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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내가 못나서 그런 걸까

내 방의 먼지를 치우는 세 가지 방법

by 현의


상처를 들쑤시는 건 못할 짓이다. 그래서 함께 자라온 갖은 슬픔은 늘 묵혀두었다. 손도 닿지 않아 관심 둘 필요조차 없는 곳에, 마치 먼지처럼.






방청소를 해봤다면 다들 알겠지만 구석에 박혀있던 먼지들은 꺼내고 보면 몸집이 어마어마하게 불어나 있다. 못 본 척 그 자리에 버려두기만 하면 뭐든 그렇게 되는 법이다. 그래서 더러움을 무릅쓰고서라도 먼지들은 밖으로 내보내 져야 한다. 그렇다면 상처 또한 다시는 자라지 못하도록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는 게 맞는 일이겠지만 그게 참 쉽지는 않다. 먼지를 모조리 끄집어내어 바라보는 일이 뜻대로 되진 않기 때문이다. 먼지를 없애는 건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



침대 밑에, 가구 뒤에 다른 것들과 뭉쳐 덕지덕지 나를 기다리고 있는 먼지들을 마주하다 보면 그것들이 그 지경까지 되도록 신경 쓰지 않은 자신에 대한 책망이 따라온다. 먼지가 나풀나풀 움직이며 사라지는 반면 책망은 끈덕지게 자국을 남기며 사라진다. 끈끈한 책망은 애써 잊어버리려 했던 지난날의 못난 모습까지 걸고넘어진다.



‘그 관계가 그렇게 끝난 건 다 네 성격 때문이야. 살면서 계속 그런 일들이 일어났었잖아’ ‘네가 재미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 건 남들보다 더 못나서 그렇지’ ‘다른 사람이 얻어낸 기회를 너는 얻지 못한 이유는 네가 별 볼 일 없어서 그래’ ‘네가 그렇게 잘난 사람이라면 왜 지금 옆에 아무도 없냐?’...




어지간히 화가 나지 않는 이상 타인에게는 쉽게 하지 못할 비난을 자신에게는 스스럼없이 하게 되는 순간은 늘 찾아온다. 먼지를 끄집어내서 모조리 없애려 할 때 말이다. 먼지가 버려지지 않기 위해 있는 힘껏 단말마를 내지르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사실 그게 아예 효과가 없는 일은 아니라서 자신을 책망하는데 정신이 팔려 먼지는 뒷전이 되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내가 스스로를 질책하는 동안 먼지는 유유히 내 손을 빠져나와 본래 있던 자리로 솔솔 굴러간다. 제 몸에 붙어 있던 먼지 찌꺼기를 신명 나게 날리면서 나와 싸우는 나를 더 상처 입힌다. 자신이 끄집어낸 먼지 속에서 자신을 향해 악을 쓰는 본인의 모습을 생각해보라. 객관적인 시선으로 본다면 참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지만, 사실 나는 그러느라 오히려 먼지 투성이인 상처도 내보내지 못하고 오히려 나를 조금 더 힘들게 했다. 따지고 보면 나를 향한 비난이 딱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기도 했으니.


