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하는 사람이 된다
다 큰 어른으로서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살다 보면 바보처럼 보일 게 눈에 뻔이 보이는데도 일단 해야 하는 일이 있다. 그러면 놀랍게도 정말 바보같이 보이긴 보이는데 그래도 무언가를 해낸 바보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바보는 무엇이 되었든 일단 도전해본 경험을 바탕으로 조금씩 성장한다.
내가 주로 바보같이 보일 때는 낯선 사람을 만날 때다. 처음 만난 사람들과 무슨 소재로 대화를 해야 좋을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음식점 앞에서 함께 줄을 선 낯선 사람과 스몰토크 하기? 내 뇌세포는 그런 행동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머릿속에 담지도 않는다. 온라인에서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을 만나 문화생활 하기? 자리 잡고 앉아서 한참 동안 내면의 용기를 있는 대로 끌어올려야 시도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살면서 가장 바보 같았을 때는 따로 있다. 실패하고 고생할 게 뻔히 보이는데도 도전했을 때. 주변 사람들 누구도 내가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실제로도 성공하지 못했던 일을 시도했을 때가 내 인생에서 최고로 바보 같았다. 심지어 정말 바보가 맞긴 한 건지 그런 일을 한 두 번 한 것도 아니다.
영어도 썩 잘하지 않고, 해외에 단 한 명의 지인도 없고, 심지어 전공과 관련된 직무가 아닌데도 해외 인턴에 도전한 일
낯선 사람들 앞에만 서면 할 말을 잃어버리는데도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2박 3일 해외여행을 한 일
남들과 다른 처참한 포트폴리오를 들고 전공과 관련 없는 새로운 직무에 도전한 일
하나같이 일단 시도는 했지만 성공적인 결과를 이루지는 못한 경험들이다. 이 경험의 결과를 간략하게 써보면 이러하다.
해외 인턴: 해외에서 했던 일과는 다른 직무로 일자리를 구하려니 잘 되지 않았다. 부모님은 괜히 해외에서 시간과 돈만 썼다며 몇 년 동안 나를 질책하셨다.
2박 3일 여행: 마지막 날 밤에 의견 불일치로 싸움이 날 뻔했다. 서로 정산할 금액만 주고받은 후 다시는 연락하지 않았다.
포트폴리오: 현직자에게 보여주니 ‘이런 쪼들리는(?) 포트폴리오는 아무도 안 본다’는 소리만 들었다.
어떤 결과는 더 이상 내게 아무 영향도 주지 않을 정도로 사소하다. 어떤 결과는 이제 먼 옛날 일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래도 나쁘지 않은 결과이다. 사람들에게 해줄 말이 많아졌다는 점, 그리고 나도 이 경험을 바탕으로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말이다.
커리어 상으로 해외 인턴 경험이 내게 도움된 적은 없다. 하지만 어디서든 당당하게 이런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사람이 기계처럼 이용되는 일을 싫어한다. 기계가 아닌 사람으로서 말하고 생각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마음도 헤아려야 하는 일을 원한다. 그래서 최대한 물류부서의 경험을 어떻게든 살려서 마케팅이라는 직무에 도전할 수 있었다.
모르는 사람과 싸울뻔한 2박 3일 여행도 좋았을 리가 없다. 그냥 나는 사람들과 친해지려면 시간이 좀 필요한 성격이란 걸 잘 알게 되었을 뿐이다. 사교성이 엄청 늘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재탄생하지도 않았다. 여전히 낯선 사람과 서스럼없이 지내는 성격은 아니지만 신기하게도 더 이상 낯선 사람을 만나는 상황을 피하지 않게 되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든 일단 새로운 사람을 내가 먼저 찾아내서 함께 시간을 보냈던 경험은 내게 성공이나 다름없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모르는 사람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함께 먹고, 자고, 이동했던 경험은 몇 년 후 다른 모임에 참여할 때 두려움을 한결 덜어주었다. 이제는 낯선 사람과의 모임을 하도 많이 해서 예전만큼 어색하지 않다.
처참한 포트폴리오는 사실 아직도 나아지지 않았다. 무엇이 좋은 포트폴리오인지 알면서도 그걸 내가 직접 구현하는 게 마음처럼 안 된다. 솔직히 내가 봐도 내 포트폴리오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고 읽기도 버겁다.
그런데 참 감사하게도 그 포트폴리오를 끝까지 읽어보고 내게 기회를 주신 사람들이 많았다. 그 경험 덕분에 이제는 처참한 내 포트폴리오를 부끄러워하거나 숨기기보다 일단 다른 회사에 계속 들이밀 수 있게 되었다.
아마존 밀리언셀러를 달성한 미국의 창작자 오스틴 클레온은 저서 ‘킵 고잉’에서 이런 글을 썼다.
무언가를 시도해도 즐거움을 느낄 수 없다면, 비법이 또 하나 있다. 할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하여 최악의 작품을 만들어보는 것이다.
자네는 어리석고, 멍청하고, 경솔하고, 얼빠진 사람이 되어보아야 해. 그러고 나면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지. ‘형편없는’ 작업을 해 봐. 가능한 한 최악의 작품을 만들고 그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게나. 무엇보다도 편안한 마음과 망칠까 봐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네
‘킵 고잉’은 예술가의 창조성을 복구하는데 도움을 주는 자기 계발서이다. 하지만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이 말은 마음에 두고두고 새길만 하다.
어른들은 바보처럼 보이거나 미숙해 보이는 걸 꺼린다. 어른이라면 혼자서 독립적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만연해서 그런 걸까. 이제는 실수를 해도 너그럽게 이해해줄 사람을 찾지 못해서 그런 걸까. 어느 쪽이 되었든 실수하는 어른으로 살기에는 만만치 않은 세상이다.
나도 어설픈 어른이 되는 건 여전히 피하고 싶다. 뭘 하든 할 수 있는 최상의 결과물을 내고 싶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형편없는 작업을 하는 어른이 되어야 뭐가 되었든 할 수 있는 어른도 될 수 있다. 뭐가 되었든 하는 수밖에 없다. 아무리 바보 같고 멍청하고 바라던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이제 막 시작된 7월부터는 바보 같아 보이는 행동을 최대한 해보고 싶다. 그 행동이 미래의 나를 어디로 끌고 갈지는 전혀 짐작 가는 바가 없다. 그래도 무엇이든 하는 사람으로 산다는 건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바보 같지만 멋진 사람이 되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