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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낡고 버석한 수건에 적시는 것

익숙함 속에서 신비함 발견해 보기

by 현의

정 없는 사람처럼 보여도 어쩔 수 없다. 그래도 한번쯤은 이런 생각을 표현하고 싶었다. 사랑은 쓰레기통 위에 천연덕스럽게 얹어 놓아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 왜냐하면 쓰레기통 속에는 대개 시간이 지나면 변질되는 것들만 존재하는데, 사랑 또한 시간에 따른 변질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쓰레기 보듯 사랑을 기피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면? 남들에게 드러내고 싶은 모습은 사랑이라는 꼬리표를 붙여 밖으로 꺼내고, 변형되고 부패한 부분은 차곡차곡 밑바닥에 묻어둘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속사정이 어떻든 간에 쓰레기통의 머리 꼭대기에 얹어진 사랑은 멀리서 보면 꽤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수많은 사랑 중, 가족 간의 사랑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거꾸로 얹어진다. 타인에게 보여주면 안 되는 말이나 행동은 가족 앞에서는 쉽게 보여주는 반면, 그럼에도 쉽게 떨쳐낼 수 없는 애정은 마음 한 구석에 깔아 두고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대부분은 그 존재를 잊어버린 척 살아가니까.


사람들은 사랑을 많이 받아본 사람일수록 사랑을 더욱 잘 전할 수 있다고 하던데 나는 가족들로부터 과분한 사랑과 돌봄을 받았음에도 가족들에게 진실된 마음을 표현하기가 어렵다. 쉽게 짜증을 내고, 마음에도 없는 말도 순식간에 하고, 눈치 보지 않고 화를 내기도 한다.


예를 들면 1년 간의 외국 생활에서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안의 생활 용품을 보며 불만을 표현했을 때. 낡은 수건을 쓰면 물기가 잘 닦이지 않고 위생에도 좋지 않다고, 다른 수건으로 교체하자는 말을 몇 번이고 말했지만 이 의견이 중요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에 불만을 품었다.


"한 번도 안 쓴 새 수건들 많잖아."


아버지의 넓은 인맥의 결과로 추정되는, 각종 행사 기념으로 받은 새 수건들. 한 번도 꺼내지 않고 옷장 한 구석에 몰아두기만 한 새하얗고 부드러운 수건을 깔끔하게 세탁한 뒤 가방에 넣어주었던 모습을 똑똑히 보았는데, 그러고도 옷장에는 새 수건이 여러 개 남겨져 있던 걸 기억하는데. 그로부터 1년이 지났는데도 집안의 수건을 교체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아 짜증을 냈을 때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그건 네가 또 떠나게 되면 그때 주고 싶어서."


위생이나 흡수력을 들먹이며 논리적인 말을 꺼내고 싶은 열망은 이 문장을 듣자마자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세상의 그 무엇도 닿지 않은 새 수건이었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한동안 만나지 못할 가족에게 줄 수 있는 모든 애정 속에 어떻게든 담가놓았던 수건이었구나.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짐이 너무 불어났다는 이유로 길가에 서있는 대형 쓰레기통 속에 다 버리고 왔었는데.


사랑은 돌아오는 것, 사랑은 돈으로 표현하는 것, 사랑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등등 사랑을 알기 쉽게 말하는 문장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널리고 널렸다. 그렇다면 '사랑은 버석한 수건을 쓸 때마다 떠오르는 것'이라는 문장 또한 이치에 맞는 말이 되겠지. 언젠가는 사랑하는 존재와 멀어질 것을 잊지 않은 채, 좋은 것은 항상 어둡고 깊숙한 곳에 남겨두고, 변질되고 낡은 것들은 시선이 자주 닿고 손쉽게 닿을 수 있는 곳에 둠으로써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이니까. 역시 가족 간의 사랑은 쓰레기통 위에 거꾸로 얹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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