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쿤데라의 저항, 그리고 사랑이라는 '요술 거울'
이 글은 강신주의 베스트셀러 『감정수업』을 길잡이 삼아, 스피노자의 48가지 감정중 10가지 감정을 소설과 함께 다시 읽어 내려가는 인문학 연재입니다.
장마르크는 연인의 자긍심을 위해 익명의 숭배자 행세를 했지만, 그 거짓말은 오히려 샹탈에게 모멸감을 주었습니다. 샹탈은 자신을 기만한 그를 떠나 런던으로 향했습니다.
이별이라는 차가운 시련을 겪은 뒤에야 재회한 두 사람. 그들은 비로소 사랑의 본질에 대한 궁극적인 깨달음을 얻습니다.
런던에서 화해한 두 사람은 깨닫습니다. 사랑의 본질은 단순히 좋은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끊임없이 주목하고 숭배하는 노동이라는 것을.
샹탈이 장마르크에게 한 마지막 약속은 이 깨달음의 정수였습니다. 그녀는 호텔 방에서 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 그냥 당신을 보기만 할 거야. 밤새도록 스탠드를 켜 놓을 거야. 매일 밤마다."
1부에서 그녀가 느꼈던 공포를 기억하시나요? "남들이 보지 않으면 나는 사라진다"는 두려움. 이제 그녀는 압니다. 세상이 나를 보지 않아도, 단 한 사람. 당신이 눈을 뜨고 나를 지켜봐 준다면 나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것은 단순한 수면 습관의 변화가 아닙니다. "내가 당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영원한 목격자가 되어주겠다"는 숭고한 서약입니다.
우리는 왜 사랑을 할까요? 스피노자의 말처럼, 혼자서는 '자긍심(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는 기쁨)'을 온전히 지키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일반 거울이 아닙니다. 일반 거울은 우리의 늘어가는 주름살과 초라한 현실만을 있는 그대로 비춥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눈동자는 ‘요술 거울’입니다.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나의 장점, 나의 아름다움, 나의 가치에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어 주는 왜곡된(그러나 선한) 거울입니다.
우리는 그 요술 거울을 통해 비로소 스스로를 사랑하게 됩니다. 사랑은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호의적인 거울이 되어주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소설을 쓴 밀란 쿤데라는 평생 '타인의 시선'과 싸워온 작가였습니다.
1. 감시당하는 공포: 강제된 정체성
체코의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 쿤데라는 늘 도청과 감시 속에 살았습니다. 그에게 타인의 시선은 사랑이 아니라 '폭력'이었습니다. 공권력은 쿤데라라는 개인을 '반체제 인사'로 낙인찍고 규정했습니다. 그는 타인의 시선이 개인의 실체를 얼마나 잔인하게 짓밟을 수 있는지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2. "살지 않은 작가"를 꿈꾸다
망명 후 세계적인 작가가 되어서도 그는 대중의 시선을 혐오했습니다. 그는 언론과 인터뷰를 거부했고, 자신의 사적인 편지와 흔적들을 철저히 파괴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살지 않았던 사람(unlived man)"으로 기억되길 원했습니다. 자신의 삶이 타인(전기 작가, 언론)의 입맛대로 난도질당하고 규정되는 것을 거부한 것입니다. 오직 자신의 작품으로만 말하겠다는 침묵의 저항이었습니다.
쿤데라의 삶과 소설 『정체성』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쿤데라는 세상의 폭력적인 시선(감시, 가십)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알았습니다. 인간은 혼자서 고립된 채로는 자긍심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그는 소설을 통해 대안을 제시합니다. "세상의 차가운 시선은 꺼버리고, 오직 사랑하는 사람의 따뜻한 스탠드 불빛 아래 머물러라."
자긍심은 타인이라는 거울이 필요하지만, 그 거울은 나를 감시하는 자가 아니라 나를 숭배하는 자여야 한다는 것.
『정체성』은 폭력적인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사랑하는 사람과의 상호적인 주목을 통해 자긍심을 지켜내고자 했던 한 작가의 필사적인 구원의 서약입니다.
Q. 당신의 정체성은 누구의 인식에 의해 가장 크게 규정되고 있습니까? 직장 상사의 평가입니까, SNS의 좋아요 숫자입니까, 아니면 연인의 눈동자입니까?
Q. 당신은 혹시 자긍심을 회복하기 위해,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익명의 시선"을 구걸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Q. 사랑하는 사람에게 당신은 밤새도록 스탠드를 켜 놓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불을 끄고 무관심 속에 상대를 방치하는 사람입니까?
"누군가 나를 사랑한다는 단순한 사실 하나만으로 우리는 금방 자긍심을 회복할 수 있다."
쿤데라의 이 명제를, 오늘 당신의 사랑으로 증명해 보십시오.
“강신주의 감정수업 다시읽기” 시리즈는 계속됩니다.
다음 편에서는 또 다른 감정, 또 다른 작가, 또 다른 인간의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