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은 유심히 들여다볼 가치가 있다. 영화는 공항의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 쓸쓸히 의자에 앉아 있는 벤지(에란 컬킨)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카메라는 그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슬픔인지 공허함인지 모를 복잡한 감정을 담아낸다. 화면 한쪽에는 <REAL PAIN>이라는 글자가 선명히 새겨지는데, 이는 단순히 제목을 알리는 기능을 넘어, 마치 한 폭의 인물화처럼, 관객을 벤지의 내면 깊숙한 고통으로 조용히 이끌어 들인다.
영화는 성격과 환경이 전혀 다른 두 사촌형제, 벤지와 데이비드(제시 아이젠버그)가 돌아가신 할머니를 추모하기 위해 떠난 폴란드 여행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두 사람의 할머니는 폴란드 출신 유대인으로, 홀로코스트의 참혹한 시련을 견뎌낸 생존자다. 이 여행은 단순한 추모를 넘어, 할머니가 겪었던 고통과 그 역사적 비극을 되새기고 이해하려는 여정으로 시작된다.
오프닝에서 벤지의 표정과 <리얼 페인>이라는 제목, 그리고 홀로코스트라는 소재는 이 영화가 인간의 고통을 심도 있게 탐구하는 무거운 작품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관객의 예상을 뒤엎듯, 벤지는 지나치게 밝고 유쾌한 인물로 그려진다. 그는 종종 소소한 문제를 일으켜 주위를 곤혹스럽게 하지만, 결국 모두에게 사랑받는 존재다. 이에 반해 데이비드는 벤지를 사랑하면서도 질투하고, 그를 부끄러워하면서도 동경하며, 멀리하고 싶으면서도 걱정하는 복잡한 양가감정에 휩싸여 스스로 고통받는 사람이다.
그들이 여행하는 폴란드의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고풍스러운 도시 건축물, 그리고 쇼팽의 피아노 연주곡은 단순히 영화의 서사를 넘어, 또 다른 층위의 깊은 감동을 자아내는 중층 구조를 만들어 낸다. 이런 영화의 시청각적 아름다움은 관객의 눈시울을 적시며, 아이러니하게도 영화가 말하려는 고통의 무게를 또 다른 방식으로 강조한다. 고통을 말하려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카메라에 담긴 이미지와 음악의 아름다움은 그 고통의 경계를 이미 초월한 듯한 인상을 남기기 때문이다.
그 아름다움이 서늘한 파문을 남길 즈음, 한 가지 의문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아름다운 음악과 도시 풍경이 주는 감정적 안정감은 단순한 위안이 아니라, 어쩌면 역사적 고통의 기억 위에 세워진 균형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들이 머무는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유대인 수용소가 자리했던 것처럼, 이곳의 아름다움은 과거의 상처를 애써 감추고 있는 듯하다.
또한 이 도시의 아름다움과 아픔은 어쩐지 벤지의 밝은 모습과 내면의 고통 사이의 미묘한 공명을 닮았다. 겉으로는 환히 웃으며 사람들의 호감을 사지만, 그의 존재는 한 발짝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균열로 가득 찬 세계를 보여준다.
영화의 중후반부터 이 도시와 벤지는 마치 우울증에 걸린 락스타처 럼 보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화려함과 낭만을 뿜어내는 무대 뒤에 결코 치유되지 않는 고통과 혼란이 숨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벤지의 고통과 슬픔을 데이비드는 헤아려 보려 노력한다. 벤지는 오랜 세월 고통을 장난으로 위장하는데 익숙한 사람이다. 영화는 벤지를 바라보는 데이비드의 시선을 통해 타자의 아픔을 접근하는 방식에 대해 질문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데이비드의 고통은 어떤가. 세계사적 고통의 무게와 대비되는 그의 개인적 고통은 불안과 강박장애라는 형태로 드러난다. 데이비드는 벤지를 죽도록 싫어하면서도 사랑하는 복잡한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벤지의 자살 충동 우려는 데이비드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든다. 즉, 벤지에 대한 양가감정이 그를 끝없이 흔드는 것이다.
<리얼 페인>은 고통의 본질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는 대신, 아름다움과 이면의 고통을 교차시키며 관객을 깊은 성찰로 이끈다. 영화의 중심에 놓인 두 사촌형제, 벤지와 데이비드는 각각 고통의 상반된 표현 방식을 보여주는 두 축이다. 벤지는 밝은 모습으로 자신의 내면을 위장하며 세상과 소통하려 하고, 데이비드는 그의 고통을 이해하려 애쓰면서도 자신의 불안과 강박으로 인해 끝없이 흔들린다.
영화는 이들의 관계를 통해 타인의 고통에 다가서는 방식, 그리고 그 고통을 공유하거나 이해하려는 노력의 한계를 묘사한다. 특히, 벤지와 데이비드가 여행하는 폴란드라는 배경은 이 주제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든다. 과거의 아픔이 여전히 존재하는 공간에서, 아름다운 자연과 건축물이 주는 위안은 그 자체로 역사의 고통을 감싸 안으며 새로운 감정적 울림을 만들어낸다.
영화의 마지막, 데이비드의 저녁 초대를 거절한 채, 오프닝과 같은 모습으로 공항에 쓸쓸히 앉아 있는 벤지의 표정은 한층 더 우울하고 고통스러워 보인다. 그 표정은 여행 내내 감춰왔던 그의 진짜 모습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이 영화는 희망적인 결말을 의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데이비드가 떠나고 다시 혼자가 된 벤지는 이 고통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채 영원히 갇혀 있을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화면 한쪽에 다시 한번 <REAL PAIN>이라는 글자가 떠오르며 영화는 긴 여운을 남긴다. 이 여운 이야말로, 영화가 관객에게 전하는 진정한 <리얼 페인> 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