 단련된 것 같았다. 오랫동안 교대근무를 해온 우리는 알고 있었다. 밤새는 일은 그냥 버티는 것이란 걸 말이다.
버티다 보니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다. 물에서 반짝이는 플랑크톤이 보였고, 생전 처음 날치가 날아다니는 광경도 목격했다. 학꽁치와 꽃게가 수명을 다한 미끼의 잔여물을 처리하느라 분주하게 왔다 갔다 했고, 그 먼바다에 갈매기가 와서 뭐 먹을 게 없나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진짜 신기한 것은 그 먼바다에 간간히 나방이 날아오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저 나방은 어떻게 여기까지 날아온 것일까. 날아온 것일까 날려온 것일까. 어찌 되었든 이 먼바다까지 온걸 보니 버티고 있는 것은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거센 파도를 벗 삼아 움직이는 각 종 생물들이 참 대단해 보였다. 그러고 보면 저 녀석들도 오늘은 불청객을 상대하느라 분주한 밤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덧 새벽 3시 30분이 지나고 있었다. 그때 선장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파도가 더 심해져서 안 되겠습니다. 4시에 종료합시다.”
권유하는 것 같았지만 그것은 명령이었다. 명령을 이행할 사람은 우리 일행과 나에게 밥을 든든히 먹으라던 아저씨까지 총 4명이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서로 한 번이라도 더 낚싯줄을 던지려고 분주히 움직였다. 그 순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쉬움의 감정이 배위를 지배하고 있었다.
배가 항구로 돌아오는 길에 잠을 청했던 사람들이 깨어나기 시작했고, 아니나 다를까 모두들 입을 모아 오늘은 최악의 날이라고 말했다. 푸념을 서스름 없이 나누는 것을 보니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고단한 밤을 같이 보내고 제법 친해진 것 같았다. 그 사이에서 같이 살아남은 그 아저씨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살아남았네요? 강하구마이 엄살은."
"네 덕분에 든든히 먹어서 그랬나 봅니다."
그 푸념의 순간, 나는 침묵으로 동조하지 않았다. 형님들에게 이번에도 꾀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진짜 진짜 재미있었다고 보란 듯이 말했다. 형님들도 내 말에 화답했다. 설령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들의 승리를 자축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형님들도 알고 있는 듯했다.
2박 3일의 짧은 일정을 마무리하고 떠나기 전에 형님들이 나에게 말했다.
"넌 참 좋은 결정을 한 거야. 그러니 잘 지내고 있어. 또 보자."
갈치낚시가 아니라 내가 보고 싶어서 왔다는 것을. 조만간 퇴사를 결심한 나에게 전할 수 있는 최고의 작별인사였다는 것을. 나는 직감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슬프지도 우울하지도 않았다.
아들은 내가 잡아온 갈치와 고등어를 신기해했다. 아빠가 이걸 잡아왔다고 하니 믿기지 않는 눈치였지만, 이내 엄지를 들어 올리는 모습에 모든 고생이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첫 도전이라 무서웠지만 결과적으로 잘 다녀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어둡고 먼바다에서 본 생물들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놨다. 빛나던 플랑크톤, 날치, 학꽁치, 꽃게, 갈매기, 심지어 나방까지. 아들은 내가 날치를 봤다는 사실을 제일 신기해하는 것 같았다. 여기저기 나눠주고 얼마 남지 않은 갈치가 초라해 보였다.
밤 새 갈치낚시를 열심히 해 놓고선 정작 갈치는 손질해서 냉동고로 직행했고, 간간히 잡힌 고등어 중 한 마리를 구워 먹었다. 나는 아들에게 무용담을 섞어 훈화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집 채 만한 파도가 쳤는데 말이지 진짜 무섭더라. 근데 포기하지 않고 아빠가 끝까지 해냈어 아들! 그러니까 아들도..."
고등어가 엄청 맛있다며 밥을 먹다 말고 춤을 추는 아들 덕에 나의 훈화는 허공으로 흩어져 버렸다. 그렇게 맛있어? 아들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한동안 쩝쩝대며 맛있게 먹다가 대화를 이어 나갔다.
"아들 그거 알아?"
"뭐?"
"든든히 먹으니까 멀미를 안 하더라. 아들은 편식도 안 하고 밥도 잘 먹고 하니까 아빠처럼 멀미는 하지 않겠어."
"그래?"
"응 그리고 멀~리 봐야 되더라. 가까운 곳 말고 멀리. 언젠가 꼭 함께 가보자."
"그래 좋아! 아빠 근데. 그 나방 말이야. 배에 타고 있던 것은 아닐까?"
"어?? 나방? 아~ 나방~ 음.... 진짜 그럴 수도 있겠는데?"
역시 곤충에 진심인 아들이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던졌다. 집어등이 밝게 빛나고 있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걱정과는 다르게 나는 멀미를 하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기분이 좋아서였을까. 아니면 진짜 든든히 먹어서였을까. 무려 두 알이나 먹은 멀미약의 효과가 좋았나? 왜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무난히 지나간 멀미처럼 앞으로 이곳에서 펼쳐질 생활도 지레 겁먹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나는 이곳에서 이미 멀미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랬는지 몰라도 그날 저녁, 아들과 나는 유난히 밥이 맛있었고, 그래서 더욱 든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