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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것에는 3가지 이유가 있다

콘텐츠 제작과 피드백에 대해

by 현의
세상 모든 것에는 3가지 이유가 있다.

1) 다른 사람들에게 공식적으로 말하는 이유
2) 스스로에게 말하는 이유
3) 진짜 이유


1. 공식적으로 말하는 이유

공식적으로 나는 나만의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다. 나만의 콘텐츠라는 모호한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단어의 경계가 흐릴수록 다양한 요소를 포함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손으로 만드는 일이라면 뭐든 좋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드는 데 시간을 썼다.

인스타그램이나 메타에 올라갈 광고 소재를 만드는 것에서부터 기업의 캠페인 및 상품 상세페이지를 기획하거나, 진지한 정보성 텍스트 콘텐츠, 단순한 흥미 위주의 카드 뉴스 콘텐츠를 만들기도 했다. 동기부여를 주제로 한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고 판타지 소설과 SF 소설을 각각 10만 자 정도 쓰기도 했다. 영상 편집에 대해 아는 바는 하나도 없으면서도 평균 8분 분량의 유튜브 영상을 혼자서 반년 넘게 만들었다.​


이렇게 다양한 콘텐츠를 만든 이유를 ‘공식적으로’ 말하자면 이러하다. 나는 사람들의 반응을 예민하게 살피고, 더 나은 성과를 내기 위해 피드백을 바탕으로 콘텐츠를 재수정하는 작업이 어렵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


실제로도 피드백을 받는 일은 이제 익숙하다. 나의 첫 피드백은 12살 때 매주 논술 학습지를 구독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덕분에 수줍은 초등학생의 삶과는 어떤 관련도 없는 성형 수술 찬반, 스크린쿼터제 찬반과 같은 시사 이슈를 주제로 커다란 원고지에 내 생각을 줄줄 써야만 했다.​


초등학생의 작은 머리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떻게 글을 써도 그 노력과 고난이 무색하게도 선생님은 잔뜩 흐트러진 어른스러운 글씨체와 빨간 볼펜으로 엄청난 분량의 교정을 해주었다.​


주어와 서술어가 맞아야 한다, 문장은 이렇게 길게 쓰면 안 된다, 이 문장은 의미가 뭔가? 이건 삭제해도 아무 문제 없다, 이 주장은 근거가 부족하다, 서두의 분량이 너무 길다, 마무리가 빈약하다, 이 주장은 설득력이 있나? 하고 싶은 주장은 한 문장으로 압축해야 한다 등등…. ​


그때부터 나는 내 수준에서 최선을 다한 노력이 타인의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서서히 깨달았다. 나의 마음과 다른 사람의 마음은 완벽히 일치하지 않고, 내가 얼마나 고생을 하든 혹은 얼마나 진심을 담든 그 마음이 남에게 온전히 전달되기란 어렵다는 걸 일찍 알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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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스스로에게 말하는 이​유


하지만 스스로에게 말하는 진짜 이유는 공식적인 이유와 좀 다르다. 나는 솔직히 마음 깊은 곳에서는 피드백을 통해 콘텐츠를 재수정하는 건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피드백을 받아들이는 것뿐만 아니라 피드백을 주는 일 또한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것도 확신하게 되었다.​


베스트셀러 저자이자 벤처 투자자인 게리 바이너척도 ‘부와 성공을 부르는 12가지 원칙’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신에게 가장 부족한 부분이자, 가장 개선하고 싶은 부분은 친절한 솔직함이라고 말이다. 게리는 직원들에게 솔직한 평가를 주기가 너무 힘들어서 마냥 긍정적인 피드백만 주었는데, 이는 결국 직원에게 좋지 못한 결과를 주었다고 진솔하게 회고했다​


거절을 굉장히 못하는 사람으로서 나도 게리의 심정에 매우 공감한다. 나도 주말 약속을 거절하고 싶어도 고민만 끊임없이 하다가 결국 솔직하게 얘기하기를 포기하고 밖으로 나갈 때가 있었다. 다른 사람의 창작물을 솔직하게 평가하는 일은 그보다 더 못한다. 머릿속으로는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면서도 정작 입은 안 떨어진다. 그게 전혀 바람직한 행동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렇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타인의 솔직한 피드백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법을 익히게 되었다. 마음은 힘들지만 그럼에도 견디는 법을 알아가게 된 것이다. 피드백을 주는 사람 입장에서도 참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게 꼭 필요하기 때문에 힘겹게 꺼낸 말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에게는 ‘피드백은 받아들이는 건 어렵다, 하지만 솔직한 피드백은 더 나은 결과를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준다’이라고 말하게 되었다. 내가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혹은 방향을 똑바로 잡을 수 있도록 일러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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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진짜 이유

