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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의 Jul 04. 2020

감추고 싶은 찌질한 감정을 적나라하게 토해낸,

영국 밴드 The smiths



#하늘만이 내 비통함을 알아


( Heaven knows I'm miserable now )


나는 일자리를 구하고 있었고, 일자리를 찾았지.

하늘은 나의 비참함을 알 거야.

내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왜

내가 죽든 살든 신경도 안 쓰는 이들에게 낭비해야 하는 거지?






월요일을 맞이하기 싫어 몸부림치는 어느 직장인의 일기장에 적힌 글이 아닙니다.


첫 앨범을 발표하자마자 영국을 대표하는 국민 밴드로 자리 잡은 스미스 (The Smiths)의 노래입니다.


철없이 투덜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너무 지나치게 적나라한 것 같은 가사에 여러분이라면 어떤 멜로디를 덧댈 건가요?


저라면 요즘 세대를 대표하는 음악인 힙합을 선택하고 둔탁한 비트 위에 따박따박 쏘아붙이는 듯한 랩을 쏟아낼 것 같네요.




그런데 의외로 이 노래는 물통에 한 방울의 물감을 떨어트리는 것처럼 아주 잔잔하게 퍼지는 기타 소리로 시작됩니다.


통 안에 반쯤 찬 물처럼 찰랑이는 기타는 가사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흥겨운 멜로디를 연주합니다.


그리고 이를 뒤따라서 반쯤 하품 하는 것처럼 공기가 잔뜩 들어간 목소리로 모리세이가 노래합니다.


그는 이 노래를 부르는 내내 한쪽 팔을 열심히 흔들고, 한 자리에 서서 느릿하게 허리를 돌리고,

그때마다 그의 뒷주머니에 꽂은 글라디올러스 몇 송이도 박자에 맞춰서 흔들립니다.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하기 그지없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겠지만

그런 비참한 속내를 노래하면서도 그는 지금 자신의 기분이 내키는 대로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입니다.


뒷주머니에 찔러 넣은 꽃송이는 그래도 아름답기만 하니 상관없습니다.




저는 밴드 스미스의 노래들을 둘러싼 이미지가 바로 이런 것이라고 생각해요.


남들에게 차마 말할 수 없는 창피하고 어설프고 찌질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만

그걸 노래하는 이의 모습은 참 아름답고 심지어 흥겹기까지 합니다.


어떤 한심한 인생이라도 그 밑바닥에 깔린 감정은 결국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게 느껴져 위로가 됩니다.






#시를 읽는 듯한 목소리


모리세이의 목소리에는 울림이 가득합니다. 어쩌면 공기가 많다고도 할 수 있겠어요.


저는 처음에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 목소리 자체가 한 권의 문학책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좋은 책은 몇 백 년이 지나도 후세에  남겨지는데,

몇십 년이 지나도 예전과 변함없는 목소리로 노래하는 모리세이를 보면

정말로 그의 목소리는 문학이 아닐까 싶습니다.


짧은 머리에 건장한 체격을 가졌지만 모리세이의 목소리는 다소 높고 어딘가 아련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노래 사이에 의미 모를 짧은 탄성, 단말마 같은 고음을 내지르면서 독특한 변주를 섞는 유머감각을 보이기도 해요.


그가 만든 노래 가사도 일상적인 사랑 노래를 조금씩 뒤틀어 듣는 이를 당혹스럽게 하는데요,


정말 유명한 노래 가사 몇 가지만 봐도 그가 얼마나 변주를 좋아하는 사람인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것입니다.






#창피한 일기장 같은 가사


(Jean)

진,

행복이 무슨 의미인지 난 확신할 수 없지만

당신의 눈망울을 보면 알 수 있어...

... 그곳에 사랑은 없다는 걸


우리가 몸을 담그는 욕조에는 얼음이 있어

그러니 어떻게 여길 집이라 부를 수 있겠어

당신도 이게 무덤이란 걸 알잖아


진,

우리는 노력하고 실패하지

우리는 노력하고 실패하지

우리는 노력하고 실패하지

우리는 노력하고 실패하지

우리는 노력하고...


난 더 이상은 마법을 믿지 않아, 진...





(Still ill)

나는 오늘 선언한다

삶은 그저 앗아가기만 하고 내주지는 않는다고

영국은 나의 것이지, 내게 삶을 빚졌어

하지만 왜 그러냐 묻는다면 네 눈알에 침을 뱉겠어



(I know it's over)

네가 그렇게 웃기다면, 왜 오늘 밤 혼자인 거지?

네가 그렇게 똑똑하면, 왜 오늘 밤 혼자인 거지?

네가 그렇게 재밌다면, 왜 오늘 밤 혼자인 거지?

네가 그렇게 잘생겼다면, 왜 오늘 밤 혼자 잠드는 거지?


난 알고 있어...


오늘 밤도 다른 날과 다를 바 없으니까

그러니까 네가 오늘 밤 혼자인 거야

승리와 매력을 껴안은 채로

남들은 서로를 품에 안고 있는데



(How soon is now?)


입 다물어

어떻게 네가 감히

날더러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고 말하는 거지?

난 인간이야. 다른 이들처럼 사랑받고 싶어.


저기 클럽이 있으니 가고 싶으면 가봐

어쩌면 너를 정말 사랑하는 이를 만날 수도 있겠지

너는 갔다가, 혼자서 서 있었다가

혼자서 떠나고, 집에 가고, 울고

죽고 싶어 지겠지






저는 자기혐오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스미스의 비참한 노래들을 들으면 어렸을 때의 일기장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사실은 성인이 된 지금도 사춘기 청소년처럼 세상만사에 쩔쩔매고 위축되어 있는 찌질한 구석이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됩니다.


남들처럼 그럴듯하게 살고 싶어 노력해보지만 그럴수록 나는 그럴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느낄 때면 스미스가 생각나는 것도, 그들이 저를 대신해서 자기혐오적인 메시지를 담은 노래를 아름답게 불러주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들의 노래는 절망을 주기는커녕 제겐 오히려 위로가 됩니다.


찰랑거리는 흥겨운 멜로디 때문일까요, 흐느적거리는 모리세이의 춤사위 때문일까요?



문득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건, 사실 나뿐만 아닌 다른 사람들도 겪는 감정이며


이는 사춘기처럼 모두에게 왔다가 때가 되면 절로 지나간다는 걸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그러니 오늘은 남들에게 말하기 부끄러운 자신의 속내를 가감 없이 털어놓은 스미스의 노래들을 들어보시겠어요?


우울한 가사가 흥겨운 멜로디에 담기는 것처럼, 속상한 기분도 결국엔 흥겨운 몸짓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음악이 흐르는 대로 몸을 움직이는 뒷주머니의 글라디올러스처럼 결국엔 마냥 아름다운 하루를 보낼 수 있겠죠.


오늘 하루도 잘 이겨내고 있는 모든 이들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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