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껄끄러운 사람을 사랑으로 덮어버리는 방법

내 선택에 책임을 진다

by 현의

나는 특정 부류의 사람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과시하는 사람, 인정 욕구가 대단히 많은 사람, 힘든 일이 있을 때만 찾아와 공감을 요구하는 사람 등등. 그들 앞에 앉아있으면 나는 사람이 아니라 상대를 돋보이게 하는 어떤 도구가 되어버린 기분이 든다. 그리고 이들과는 대화를 주고받았다기보다 나라는 사람의 존재와 감정을 일방적으로 내준 것 같다.


예전에 친하게 지내고 싶었던 어떤 사람과 우연히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나는 평소에 그 사람과 썩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 사람의 말과 행동, 작품을 오랫동안 보면서 친근함을 느꼈다. 항상 이 사람은 나와 참 비슷한 면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식사자리가 상대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꿔놓을 거라고는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사람은 나를 돌아보게 했다. 내가 비사교적으로 굴었나? 내가 대화를 능숙하게 이끌어내는 능력이 없나?


아니면 사실 우연이 아니라면 절대 말 섞을 일이 없을 만큼 내가 아무런 매력도 없는 사람인가? 이런 의문까지 들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식사를 하는 내내, 나를 궁금해하지 않았으니까. 그저 일방적으로 자신의 지식과 아이디어를 꺼낼 뿐이었다. 우리의 관계와는 큰 관련이 없고,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기 위한 대화 소재로는 적합하지 않은 이론과 지식이 쏟아졌다. 더 큰 문제는 그 사람이 과시한 지식의 대부분은 이미 나도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나이가 같았고 취향과 성격도 유사했으니까.


식사가 마무리될 때 그 사람이 말했다. “재밌는 대화였어요.” 나도 그 말에 어느 정도 동의했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불쾌하거나 끔찍한 시간을 보낸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들을 수 있어서 신선하기도 했다. 그저 우리가 정말 ‘대화’를 했는지만 확신할 수 없을 뿐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상대방을 궁금해해야겠어. 눈앞에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더 많은 호기심을 가져야겠어. 사람이 도구로 사용될 때의 기분을 아니까.




며칠 전에는 친구로부터 오랜만에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다. 그 연락을 듣고 마냥 기쁘지는 않았다. 그 친구와 함께 있을 때마다 나는 친구의 하소연을 오랫동안 들어야 했으니까. 사회초년생은 어떤 일을 해도 어려울 수밖에 없으니 친구에게 공감해준 순간이 많았지만 돌이켜보면 그 공감이 나를 힘들게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찬찬히 생각해보니 이 관계의 불편함도 내가 어느 정도는 관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의 사업가 게리 바이너척의 책에는 이런 말이 쓰여있다. 무슨 일을 하든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면 마음이 편해진다. 그래서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늘지 않아 고민하는 인플루언서가 있다면 여러 플랫폼으로 확장하지 않고 오직 인스타그램에만 집중한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을 편안하게 인정하고 거기서부터 새로운 방향을 찾으라고 조언했다.


나는 이 말이 세상 모든 일을 자신의 탓으로 돌려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진 않는다. 그저 남을 비난하고 싫어하는데 쓸 에너지를 자신에게 집중하고 삶을 스스로 주도하라는 의미로 여긴다.


만날 때마다 내게 불평만 하거나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는 사람이 싫을 수 있다. 하지만 그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사람은 나이기 때문에 내게도 책임이 있다. 내게 부여된 그 책임은 껄끄러운 사람이 내게 했던 것과 반대되는 행동을 타인에게 보여줌으로써 발현될 수 있다. 혹은 껄끄러운 사람마저도 사랑으로 감싸지 못하는 나의 미성숙함을 반성하는데 쓸 수도 있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그 모든 일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에게 사랑을 주는 방향인건 동일하다. 나는 사랑이 인간관계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지만 그건 오직 사랑의 의미가 성애로만 한정될 때뿐이었다. 서로 가정을 꾸리고 한 침대를 쓰기 위한 사랑이 아닌, 그저 인간 대 인간이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사랑이라면 나는 언제든 환영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껄끄러운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내 선택에 더욱 책임을 지고 싶다. 내게 사랑이 부족하다는 걸 인정하고 어떻게든 상대의 좋은 점을 찾아내거나, 나는 그런 행동을 싫어한다는 걸 인정하고 그와 똑같은 행동을 하지 않도록 노력하거나. 어느 방향으로 가든 나는 상관없다. 남을 싫어하는 것보다 이 편이 내게도 편안하니까. 게다가 사랑은 하지 않지만 사랑은 누구에게든 내줄 수 있는 사람으로 사는 것도 재밌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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