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인지청구 후, 과거 양육비 청구까지

아이의 이름을 법에 올리는 일

by 백수웅변호사

변호사가 이 사건을 처음 맡았을 때, 서류의 맨 위에는 아이의 이름이 있었다. 이름은 있었지만, 법적으로는 아직 ‘자녀’가 아니었다. 혼인 외 출생자였고, 아버지는 아이를 자신의 자녀로 인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모든 문제의 출발점은 단 하나였다. 인지청구였다.


의뢰인 K씨는 필리핀 국적의 여성이었다. 한국인 남성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았고, 출산 후 고국으로 돌아가 홀로 아이를 키워왔다. 아이의 아버지는 출생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법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아무 역할을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K씨의 고민은 깊어졌다. 아이가 자라면서 필요한 것은 돈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이에게는 법적으로 아버지가 필요했다.


인지청구 소송은 단순히 친자관계를 확인하는 절차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변호사는 이 사건에서 인지가 갖는 의미를 먼저 정리했다. 인지가 인정되면, 아이는 단순히 ‘혈연상 자녀’가 아니라 법이 보호하는 자녀가 된다. 상속권, 친권, 그리고 무엇보다 부양을 받을 권리가 함께 생긴다.


재판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상대방은 친자관계를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책임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러나 법원은 아이가 상대방의 친생자라는 점을 인정했고, 친권자와 양육자는 K씨로 지정했다. 판결문이 확정되던 날, 변호사는 이 사건의 절반이 겨우 끝났다고 느꼈다.


그 다음 단계는 양육비였다. K씨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앞으로의 양육비 말고, 지금까지 제가 혼자 키운 비용도 받을 수 있나요?”


이 질문 앞에서 변호사는 다시 민법을 펼쳤다. 핵심은 인지의 효력이 언제부터 발생하는가였다. 민법은 인지가 아이의 출생 시로 소급해 효력이 발생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쉽게 말해, 판결이 나와서 부모가 된 것이 아니라 아이가 태어났을 때 이미 부모였다는 뜻이다.


이 점을 어떻게 설명할지가 중요했다. 상대방은 인지판결 이전에는 법적인 부양의무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변호사는 그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부모의 책임은 판결문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존재 그 자체에서 시작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대법원 역시 같은 방향을 택했다. 부모는 자녀를 공동으로 양육할 책임이 있고, 한쪽 부모가 아이를 혼자 키웠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상대방에게 과거 양육비를 청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인지가 출생 시로 소급되는 이상, 그 이전의 양육비도 원칙적으로 부모의 책임 범위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 변호사가 가장 신경 쓴 부분은 감정을 앞세우지 않는 것이었다. 억울함을 강조하기보다는, 법이 이미 정해 놓은 구조를 차분히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아이가 태어났고, 부모가 있었으며, 책임이 있었다는 사실. 그 책임이 이행되지 않았을 뿐이라는 점을 법의 언어로 풀어냈다.


판결 이후, K씨의 삶이 극적으로 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아이는 법적으로 아버지를 갖게 되었고, 혼자만의 부담으로 남아 있던 시간에 대해 법이 답을 내놓았다. 그것만으로도 이 사건은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변호사는 사건을 정리하며 다시 한 번 느꼈다. 인지청구는 과거를 따지는 절차가 아니라, 아이의 미래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는 것을.


※ 본 사례는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 각색되었으며,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수정되었습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법률사무소 어스에 문의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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