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손을 놓지 않기 위해, 국경 앞에 다시 섰다
그는 밤마다 아이의 숨소리를 떠올렸다고 했다.
아직 말도 서툰 나이, 혼자 남겨졌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어른들의 선택에 삶이 흔들리는 아이. 국경 너머에서 아버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서류 한 장, 도장 하나, 그리고 과거의 선택들이 그를 한국 땅으로부터 완전히 밀어내고 있었다.
그는 한때 대한민국에 머물렀다. 오래전의 이야기다. 체류기간을 넘겼고, 그 사실 하나로 삶은 급격히 기울었다. 강제퇴거명령, 미납된 범칙금, 그리고 출입국관리청 내부 전산에 남은 ‘영구입국금지’라는 붉은 표시.
법률에 명문으로 규정된 처분은 아니었지만, 실무에서는 거의 끝을 의미했다. 공항 입국 심사대 앞에서 그는 언제나 돌아서야 할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해외에서 한국인 여성을 만났다. 조용한 동거, 법적으로는 아무 이름도 붙지 않은 관계였지만 일상은 부부와 다르지 않았다. 아이가 태어났고, 아이는 어머니의 국적을 따라 대한민국 국민이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다. 혼인신고가 없었고, 출생신고만으로는 친자 관계가 완성되지 않는다. 법은 ‘인지’라는 절차를 요구했다.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사실혼은 끝났고, 아이는 방치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때 그는 결심했다.
“법적으로라도 아버지가 되겠습니다.”
문제는 단순하지 않았다. 인지청구 소송의 관할은 한국 법원에 있었고, 친자 확인을 위한 유전자 검사 역시 국내에서만 가능했다. 그러나 그는 ‘영구입국금지자’였다. 국경은 여전히 닫혀 있었다.
첫 번째 문은 ‘입국금지 특별해제’였다.
대한민국 국민인 자녀에 대한 인지청구, 친자 확인 절차의 불가피성, 그리고 양육이라는 인도적 사유. 출입국관리청은 이례적으로 이를 받아들였다. 목적 제한, 절차 종료 후 출국이라는 조건이 붙었지만, 그는 다시 한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짧은 체류기간 동안 그는 법원으로 향했다. 민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인지청구의 소를 제기했고, 법원의 명령으로 진행된 유전자 감정 결과는 명확했다.
99.99% 이상의 친자 확률.
판결문은 담담했지만, 그 문장은 그의 인생을 다시 연결해 주었다. 그는 법적으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고, 친권과 양육권의 주체가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체류기간 연장은 허가되지 않았다. 특별해제는 ‘한시적’이라는 이유, 과거의 강제퇴거 전력, 미납 범칙금. 결국 그는 다시 불법체류자가 되었고, 출국명령을 받았다.
선택지는 둘뿐이었다.
출국하면 다시 영구입국금지가 적용되어 아이와 영원히 떨어진다.
남으면 강제퇴거와 형사처벌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이때 전략은 완전히 달라졌다.
‘체류자격 변경’이 아니라, ‘체류자격 부여’.
출입국관리법 제23조는 국적 상실 등 ‘그 밖의 사유’가 발생한 경우 예외적으로 체류자격을 부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체류 중 확정된 인지 판결, 단독 친권자 지정, 대한민국 국민 자녀의 양육. 이 모든 변화는 단순한 사정 변경이 아니라, 새로운 법적 지위를 발생시키는 사건이었다.
그는 결혼이민(F-6-2), 자녀 양육을 위한 체류자격 부여를 신청했다.
출입국관리청의 답은 냉정했다. 영구입국금지자, 불법체류자, 그리고 혼인관계의 부재. 사실혼은 이미 종료되었고, 요건은 충족되지 않는다는 판단이었다.
법정에서 쟁점은 다섯 갈래로 나뉘었다.
첫째, ‘그 밖의 사유’는 어디까지인가. 법원은 이를 예시 규정으로 보았다. 체류 중 인지 판결이 확정되고 양육자가 된 경우 역시 포함된다고 해석했다.
둘째, F-6-2의 요건. 자녀 출생 당시 사실혼이 존재했고, 현재 자녀를 양육하고 있다면 충분하다고 보았다. 부모 간 관계의 유지 여부는 본질이 아니었다.
셋째, 불법체류 상태에서의 체류자격 부여 가능성. 이는 ‘변경’과 다른 예외적 경로이며, 이 사건의 불법체류는 정당한 절차 이행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했다는 점이 고려되었다.
넷째, 영구입국금지의 한계. 이는 내부 지침에 불과하며, 인도적 사유 앞에서 절대적 효력을 가질 수 없다고 판단했다.
마지막으로 아동의 복리. 유일한 양육자를 잃게 될 위험과 출입국 질서 유지라는 공익을 저울에 올렸을 때, 법원은 분명히 전자를 택했다.
판결의 결론은 조용했지만 분명했다.
대한민국 국민인 자녀의 삶과 행복은 행정적 질서보다 앞선다.
이 사례는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공식은 아니다. 다만, 법이 열어둔 ‘예외’가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보여준다. 국경은 여전히 견고하지만, 아이의 손을 잡기 위한 선택과 그 과정을 법은 끝내 외면하지 않았다.
※ 본 사례는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 각색되었으며,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수정되었습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법률사무소 어스에 문의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