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밀란 쿤데라의 『정체성』, 사랑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허기
이 글은 강신주의 베스트셀러 『감정수업』을 길잡이 삼아, 스피노자의 48가지 감정중 10가지 감정을 소설과 함께 다시 읽어 내려가는 인문학 연재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데도, 세상에서 나만 지우개로 지워진 것 같은 기분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
단둘이 있을 때는 완벽한 사랑의 주인공이지만, 문밖을 나서는 순간 누구의 눈길도 받지 못하는 투명인간이 된 것 같은 공포. 밀란 쿤데라는 이 현대적인 공포를 소설 『정체성(L'Identité)』에 담았습니다.
주인공 연인 샹탈과 장마르크의 이야기입니다. 이 소설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자긍심은 홀로 설 수 있습니까? 아니면 타인의 시선이라는 거울이 있어야만 비로소 서 있습니까?"
철학자 스피노자는 인간을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능동적 감정 중 하나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자긍심 (Acquiescentia in se ipso) “인간이 자기 자신과 자기의 활동 능력을 고찰하는 데서 생기는 기쁨.”
스피노자, 『에티카』
당신은 이런 적 없으십니까? 아무리 스스로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되뇌어도, 타인의 칭찬이나 인정이 부재하면 내면의 기쁨이 연기처럼 흩어지는 경험 말입니다.
스피노자의 정의에 따르면 자긍심은 지극히 '내적인 기쁨'이어야 합니다. 스스로를 바라보며 느껴야 하니까요. 하지만 쿤데라는 묻습니다.
"그 스스로를 바라보는 거울을 누가 쥐고 있는가?"
우리는 종종 타인의 감탄 어린 시선이라는 거울을 통해서만 자기 자신을 고찰합니다. 쿤데라는 우리의 정체성이 이토록 불안정한 토대 위에 서 있다는 역설을 파고듭니다.
소설의 비극은 샹탈의 쓸쓸한 한마디에서 시작됩니다. 해변을 거닐던 샹탈은 연인 장마르크에게 이렇게 토로합니다.
"남자들이 더 이상 나를 돌아보지 않더라."
이 말을 질투나 바람기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단순히 "예뻐 보이고 싶다"는 욕망이 아닙니다.
그녀에게 낯선 남자들의 시선은 성적인 유혹이 아니라, 자신이 아직 '여자'로서, 그리고 매력적인 '사회 구성원'으로서 살아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생존 신호였습니다.
그 시선이 사라졌다는 것. 그것은 샹탈에게 육체적 노화보다 더 끔찍한 **'존재의 소멸'**을 의미했습니다. 자긍심의 원천이 말라버린 것입니다.
장마르크는 샹탈을 사랑합니다. 그는 오직 샹탈만 바라봅니다. 하지만 샹탈의 결핍은 바로 그 지점에서 발생합니다.
장마르크는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지극하고 헌신적인 '사랑의 시선'은 역설적으로 샹탈을 세상으로부터 격리시키는 '외톨이로 만드는 시선'일 뿐이라는 것을.
샹탈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을 보호하려는 연인의 눈빛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낯선 타자로, 욕망의 대상으로 바라봐 줄 "익명의, 약간은 음탕하고 천박한 시선"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야만 그녀는 '우리'라는 폐쇄된 세계를 벗어나 '세상' 속에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장마르크는 괴로워했습니다. 샹탈이 느끼는 자긍심의 붕괴가, 어쩌면 자신의 사랑이 만든 감옥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죄책감.
그는 샹탈의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시키기 위해 위험하고 비밀스러운 계획을 세웁니다. 자신이 아닌 '익명의 숭배자'가 되기로 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필체를 숨기고, 샹탈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편지를 써서 보냅니다. 마치 그녀를 몰래 흠모하는 스토커가 존재하는 것처럼.
"나는 당신을 스토킹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이것이 비극의 시작입니다. 사랑하는 여자의 자긍심(기쁨)을 위해, 거짓된 타인의 시선을 빌려와야만 했던 아이러니.
샹탈은 이 편지를 받고 잃어버린 자긍심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이 달콤한 거짓말이 두 사람의 정체성을 송두리째 뒤흔들게 될까요?
(내일 2부에서 계속됩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시선에 굶주려 있습니까?
나를 있는 그대로 아껴주는 연인의 편안한 시선입니까, 아니면 나를 긴장하게 하고 설레게 만드는 타인의 자극적인 시선입니까?
타인의 시선이 끊길 때, 당신의 자긍심은 무너지지 않고 홀로 설 수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