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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공부와 사람 공부를 함께 한 계기 (1)

생전 처음으로 언어 교환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

by 현의


여러분이 영어 공부의 필요성을 강렬하게 느꼈던 순간은 언제인가? 저마다 각양각색의 이유가 있겠지만 내 경우는 영어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강제적인 상황에 처했을 때였다. 그 강제적인 순간은 바로 외국인 유학생과 프리토킹을 해야만 했을 때였다.



내가 외국인 유학생과
프리토킹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20살이 되어 처음으로 대학에 입학했을 때 가장 먼저 느낀 점은 ‘나는 이제 자유롭다’였다. 나의 언행을 바로잡을 선생님과 청소년의 유일한 목표인 수능이라는 시험도 순식간에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대학생이 된 이후로는 무조건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바로 내가 호기롭게 외국인 유학생과 함께 프리토킹을 하는 교내 프로그램을 신청한 이유이다. 어학연수를 갈 필요 없이 국내에서 효과적으로 영어 실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평범한 고등학생과 마찬가지로 이전까지 내 인생에서 외국인과 직접 얘기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세 명의 외국인 유학생들과 일주일에 총 세 번, 한 시간 동안 언어 교환을 하는 프로그램에 겁 없이 참여한 이유는 솔직히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미처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여러분이라면 처음 만난 외국인과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 아마도 외국인에게 묻고 싶은 수많은 질문들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어디서 왔는지, 왜 한국에 왔는지, 좋아하는 한국 음식이 있는지, 관심사가 무엇인지, 한국 관광명소 중 어느 곳을 가봤는지 등등. 이 모든 질문들에 답하기에는 한 시간이라는 시간이 턱없이 모자랄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처음에는 그랬다. 첫 일주일 동안 총 세 명의 외국인 유학생과 만났고 짧은 영어로 그들과 어찌어찌 이야기를 나누었다. 안 쓰던 영어를 입으로 내뱉으니 예상했던 대로 진이 빠졌지만 그래도 시간은 참 빨리 갔다. 외국인 한 명, 한국인 두 명이 한 조를 이루는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너도 나도 하고 싶은 이야깃거리가 많았다. 나는 이런 즐거운 시간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줄로만 알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이야깃거리는 첫 주에 몽땅 쏟아내니 시간이 가면 갈수록 할 말이 없었다. 월요일에 진행되는 프로그램은 그나마 사정이 괜찮았다. 주말에 뭘 했는지 이야기하고, 어떤 사진을 찍었는지 핸드폰 갤러리를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났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한국에 처음 방문한 외국인이라도 매주 여행을 할 수는 없었고, 나 또한 매번 주말마다 남들한테 이야기할만한 재밌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시간이 갈수록 영어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대화 소재가 갈수록 사라진다는 점이었다.



내 파트너는 왜 안 오지?



언어 교환 프로그램을 한 달 정도 진행했을 무렵, 나와 함께 언어 교환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친구가 돌연 중단 선언을 했다. 영어로 한 시간씩 얘기하는 게 너무 부담스럽고, 할 말도 없으며, 더 이상 이런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친구를 어떻게든 설득해보려고 했지만 친구는 곧 학교를 그만두고 편입을 준비할 예정이라는 말로 내 입을 다물게 했다.


어쩔 수 없이 그 이후로 남은 기간 동안 나는 일대일로 외국인 유학생과 프리토킹을 해야만 했다. 이는 평생 동안 내향적인 사람으로 살아온 나 같은 사람에게 아주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또한, 외국인과 이야기하는 것에 익숙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더욱 고역이었다.


정말 다행이었던 점은 언어 교환 프로그램의 규정이 꽤 느슨했다는 점이다. 한 시간 동안 서로 마주보고 대화만 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다양한 활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언어를 익히는 걸 권장했다. 그래서 그 시간 동안에는 뭘 해도 괜찮았다. 우리는 학교 근처의 맛집을 방문하거나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라운지 안에 비치된 보드게임을 했다. 이 모든 것이 다 지겨워졌을 때는 그냥 유튜브를 켜서 재밌는 영상을 함께 시청하거나 유행하는 노래를 들었다.


그런데 이런 행동들을 파트너와 함께 하면 할수록 신기하게도 주변에 있는 다른 유학생들이 자꾸만 대화에 참여했다. 그들은 대개 라운지 한쪽 구석에서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5분 정도 시간을 보내다가 나와 파트너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왔는데, 대부분은 이런 사유 때문이었다.


“파트너들이 오늘 못 온대.”


여러분이 그때의 내 심정을 짐작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나는 정말로 내향인인 데다 외국인과 영어로 대화해본 경험도 거의 없고 친분 없는 사람 앞에서도 말을 재밌게 하는 능력도 없다. 나와 성격이 정반대라면 여러분은 이것을 영어 공부를 효과적으로 할 제대로 된 기회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정말로 울고 싶을 지경이었다.



결국 첫 번째 언어 교환은
완벽한 실패로 끝났다



한 학기 동안 이루어진 언어 교환 프로그램에서 나는 큰 만족감을 얻진 못했다. 파트너와 그리 친해진 것 같지도 않았고, 매번 똑같은 주제만 되풀이해서 이야기했기 때문에 어휘력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 같지도 않았다. 리스닝에는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외국인 유학생들이 서로를 마주 보며 빠른 속도로 수다를 떨 때는 정말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해서 소외감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이걸 완벽한 실패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바라보려고 해도 불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내 특이한 점 중 하나는 내향인임에도 불구하고 성질머리가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20살의 나는 사회생활을 몸에 익히기에는 아무 것도 배운 바가 없었기 때문에 분하고 싫은 일과 마주했을 때 어떻게든 내 성격을 보여줘야만 직성이 풀렸다.


완벽한 실패를 겪은 게 너무 짜증 났던 나는 다음 학기 때에도 언어 교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두 번 연속으로 실패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과 함께.

새학기가 시작된 후, 나는 지난 학기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또 다른 세 명의 외국인 유학생들과 만났다. 그리고 지난 학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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