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업'말고 '내 삶'을 돌볼 때도 노션은 좋은 도구
나는 인터넷 검색창에 노션을 검색하는 사람에게 이런 선입견이 있다. 자신의 업무나 공부를 더 효율적으로 설계하려는 사람, 사소한 기록을 바탕으로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넓은 시야를 가진 사람이라는 선입견.
하지만 9개월 전, 구글에서 하루 종일 노션을 검색했던 나는 딱히 그런 이미지를 가지려는 의도는 없었다. 그당시 내 머릿속을 채우던 생각은 이것 뿐이었으니까.
이 넓은 페이지에 무엇을, 어떻게 써야지?
노션을 한번이라도 써본 사람이라면 아무 것도 없는 빈 페이지가 얼마나 사람을 막막하게 하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활용도가 무궁무진하다는 노션의 특징은 초심자에게는 큰 장벽이다. 노션 팀이 만들어둔 템플릿을 이것저것 눌러보고 사용법을 익히면서 가까스로 맨 처음에 품었던 의문에 답을 낼 수 있었다.
내 삶을 모두 여기에 기록할 수 있겠어
'아예 자서전을 쓸 작정인가? 그런 걸 누가 읽는다고?'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내 소개를 잠깐 하겠다. 나를 정의하는 한 단어와 함께.
맥시멀리스트
나는 일생을 살아오면서 간직하고 싶은 것들을 너무 많이 만났다. 물질이 아니어도 상관 없었다. 예를들면 락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 공연을 보며 노래를 불렀던 열정적인 순간이나 버스를 기다리면서 온몸으로 따끈한 햇빛을 느꼈던 느긋한 순간이라도 말이다. 삶을 살아가며 만나는 모든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어떻게든 보관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꾸준히 일기를 썼고, 더 이상 내게 일기를 의무적으로 쓰게하는 어른이 사라진지 한참 지난 뒤에도 이 행위는 지속되었다.
문제는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성격과 뭐든 수집하려는 성격이 정리정돈에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이다. 소중한 기억의 부산물은 한순간에 처치곤란한 짐덩이로 변해버렸다. 코로나로인해 외출을 제한하고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나다보니 좁고 정리되지 않은 공간은 더욱더 불만스러워졌다.
그래서 일기를 쓰는 소중한 취미를 그만 둬야할지, 그동안 쌓아온 기록들을 모두 버려야할지 고민하던 차에 노션을 만났다.
내 하루는 매일 다른데,
왜 매일 똑같은 다이어리 양식을 써야하지?
노션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죽을 때까지 불렛저널 다이어리를 쓸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생각했었다. 이 페이지에 뭘 써야하는지 틀을 딱 정해놓은 다이어리는 두 달만 써도 질렸다. 늘 관성적인 일을 하는 건 지겨웠고 주도적으로 페이지를 기획하는 게 전혀 힘들지 않았다.
그래서 노션의 온갖 기능들을 하나씩 다 눌러가면서 만들어낸 나의 첫 페이지는 다이어리 템플릿이었다.
뭐든 쉽게 만족하지 못하는 성격 덕분에 나의 첫 노션 다이어리 페이지는 계속 변화했다. 보기 좋은 사진을 넣는 게 실질적으로 생산성을 높이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사진을 삽입하는 칸을 제거하고, 매일 아침 확언을 쓰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를 들은 뒤에는 확언을 적는 칸을 추가하기도 했다. 모닝루틴을 기록하는 태그를 만들었다가 한달만에 지겨워져서 기껏만든 모닝루틴 템플릿과 연동시킨 데이터를 삭제하기도 했다.
하지만 노션을 처음 만난 후로부터 9개월동안 다이어리를 써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하루 하루의 데이터를 9개월동안 기록하고 보관했다는 건 내게 큰 의미를 전해주었는데, 그 의미를 크게 3가지로 추리자면 이러하다.
1. 나의 감정에 '그냥'이란 없다는 걸 알게되다
나의 노션 다이어리 템플릿에는 하루의 기분을 기록할 수 있는 태그 기능이 있다. 그래서 필터 기능을 사용해서 매월 마지막 주가 되면 나의 한달을 지배했던 감정을 살펴볼 수 있다.