하지만 이처럼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수용적인 태도가 정말 바람직할까? 솔직히 요즘에는 이런 고민에 빠져있다. 나의 생각을 객관적인 시선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건 물론 굉장히 좋은 일이다. 하지만 상대방도 마냥 수용적인 의견을 원하지는 않는다는 걸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어떤 사람은 피드백을 통해 의견을 주고받고 싶어 했다. 일방적으로 수정사항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그래서 무엇이 올바른지, 나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어떤 면에서는 소신이 있는 것 같다가도 어떤 상황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신념을 건들거나 비도덕적이거나 상식을 벗어날 정도로 매우 끔찍하게 싫은 일만 아니라면 웬만해선 다 좋아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만든 결과물에 자신감이 부족하기 때문일까? 어쩌면 직장에서의 인간관계를 너무 염려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게다가 일상생활에서 ‘정말 싫어하는 끔찍한 일’을 만나기도 웬만해선 쉽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으로 비치게 된 걸지도 모르겠다.​


사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피드백을 마냥 잘 수용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지 않다. 내 주관을 어떤 상황에서 누굴 말하든 솔직하고 설득력 있게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구의 앞에 서있든 자신다움을 유지하는 사람을 가까이에서 보니 그 모습이 얼마나 멋지고 대단한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의견이 진심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거스르고 끝까지 추구할 만한 이유가 있는지 자주 고민한다. 이러한 불확실함을 늘 마음 한편에 달고 다니기 때문에 콘텐츠를 만들 때에는 내 의견이 얼마나 정확하고 왜 옳은지에 집중하기보다는 우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게 되었다.​


하지만 친절한 솔직함은 게리 바이너척도 어려워하는 게 아닌가. 어디까지 당당해져도 좋은지, 내가 잘못된 고집을 부리는 건 아닌지, 이런 의견을 말해도 괜찮은지는 아무리 나이가 많고 돈이 많고 사회 경험이 많아도 정답을 알 수 없다. 그래서 게리에게도 솔직한 말 하기는 늘 어려운 주제였을 것이다.​


그러나 게리가 자신의 부족함을 받아들이는 자세는 굉장히 남다르다. 게리는 자신이 부족한 면을 정확히 알고, 이를 개선하는 과정을 지속적으로 거쳐감으로써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을 갖는다. 부족한 면에 집착하며 위축된 태도를 보이기보다는 겸손하게 자신의 부족한 점을 인지하고 개선할 점을 향해 나아가려고 한다.​


어쩌면 이런 점도 내가 바라는 당당하고 용기 있는 사람의 범주에 포함시켜도 되지 않을까. 당당함에는 충돌에 기꺼이 맞서고 논쟁에 참여하거나,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 있게 말을 꺼내는 모습만 속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자신이 무엇을 믿을지 선택하고 이를 끝까지 추구할 자세를 갖는 것 또한 당당함에 포함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솔직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이를 개선하겠다고 마음먹는 것 또한 당당한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보편적인 당당한 사람’은 되지 못하더라도, 당당한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의 일종에 발을 들일 수 있다.

피드백 없이 완벽한 콘텐츠를 만들 수 없는 것처럼, 이제는 나 또한 완벽히 보편적인 당당함은 아니더라도 내 수준에서 발휘할 수 있는 당당한 자세를 추구하고 싶다. 시행착오를 여러 번 거치다 보면 그것 또한 내 삶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피드백이 되어줄 것이다. 그러면 내 소신과 주관을 지킬 때에만 고집을 부리지 않고, 내가 만든 결과물에 자신감을 갖고 싶을 때에도 고집을 부릴 수 있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우선 가기 싫은 주말 약속은 솔직하게 거절하고, 더 이상 말하기 싫은 주제에 대해서는 이제 그만 말하자고 이야기하는 것부터 시작해야지. 왜 나는 오랜 친구들과의 주말 약속에서 더 이상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지, 왜 특정 주제로는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지 숨기지도, 괜찮은 척하지도 않고 진솔하게 그 이유를 말해도 괜찮다고 생각해야지.


이것이 내가 보여줄 수 있는 당당한 모습의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첫 발자국이 어떤 모습으로 나를 이끌어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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