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소설가 세바시 강연을 보고 나서
나는 용서한다. 겁쟁이의 마음을 매달고 대범한 사람처럼 욕망하는 나를 용서한다. 왜냐면 적어도 나는 '왜 내가 원하는 것을 내주지 않냐'라며 남에게 빈정거릴 정도로 미성숙한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렇게 급하게 얻고 싶었다면 진작 움직였어야지'라고 스스로를 비꼬고 싶은 마음마저도 용서한다.
지금 나는 흑백 필름으로 찍힌 세상을 보는 기분이다. 형형색색으로 나아가고 있는 사람을 내 두 눈으로는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 흑백 사진도 나름의 매력이 있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나는 내게 없는 다채로운 색을 가진 사람과 나란히 서기를 원한다. 실상은 그렇게 열심히 발을 옮겨도 나는 여전히 흑백인 채로 있을까 봐 겁이 나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으면서.
이런 나를 용서한다는 건 과거를 보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다. 지나간 사람은 그대로 지나가게 내버려 두고, 지나간 사람이 남긴 감정 또한 지나온 길에 묻는 것이다. 가끔 새로운 추억을 만들고 싶을 때는 뒤를 돌아볼 게 아니라 옆을 보면 될 것이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를 존중하는 사람들 옆에 서는 것. 내가 다른 사람이 아닌 하필 '나'이기 때문에 상황이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절대 꺼내지 않은 채.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걸어갈 방법은 수없이 많다. 그래서 이제 다 잊은 줄로만 알았던 사람을 매우 사소한 일로 다시 떠올린 나를 용서한다.
강연 포인트
글을 쓸 수 있는 한, 우리는 살아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글을 쓸 수 있다면 그는 파괴되지 않은 것입니다.
영상을 보게 된 계기
2년 전에 그만두었던 습관을 다시 시작했다. 누구도 보지 않는 종이에 나의 할 일을 담백하게 작성하기. 어떤 스티커도 마스킹 테이프도, 사진도, 심지어 손그림도 없다. 뚜껑을 잃어버린 볼펜을 들어 종이 한 줄에 할 일 하나를 적기 시작했다.
밋밋하고 단조롭고 남들 눈에 전혀 띄지 않지만 내가 오늘 해야 할 일은 깔끔하게 보여주는 모습. 어떤 인생을 살 수 있을지 미리 정해둘 수 있다면 나도 이렇게 되고 싶다. 여러 사람의 눈을 사로잡는 형형색색의 사람이 되지 못해도 상관없으니 가장 하고 싶은 일 하나만큼은 제대로 해내는 사람.
그렇게 지난날의 습관을 들춰보다가 알게 되었다. 나는 2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미래만을 보면서 살았다. 항상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상상하고, 그 분야에서 이름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보았다.
그래서 김영하 작가의 세바시 강연을 보고 난 뒤의 감상을 지난날의 일기에도 기록해둔 것이다. 언젠가는 글을 쓰며 살아갈 것이라고 믿으면서.
하지만 그때의 나는 '나는 용서한다'로 시작하는 글을 쓰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날에 본 김영하 작가의 세바시 강연을 다시 재생하고 무엇을 용서하면 좋을지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지금 당장 떠오르는 딱 한 사람에 대해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