아직도 온 집안을 다 헤집어서 청소를 해 숨겨진 먼지를 꺼내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며 깨끗해진 공간을 즐기는 건 좀 힘들다. 어쩌면 직접 몸을 일으켜 방청소를 하는 것보다 가만히 앉아 게으른 나를 탓하는 것이 더 편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근에는 비유적인 표현의 방청소가 아니라 실제로 행하는 방청소는 전보다 신경 써서 하기 시작했다. 노란 비닐 장판에 선명하게 대비되는 머리카락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일은 귀찮기는 해도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간단한 일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콧물이 자꾸 나오는 건 아무래도 비염 탓인 것 같아 침대 머리의 먼지를 닦아내고 이불을 털고 때때로 돌돌이로 먼지를 떼어내는 일도 하기 시작했다. 책상 위에서 하루를 보내고 나면 내일을 위해 책상을 깨끗하게 치운다. 나의 오래된 상처와 마주하기 위해서는 상처를 입었을 때의 나와 현재의 내가 다른 사람이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전에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적이 없었다. 그냥 나를 책망하는데 시간을 썼다. 하지만 그래선 아무것도 해결되는 게 없다는 걸 서서히 알게 되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일을 처리하는 데 쓸 시간도 부족하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같이 헤아릴 이유도 없고 그럴 시간도 없다. 타인이 없는 데서 그 상처를 들먹이며 흥미로운 가십거리로 삼지 않는 것만으로도 안도해야 하는 세상이지 않은가. 사람들이 나의 상처에 신경 쓰지 않는다면 나 또한 굳이 내 상처의 개수를 헤아릴 필요가 없었다. 그런 생각이 들고 난 후 사회 속에서 만난 사람들을 다시 떠올려보니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는 이런 사람들이 있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라고 자주 묻지만 절대로 자기 의견은 끝까지 얘기 안 하는 사람. 다른 사람이 말할 때마다 ‘나는 ~던데?’라는 문장으로 끝내는 사람. 다른 사람은 절대 언급하지 않고 뭐든 자신이 다 했다고 말하는 사람. 틈날 때마다 ‘잘생겨서 ~할 줄 알았다’라고 칭찬하는 듯하면서도 돌려 까는 말을 하는 사람. 반대로 ‘네가 예뻤으면 저 사람이 지금처럼 ~는 안 했겠지’라고 당사자의 눈앞에서 말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은 뭐든 꼬투리를 잡아 뒤에서 흉을 보고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업무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신경 쓰는 티를 내는 사람, 나는 저 사람 싫은데 너는 왜 저 사람 싫어하는 티를 안내냐면서 시비 거는 사람, 똑같은 실수를 해도 타인에겐 엄격하고 자신에겐 관대한 사람, 자신과 의견이 맞지 않는 부하 직원은 회사 생활 힘들어질 거라고 대놓고 말하는 사람...




그들을 각기 다른 사람이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었는데, 진정으로 다른 사람을 신경 쓴다면 회사에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과 행동을 참 많이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뭐든 ‘내가 못나서...’로 시작되는 생각을 갖는 건 크게 잘못된 일이었다. ‘그래서 뭐? 뭐든 내 탓으로 돌리면 주변 사람들이 위로해주나? 정말 그럴 사람들이었다면 그런 행동들은 안 했을 텐데’라는 식으로 나의 사고는 점차 확장되었다. 물론 아직도 먼지를 꺼낼 용기가 충분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눈 앞의 먼지를 두고 내 잘못을 먼저 말하는 짓은 하지 않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먼지를 털어내기 위해 켜켜이 용기를 쌓아가고 있다. 그리고 일상생활을 하다가도 한편으로는 먼지를 없앨 방법을 계속 고민하고 있다. 지금까지 떠올린 먼지를 없애는 방법은 세 가지이다.



1. 가구 밑 먼지를 찾아내더라도 절대 먼지의 발악

(‘커다란 나를 탓할 게 아니라 날 이렇게 키운 너를 탓해’) 을 절대 신경 쓰지 말기

2. 먼지를 구석으로 방치한 건과거의 나고, 지금의 나는 그 먼지를 청소할 용감한 사람이라는 걸 알기

3. 먼지가 눈에 보일 때마다 자주자주 청소하기




이때 내가 주의하려고 하는 건 먼지를 치울 때 먼지와 나의 관계만을 보는 게 아니라 나를 둘러싼 외부의 환경까지도 염두에 두는 것이다. 상처를 외면해 키운 것도 나고 애초에 상처가 난 원인에는 내 탓도 있긴하다. 그렇지만 그때마다 ‘그래서 뭐?’라는 마음을 가지려 한다. 세상에는 자기 연민에 매몰된 사람을 위한 자리를 선뜻 내주는 사람이 없고 나는 어찌됐든 그런 세상을 살아가야 하니 맘을 단단히 먹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에게만 집중된 생각을 버리고 타인과 함께 살아갈 나의 미래를 생각하며 먼지를 없애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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