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하지도 멋지지도 않아도 락을 듣겠다
이전에 블로그 이웃 오제님과 만났을 때 이런 질문을 들은 적 있다.
"책, 영화, 음악 중 한 평생 한 가지만 소비할 수 있다면 뭘 고를 거예요?"
나는 큰 고민 없이 음악을 골랐다. 책은 내가 쓰면 되고, 영화는 안 본지 반 년쯤 되었는데도 사는데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내 삶에서 음악을 빼앗긴다면? 상상력은 부족하고 말은 냉소적으로 하고 배배 꼬인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거의 대부분의 스트레스를 음악을 듣는 것으로 해소하기 때문이다.
나는 다양한 장르를 열린 마음으로 들을 수는 있지만 사실 신나거나 강렬한 노래만 철저히 편식해서 소비한다. 신나고 거칠고 규칙이 없고 정제되지 않은 노래를 듣는 걸 사랑한다.
다만 말 그대로 듣는 것을 사랑할 뿐이다. 락밴드의 고정관념이라고 할 수 있는 남다른 패션 감각과 헤어스타일, 마르고 길쭉한 체형으로 눈에 띄게 쿨해 보이는 사람이 되진 못했다. 사람들이 나를 묘사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는 동그라미이다. 그리고 동그라미에는 별로 멋진 점이 없다...
실제로도 나는 멋짐의 상징인 레더 재킷도, 닥터마틴도, 검은 네일도, 피어싱이나 문신도 없다. 담배도 술도 취향에 안 맞는다. 눈에 띄는 뾰족함이 없는 동그라미 인간처럼 내 취향에는 심심한 구석투성이다. 최근에 시도한 숏컷을 빼면 별로 눈에 띄는 점도 없고 실제로도 굳이 남들 눈에 띄려고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락을 좋아하는 이유는 자신만의 주관을 담은 예술이기 때문이다. 어딜 봐도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서로 다른 락밴드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키워드는 당당함이다. 어떻게 생겼고, 무슨 옷을 입고, 어떤 노래를 하든 그들은 밴드를 하는 스스로를 멋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대체로 그 생각은 사실이다.
맥도날드에서 케첩 좀 더 달라는 말도 못 하는 위축된 사람이 들을 법한 노래를 만들어도, 세상에 나를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사춘기 어린애처럼 징징거리는 노래를 만들어도, 머리가 쨍하게 울릴 정도로 시종일관 소리를 지르는 노래를 해도 락이다. 엉망진창에다 제멋대로 굴어도 독특한 멋으로 받아들여지는 포용이 좋다.
게다가 락은 한없이 부드러워질 수도 있지만 대체로 강렬하다. 때로는 지저분하고 거칠수록 특유의 매력이 배가 되기도 하는데 그런 점이 또 내 취향에 맞다.
생각해 보니 나는 항상 인상적이고 남다른 것을 좋아했다. 예를 들면 절대로 클리셰를 따르지 않는 B급 영화, 강렬한 원색으로만 구성된 미술 작품, 어느 장소에 가든 그곳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눈에 띄는 사람에게 제일 먼저 발동되는 호기심 등등. 강렬함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시종일관 나와 함께한 오랜 취향, 혹은 친구이다.
이러한 강렬한 취향을 누구든지 표출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장르가 바로 락이라고 생각한다. 실력이 완벽하지 않아도, 남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있지 않아도, 시끄럽게 굴다가 갑자기 조용하게 굴어도, 다정하게 노래하다 대뜸 요란스럽게 소리 질러도 락의 일종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곡에서도 보컬, 기타, 베이스, 드럼 모두가 다른 소리를 내는데, 그중 어느 소리를 집중해서 들어도 아무 문제 없다는 자유로움마저도 락이다.
어릴 때는 내가 어린애이기 때문에 이런저런 제약이 많은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세상에는 제약이 많았다. '나이를 한 살 더 먹을 때가 다 되어가는데 왜 여전히 나는 이대로일까' 하는 생각에 빠지며 어린 시절에 즐겨 들었던 밴드의 노래를 오랜만에 찾아들었다. 어릴 때는 귀 기울여 듣지 못했던 가사가 이날따라 유난히 귀에 잘 들어왔다.
'굉장히 사춘기 같은 노래 가사인데 나를 잘 이해하고 있네'라고 생각하던 도중, 락의 자유로움은 언제나 나를 위로해 주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남달라도 괜찮다. 오히려 그 편이 남들의 인상에 깊게 남고, 나는 그런 강렬한 유연함을 언제나 사랑했다.
새삼스럽게 그걸 알고 나니 락밴드에 대해 실컷 이야기하고 싶어져서 이 글을 썼다. 락을 안 듣는 사람들에게 말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야기, 락은 무섭고 시끄러운 음악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은 빼먹어버렸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