그 결과 피곤한 날, 하루의 만족도가 낮은 날, 아픈 날이라는 태그가 붙은 하루에는 꼭 이유가 있다는 걸 알게되었다. 그날 쓴 일기를 살펴보면 대개 목표한 일을 끝내지 않고 어영부영 시간을 보냈다거나, 다른 사람과 내 처지가 비교된다같은 글이 적혀있었다. 게다가 그 글은 상당히 길고 지겨울 정도로 구구절절했는데, 타이핑으로 분량 제한 없이 편하게 쓸 수 있다는 디지털 다이어리의 장점 덕분이었다.
여기서는 간단히 요약하겠다. 내가 평상시에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매사에 이상향과 기대치를 너무 높게 잡았기 때문이었다. 짜증을 그 순간에만 마음에 품고 어딘가로 발산하지 않았다면 내가 '정확히' 무엇에 그렇게 열을 받는지 확신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냥 어떤 사람, 어떤 상황이 문제라고 여기고 화를 밖으로 발산하느라 나에 대해 탐구할 기회를 놓쳤을 것이다. 모든 감정의 근원은 나로부터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 내가 자유를 생각보다 많이 좋아한다는 걸 알게되다
노션으로 만든 페이지는 내가 의도적으로 공유하기를 선택하기로 설정하지 않은 이상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사진, PDF, 링크, 동영상, 심지어 위젯도 자유롭게 삽입할 수 있다.
그 결과 노션으로는 빼곡하게 글로만 채워진 단조로운 다이어리 페이지를 쓸 수도 있고, 그날 하루를 대표하는 노래를 동영상으로 첨부하고 노래 감상을 쓸 수도 있으며 (심지어 어느때곤 그 노래를 재생할 수 있다), 좋아하는 사진을 마음껏 삽입하고 자유롭게 배치할 수도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한 편의 일기를 쓸 때 이렇게 많은 아이디어를 동원할 수 있다는 걸 알았고, 매일 다른 템플릿을 시도하는 과정을 즐기는 나 자신을 보며 내가 생각보다 자유를 많이 사랑한다는 것도 다시금 깨달았다. 내가 겪은 하루를 기록하다보니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성향을 찾게된 것이다.
3. 때로는 과정이 결과만큼 중요하다는 걸 알게되다
물론, 매일 매일 다이어리를 쓰는 건 지겹다. 다이어리 쓰는 걸 하루 빼먹는다고 아무도 눈치 주지 않는 상황에서는 더욱 지겹다. 하지만 다이어리를 꾸준히 쓰는 과정을 SNS에 공유하면서 깨달은 바가 하나 생겼다. 때로는 아직 이뤄낸 것이 없더라도 노력하는 모습을 전시하는 것 자체가 다른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기운을 줄 수 있다는 것 말이다.
한 분야에 통달한 전문가나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일 정도의 재능을 갖추지 않은 사람도 일상을 '성공'으로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과거의 나는 아니었다. 최소한 돈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때 비로소 성공을 논할 수 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살다보니 성공의 기준은 남들마다 다 달라서 내가 '내 기준의'성공을 이뤘더라도 남들에게는 충분히 성공으로 비춰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걸 알게된 이후 나는 삶의 척도를 '성공'이 아닌 '만족'에 둬야한다는 어느 동기부여 책에 나온 글귀를 제대로 마음 속에 새길 수 있었다.
이것이 내게 만족스러운 일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하루를 기록하는 과정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삶에 만족한다. 그래서 9개월 간의 기록이 어떤 '성공적인 결과'를 이끈 건 아니어도 만족스럽다. 과정은 결과만큼 중요하니까.
하지만 무한한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는 노션을 다이어리로만 쓴다는 건 내게도 살짝 아쉽기는 했다. 게다가 노션을 '어떻게' 써야하는지 방법을 익히는 것만큼이나 '무엇을' 기록하는지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의 하루를 줄줄이 나열하는 다이어리를 만드는 걸 넘어 무언가 색다른 걸 기록할 수 있는 또다른 템플릿이 절실했다.
그 템플릿을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앞으로 차근차근 기록해보려 한다.
[공유] 노션 다이어리 템플릿 만들기
https://blog.naver.com/bobshoowa/2222804169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