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싶지 않은 기억 하나를 고른다면?

1주차_과거 돌아보기

by 현의
365노트_7,8.gif
365노트_7,8.png
365노트_7,8 (1).gif


잊고 싶지 않은 기억 하나를 고른다면?


아날로그 시대에서만 겪을 수 있었던 것들을 모아둔 책 한 권을 본 적이 있다. 그 안에는 부엌 전화기, 전화번호 기억하기, 종이 사전, 쪽지 등등 총 100가지 항목이 소개되었다. 책에 소개된 항목을 하나씩 읽어보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지금 내가 이것들을 전부 놓치고 살고 있는 줄도 몰랐다.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도 잊은 채 살아가는 것만큼이나 무언가를 깡그리 잊었다는 증거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전에 이미 보고 들었던 과거를 되새김질하는 것보다 전혀 예측할 수도 없는 새로운 정보를 대량으로 빠르게 받아들이는 편이 훨씬 더 익숙해진 세상에 살고 있으면 당연한 일이다. 우리에게는 멈춰 설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어쩌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영영 돌아갈 수 없는 과거가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것 같다. 지금 다시 시작하라고 하면 번거롭고 불편하고 답답하기만 했을 경험이 미래에도 끝까지 기억하고 싶을 순간으로 자리 잡은 걸 보면 말이다.


8살 혹은 9살 때부터 친구와 주고받았던 편지는 먼 거리에 있는 친구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때는 대화를 하고 싶을 때마다 바로바로 전화를 걸 수도 없었고, 메일이나 문자를 보낼 수도 없었다. 무엇을 하든 일단 기다려야 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일단 편지를 쓸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고, 듣고 싶은 말이 있어도 역시 편지를 받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시간이 좀 더 흐른 뒤에는 이메일, 싸이월드, 버디버디, 스카이프 같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편지를 훨씬 더 자주 주고받았다.


우리가 주고받던 편지지 뒷장에는 편지 내용과 관련 없는 소소한 작품이 덧붙여져 있었다. 밑줄도 그림도 없는 광활한 편지지 뒷면에 친구는 그림을 그렸고 나는 그 당시 열심히 쓰고 있던 소설의 첫 부분을 보냈다. 때때로 우리는 찢어진 노트에 작품 한 편을 다시 그리거나 적어서 별도의 부록으로 보내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의 편지는 우체통에 꽂힌 다른 편지 와는 달리 언제나 두툼했는데, 그 모습을 볼 때마다 편지의 전문을 읽지 않아도 매우 설렜다.


때때로 그 시절이 그리울 때마다 일부러 차가운 생각을 한다. 어떤 과거든 언제나 미화되기 마련이고, 지금의 우리는 이미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을 게 분명하고, 지금 다시 누군가와 편지를 주고받는다고 할지라도 모든 것이 예전과 동일할 수는 없을 을거라며 미리 초를 치곤한다. 어쨌든 이제는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고, 과거가 좋았다는 이유로 언제까지고 과거를 거닐며 옛 기억을 뒤집어엎을 수도 없다. 이제는 서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을 거라는 추측도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럼에도 그때의 기억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다. 그 기억이 있기 때문에 진심을 주고받는 데 있어 거리와 시간은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믿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진심을 온전히 표현하고 나면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어떤 결과를 맞이하게 되어도 아무런 후회가 남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게다가 이제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딱히 짐작가는 바가 없어도 분명히 그 친구는 본연의 재능이 빛을 보는 곳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에 큰 걱정도 없다.


잊어버린 줄도 몰랐던 옛 기억은 나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내게 많은 걸 남겼다. 과거는 시간이 지나면 전부 다 잊어버리고, 잃어버릴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특별할 것 없는 지금 이 순간도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면 전부 좋은 경험이고 배움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체통이 두툼한 편지가 꽂혀있던 그 사소한 기억이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설렘으로 남아있는 것처럼 미래에는 지금 곁에 있는 아주 작고 사소한 일도 잊고 싶지 않을 만큼 그리워질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어도 그렇게 지나 보낸 모든 순간은 나도 모르는 사이 나의 일부가 되어버렸으니.




365노트_7,8 (2).png




✏️ #365노트챌린지 ?

하루에 하나씩 365개의 질문에 간단한 기록을 남기는 개인적인 기록 챌린지입니다. 소소한 질문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고자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쌓일수록 그 가치가 더해지는 아날로그에 대한 존경을 담아, 거친 질감의 종이 재료와 손글씨로 이미지를 만듭니다.

구겨질수록 오히려 돋보이는 비닐 질감 재료를 더하여, 반듯하게 정제되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멋이 담긴 삶에 대한 지향을 표현합니다.
365노트챌린지 시리즈는 인스타그램에서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06화작년에 놓친 기회 중 아쉬웠던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