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투르게네프의 『무무』, 비루함에 갇히다
이 글은 강신주의 베스트셀러 『감정수업』을 길잡이 삼아, 스피노자의 48가지 감정중 10가지 감정을 소설과 함께 다시 읽어 내려가는 인문학 연재입니다.
1852년, 러시아의 한 작가가 자신이 갇힌 유배지에서 이런 끔찍한 질문을 던진 소설을 썼습니다.
그 소설의 제목은 『무무』입니다.
주인공은 말 한마디 할 수 없는 벙어리 농노입니다. 하지만 이 소설이 진짜로 묻는 것은 19세기 러시아 농노제의 잔혹함만이 아닙니다.
이것이 투르게네프가 던진 진짜 질문입니다.
철학자 스피노자는 한 가지 이상한 감정을 정의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비루함(abjectio)입니다.
“비루함이란 슬픔 때문에 자기에 대해 정당한 것 이하로 느끼는 것이다.”
스피노자, 『에티카』
당신은 이런 적 없으십니까? 반복되는 실패와 좌절 끝에 ‘나는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야’라고 스스로를 깎아내린 경험 말입니다. 상사의, 부모의, 연인의 무시와 억압이 쌓여 어느새 그들의 평가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순간이 있습니다.
스피노자는 이것을 노예 의식의 내재화라고 불렀습니다. 외부의 억압이 반복되어 당신 내면의 삶의 의지(코나투스)를 꺾을 때, 비루함이 탄생합니다.
게라심의 이야기는 이 비루함이 어떻게 한 인간을 집어삼키는지 처절하게 보여줍니다.
게라심은 태어날 때부터 귀가 들리지 않고 말을 하지 못하는 농아입니다. 하지만 그는 초인적인 힘과 거대한 몸집을 가진 유능한 농부였습니다.
그런 그를 모스크바의 한 부유한 여지주가 어느 날 갑자기 도시로 불러들였습니다. 투르게네프는 이때 게라심의 상태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목까지 풀이 자란 밭에서 끌려 나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황급히 옮겨지는 건강한 젊은 황소와 같았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낯선 곳으로 끌려간 게라심. 도시의 저택에서 마당쇠 일을 하게 된 그는 혼란과 체념 속에 살아갑니다.
이것이 비루함의 시작입니다. 주인의 명령 앞에서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없는 상태 말입니다.
그런 게라심에게도 삶의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동료 하인인 세탁부 타티야나입니다. 게라심은 그녀에게 연정을 품고 조용히 그녀를 보호하며 생강빵과 닭고기를 선물했습니다.
사랑은 그를 수동적인 노예에서 능동적인 주체로 변화시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지주는 이 조용한 애정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주인은 본능적으로 알았습니다. 노예가 사랑에 빠지면 그는 더 이상 완전한 노예가 아니라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인간은 주체가 됩니다. 그것은 주인의 권위에 대한 본질적인 위협이었습니다.
여지주는 명령했습니다. 타티야나를 술주정뱅이 구두장이 카피톤과 강제로 결혼시키라고.
이 결혼을 성사시키기 위해 집사는 타티야나에게 잔인한 연극을 강요했습니다. 게라심이 가장 혐오하는 것이 '술주정'임을 이용한 것입니다.
게라심은 타티야나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척 연기하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그 순간, 그가 그녀에게 부여했던 순결하고 성스러운 이미지는 산산조각 났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게라심의 '너무나 빠른 체념'입니다.
보통의 연인이라면 "왜 마셨느냐"라고 묻거나, 그녀를 붙잡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분노하지도, 진실을 확인하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24시간을 침묵 속에 갇혀 있다가 순순히 주인의 처분에 순응했습니다.
이것이 비루함의 작동 방식입니다.
비루함에 젖은 인간은 불행이 닥쳤을 때 저항하는 대신, 그것을 자신의 정해진 운명으로 받아들입니다.
‘‘나 같은 놈에게 사랑은 무슨...’
‘역시 내 주제에 과분한 꿈이었어.
그는 눈앞의 거짓된 상황을 핑계 삼아, 스스로 사랑할 자격을 철회해 버린 것입니다. 비루함은 이렇게 당신 내면 깊숙이 뿌리내려, 싸워보기도 전에 패배하게 만듭니다.
결혼 1년 후, 카피톤의 음주 문제가 심해지자 부부는 작은 마을로 보내졌습니다. 게라심은 그들이 떠나는 날 타티야나에게 무언가를 건넸습니다. 붉은 손수건입니다.
타티야나는 그것을 받고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향한 게라심의 투박한 진심을 뒤늦게 깨달은 회한의 눈물이자, 술주정뱅이 남편과 떠나야 하는 자신의 기구한 운명에 대한 슬픔이었습니다. 하지만 게라심은 울부짖지 않았습니다. 타티야나의 손을 잡고 도망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돌아서서 다시 저택의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침묵이야말로 비루함의 가장 비극적인 증거였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사랑을 장사 지내는 침묵이었으니까요.
“너는 사랑할 자격이 없다. 순응하는 것이 너의 운명이다.”
스피노자가 말한 그대로였습니다. 반복되는 슬픔이 그를 자기 자신에 대해 정당한 것 이하로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타티야나를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 게라심은 강가 진흙 펄에서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작은 강아지 한 마리를 발견합니다
그는 그 강아지를 구출하고 자신이 유일하게 발음할 수 있는 음절로 이름을 붙입니다. “무무”입니다.
난생처음 순수한 기쁨을 느낀 게라심. 하지만 주인은 노예가 자기만의 감정을 갖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존재입니다.
“개를 없애라.” 어느 날, 이 잔혹한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존재를 죽이라는 명령. 이 거구의 사내는 과연 주인의 말을 거역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또다시 스스로를 죽이는 선택을 하게 될까요.
(내일 2부에서 계속됩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비루함 속에 살고 있습니까?
누군가의 평가와 시선 때문에 스스로를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으로 깎아내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오늘 하루, 남의 눈치를 보느라 하고 싶은 말을 삼키진 않았나요? 사소한 것이라도 좋습니다. 당신이 포기한 ‘타티야나’를 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