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비루함: 투르게네프의『무무』

부제: 투르게네프의 『무무』와 작가의 고백

by 설탕바른위로

이 글은 강신주의 베스트셀러 『감정수업』을 길잡이 삼아, 스피노자의 48가지 감정중 10가지 감정을 소설과 함께 다시 읽어 내려가는 인문학 연재입니다.



[3부] 다시는 빼앗길 수 있는 것을 사랑하지 않으리



어제까지의 이야기


게라심은 무무를 자신의 손으로 강물에 던졌습니다. 이것은 수동적 굴복이 아니라 최초의 주체적 결단이었습니다. 무무를 강물 속에 던지는 순간, 게라심은 농노로서 가지고 있던 비루함도 함께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여지주의 허락 없이 고향으로 도망쳤습니다.


자유인의 귀향


여지주는 곧 사망했습니다. 게라심은 고향으로 돌아가 다시 밭일을 시작했습니다.


고향에서 끌려왔을 때 그는 “황급히 옮겨지는 젊은 황소”였습니다. 하지만 돌아왔을 때 그는 “야생적이고 억제되지 않은 사자”였습니다.


그리고 투르게네프는 소설을 이렇게 끝냅니다.


“평생 동안 여자와 교류하거나 개를 기르지 않았다.”


이 결말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이것을 단순히 상처나 트라우마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사랑하다 상처받아서 다시는 사랑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읽으면 게라심은 여전히 비루함 속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삶에 완전한 주인이 될 때까지는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으리라”는 성숙하고 결연한 자기 주권 선언입니다.


게라심은 깨달았습니다.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가 외부의 억압에 휘둘리지 않는 자유로운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빼앗길 수 있는 것에 다시는 자신의 전부를 걸지 않겠다는 엄숙한 다짐인 것입니다.


투르게네프의 고백: 이것은 허구가 아니었다


1. 폭군적 어머니: 실제 모델

이 소설은 단순한 허구가 아니었습니다. 잔인하고 변덕스러운 여지주는 투르게네프 자신의 어머니 '바르바라 페트로브나'를 모델로 했습니다. 그녀는 5,000명의 농노를 소유한 대지주였으며, 지배적이고 권위적인 폭군이었습니다.


소설 속 여지주가 게라심의 사랑을 용납하지 않듯이, 바르바라는 아들 투르게네프가 자신의 뜻을 거스르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투르게네프에게 게라심이 겪은 것과 같은 비루함을 끊임없이 심어주려 했습니다.


2. 유배지에서 쓴 소설: 억압당하는 작가

『무무』는 투르게네프가 정치적 탄압을 경험하던 시기에 집필되었습니다. 1852년, 그는 동료 작가 고골의 부고 기사를 검열관 승인 없이 썼다는 이유로 체포되었습니다.


약 한 달간 구금된 후 2년 가까이 자신의 사유지로 유배되었습니다. 이 기간 중에 『무무』를 완성했습니다.


게라심이 여지주의 억압 아래 있었듯이, 투르게네프는 차르의 억압 아래 있었습니다. 게라심이 말을 할 수 없었듯이, 투르게네프는 자유롭게 쓸 수 없었습니다. 게라심이 비루함과 싸웠듯이, 투르게네프도 자신의 비루함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작가와 작품의 공명


이 소설은 투르게네프가 자신의 삶을 게라심이라는 인물에 투영하여 “어떻게 비루함을 극복할 것인가?”라는 실존적 질문에 답한 작품입니다.


게라심이 무무를 물에 던지며 비루함과 결별했듯이, 투르게네프는 『무무』를 쓰며 자신의 비루함과 결별했습니다.


게라심은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비루함을 극복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고. 하지만 그 고통을 통과할 때, 우리는 비로소 스스로 길을 선택하는 자유로운 존재가 됩니다.


한 작가의 유산


이 소설은 러시아 사회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역사는 기록합니다.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가 1861년 농노제 폐지를 결심하는 데 『무무』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말입니다.


한 벙어리 농노의 소리 없는 저항이, 결국 거대한 제국의 빗장을 열었습니다. 비루함을 벗어던진 한 개인의 변화가 세상을 바꾼 것입니다.


투르게네프는 훗날 이렇게 역설했습니다.


“사랑은 죽음보다도, 죽음의 공포보다도 강하다. 우리는 오직 사랑에 의해서만 인생을 버텨 나가며 전진을 계속하는 것이다.”


게라심이 평생 홀로 지낸 것은 사랑을 포기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랑이 죽음보다 강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비루한 노예의 사랑이 아닌 '주인의 사랑'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침묵하며 전진한 것입니다.


게라심은 사랑 때문에 고통받았지만, 결국 사랑을 통해 자유로워졌습니다.


� 자기 삶으로 돌아보는 질문

우리는 게라심과 투르게네프를 통해 비루함이 어떻게 형성되고 어떻게 극복되는지 보았습니다. 이제 당신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Q. 당신은 누구의 명령에 따라 살고 있습니까? 여지주처럼 당신의 감정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이 당신 삶에 있습니까?


Q. 당신이 포기한 ‘타티야나’는 무엇입니까? ‘나 같은 사람이 감히…’라고 스스로를 깎아내리며 포기한 꿈은 무엇입니까?


Q. 당신이 익사시킨 ‘무무’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수동적 굴복이었습니까, 아니면 주체적 결단이었습니까?


Q. 당신의 비루함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당신은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입니까?


“강신주의 감정수업 다시읽기” 시리즈는 계속됩니다. 다음 편에서는 또 다른 감정, 또 다른 작가, 또 다른 인간의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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