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기상이 늘 불편하지만은 않은 법이다
때때로 불편함이 나를 깨운다. 송곳니로 혓바닥을 꽉 깨문 채 잠들어서 얼얼한 통증 때문에 일어나기도 하고, 여름에는 모기에 물린 부위가 너무 가려워서 일어나기도 한다.
며칠 전에는 이가 너무 아파서 일어났는데 얼마나 아픈지 음식을 씹기도 버거울 지경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거니 싶었지만 도무지 통증이 가시질 않아서 다음 날 아침이 되자마자 병원을 찾아갔다. 의사는 내 어금니가 흔들린다고 했고 이는 신경이 죽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쩐지 이런 치통은 생전 처음 느껴본다 싶더라니.
그 이후로 지속된 하루는 대부분이 힘겹기만 했다. 처방받은 약은 치통을 가라앉히기는 했지만 잔뜩 가라앉은 내 기분을 다시 일으키지는 못했다. 레토르트 죽은 맛이 없고 포만감이 들지도 않았다. 아픔이 가시고 나니 그다음에는 돈 걱정이 들었다. 해야 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기분 전환을 하며 마음을 새롭게 다잡을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냥 안 좋은 기분이 생기면 안 좋은 대로 가라앉은 감정 속에 계속 머물고 싶었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하루가 계속되던 날, 우연히 새벽 4시에 일어났더니 놀라운 일을 겪었다. 평소보다 세 시간 이른 기상 시간이었지만 잠을 충분히 못 자서 불편하거나 피곤하기는커녕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그날 새벽에 일어나서 본 하늘 때문이었다.
그날도 나는 불편함 때문에 잠에서 깼다. 어디서 들어왔는지 모를 모기 때문이었다. 모기를 잡기 전에는 절대로 다시 잠들 수 없을 것 같아서 불을 켜고 방 안을 샅샅이 둘러보느라 잠이 다 깨버렸다. 모기 두 마리를 다 잡아내고 보니 시간은 5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상쾌하거나 개운하지 않은, 평소보다 세 시간 이른 하루가 그렇게 시작됐다. 늘 하던 대로 인터넷을 붙들고 이런저런 글을 읽었는데 도무지 유쾌하거나 기분 좋은 글은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문득 핸드폰에서 눈을 떼고 바라본 창밖에는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전날 비가 내려서 커다란 구름이 하늘을 온통 뒤덮고 있었지만 그 와중에도 떠오르는 해는 그 두터운 하늘을 서서히 자신의 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침대에 앉아 벽에 등을 기대고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다가 해가 뜨는 모습을 좀 더 가까이 보고자 책상 앞에 제대로 앉아보았다. 책상에는 나와 늘 한 몸처럼 움직이는 아이패드와 키보드가 놓여있었다.
어쩌면 새벽은 창작자에게 잠깐의 마법을 맛 보여주는 시간이 아닐까? 새카만 하늘에 서서히 붉은빛이 맴도는 걸 본 순간, 머릿속을 오랫동안 맴돌고 있던 생각들을 덜어내야겠다는 충동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동안 막연하게 품고 있던 걱정들과 미래에 대한 고민들, 그리고 그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미래의 구체적인 계획들을 순식간에 적어내려 갔다. 그중에는 절대로 실현시킬 수 없는 계획도 있었고,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 막연한 계획도 있었다.
무엇하나 현실적이지 않은 문장들의 마지막에는 마지막 주문을 읊듯 확언을 적었다.
‘내가 나를 믿지 않으면 어떤 성취도 이룰 수 없다. 내가 보내온 시간들에 자신감을 갖자.’
마지막 확언을 쓰고 나니 그 사이에 하늘은 완전히 변해있었다. 나 또한 무한한 우주의 일부임을 일깨워주는 듯한 다채로운 색들이 어지럽게 펼쳐져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일찍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나 많은 가능성을 볼 수 있구나.’
흔히들 안전지대에서 벗어나면 색다른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어쩌면 나의 안전지대는 우울이 마련한 웅덩이가 아닐까 싶다. 그곳에 발을 딛고 몸이 조금씩 가라앉는 걸 느끼다 보면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정말 오랜 시간 동안 나의 천성은 나이브하고 느긋하다고만 생각했지만 이런 나라도 기분이 좋지 않은 모든 순간을 느긋하게 흘려보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우울은 해결이 아님을 안다. 때로는 정말 간단한 일, 이를테면 새벽 일찍 일어난 뒤에 다시 잠들지 않는 것만으로도 우울이 고여있는 웅덩이에 길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웅덩이를 단단하게 다지다 보면 다음번에 똑같은 길을 걸어가더라도 금방 발 디딜 곳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날 새벽에 쓴 확언을 현실로 만들어낼 수 있겠지.
이 모든 시간들이 결국 나의 길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이렇게 생각함으로써 오랜 시간 나를 갉아먹었던 스트레스와 걱정에서 빨리 벗어나고, 내가 원하는 길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내가 보내온 시간들에 자신감을 갖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