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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질수록 단단해지는 마음이 있다

<안티 프래질>을 삶에 적용하는 법

by 현의

가을이 다가와서 울었던 적이 있다. 사랑했던 세상과 정말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느껴져서.

내가 한때 사랑했던 그 세상은 필리핀이었다. 그곳에는 영원한 여름, 낯설지만 따뜻한 외국인, 그리고 목덜미에 타투를 한 첫사랑도 있었다. 내 인생에도 사랑하는 사람이 생길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깨달은 순간, 그와 동시에 어느새 가을이 되어버린 이 계절처럼 사랑 또한 절대로 오래 지속되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동시에 품으며 살던 순간이었다. 그 경험이 너무나도 강렬했던 나머지 아직도 나는 사랑이란 불안이라고 생각한다.


불안이란 몸과 마음이 편하지 않고 조마조마하다는 뜻이다. 성애적인 의미의 사랑 말고도 일상에서 발견되는 사랑에 파묻힐 때에도 나는 꽤 조마조마해진다. 예를 들면 내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나를 불안하게 하는 도전과 위험을 무작정 피해버리는 일이 그렇다. 그런데 그 회피는 사랑하는 나의 미래를 망쳐버려서 또 나를 불안에 떨게 한다. 현재를 온전히 즐기지 못한다는 사실이 나를 또다시 나를 불안 속으로 끌어내린다. 내가 사랑했던 세상과 내 사랑을 품던 마음은 그렇게 조마조마하게 조각나버린 뒤 다시 조립되기만을 기다린다.


불안으로 조각난 마음이 다시 조립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이미 조립되고 해체되는 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원본과는 결코 같을 수 없다는 의미이다. 원본은 부서진 적이 없기 때문에 재조립될 수조차 없으니.


하지만 원본과는 전혀 다른 마음을 지녔다는 사실이 대체 무슨 문제가 될까? 마음이 조각나는 게 무슨 대수일까.


세상에는 충격을 가해야만 더 단단해지는 물질도 있다. 부러지지 않는 검을 만들기 위해서는 검을 불에 달군 뒤 망치로 여러 번 내리쳐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베스트셀러 <블랙스완>의 저자 나심 탈래브는 충격을 받을수록 단단해지는 상태를 안티 프래질이라고 명했다.


나는 부서진 마음도 안티 프래질이라고 믿기로 했다. 위기를 겪을수록 더욱 성장하고 강해진다고 생각하려고 한다. 이제 나는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바뀔 때 더 이상 누군가의 타투를 떠올리지도 않으니. 그래서 어떤 일을 하지 않아서 자꾸만 불안해진다면 차라리 어설프게라도 시도해보기로 했다.


물론 그 시도 때문에 마음 한 구석을 받치는 부품 하나를 잃어버리기도 할 것이다. 혹은 마음 자체가 뒤틀리고 금이 가서 안쓰럽게 어기적거리기도 하겠지. 그래도 상처받지 않은 마음의 원본에서는 찾을 수 없는 단단함이 그 안에 있을 것이다. 그걸 발견하게 된다면 더 이상 속상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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