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비루함: 투르게네프의『무무』

부제: 무무의 죽음, 그리고 최초의 주체적 결단

by 설탕바른위로

이 글은 강신주의 베스트셀러 『감정수업』을 길잡이 삼아, 스피노자의 48가지 감정중 10가지 감정을 소설과 함께 다시 읽어 내려가는 인문학 연재입니다.



[2부] 사랑하는 것을 죽이고서야 나는 주인이 되었다



어제까지의 이야기


게라심은 첫사랑 타티야나를 여지주의 명령으로 빼앗겼습니다. 붉은 손수건을 건네며 말없이 이별한 게라심. 외부의 억압이 반복되자 그는 ‘나 같은 사람이 사랑을 바라는 게 잘못이야’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비루함 속으로 더 깊이 침잠해 갔습니다.


난생처음 느낀 기쁨: 감정의 주인


타티야나를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 게라심은 강가에서 작은 강아지를 구출했고 “무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무무는 영리하고 충성스러웠습니다. 게라심은 무무를 돌보며 난생처음 순수한 기쁨을 느꼈습니다.


게라심은 ‘감정의 주인’이 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오롯이 느끼고 사랑하는 존재를 돌보는 일.


스피노자는 이런 상태를 능동적 기쁨이라고 불렀습니다.


비루함의 반대편에 있는 감정입니다. 게라심은 무무를 통해 비루함의 수렁에서 잠시 숨을 쉴 수 있었습니다.


주인의 명령: “개를 없애라”


약 1년 후, 여지주는 마당에서 무무를 보았습니다. 무무는 낯선 여지주의 손길을 거부하고 이빨을 드러내며 짖었습니다.


다음 날,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개를 없애라.”


하인들은 무무를 몰래 팔았지만, 무무는 놀랍게도 줄을 끊고 게라심에게 다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무무의 낑낑거리는 소리가 결국 여지주에게 발각되었습니다.


노예의 깨달음: 주인은 감정 자체를 부정한다


게라심은 깨달았습니다. 주인은 노예가 자기만의 감정을 갖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존재라는 것을.


무무를 없애라는 것은 개가 사나워서가 아니었습니다. 여지주는 게라심이 무언가를 사랑하는 것, 그 자체를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노예의 애착 형성은 주인의 권위에 대한 위협입니다. 사랑하는 존재가 있으면 노예는 주인의 명령보다 사랑하는 존재를 우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존재는 언제든 주인이 노예를 조종할 수 있는 인질이 됩니다.


비극적 결단: “내 손으로”


하인들이 무무를 잡으러 올 것을 알게 된 게라심. 그는 무무를 자신이 직접 처리하겠다고 몸짓으로 약속합니다. 여지주는 무무를 죽이라고 명시적으로 명령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게라심은 미워하는 주인의 손에 처분되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고통스럽더라도 자신의 의지로 사랑하는 존재의 마지막을 통제하고자 했습니다. 이것은 최초의 주체적 결단이었습니다.


타티야나 때와 달랐습니다. 그때 게라심은 수동적으로 굴복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자신이 선택했습니다.


강 한복판


게라심은 무무에게 고기가 가득 든 양배춧국과 빵을 마지막 만찬으로 대접했습니다. 무무가 꼬리를 흔들며 식사를 즐기는 동안, 게라심의 눈에선 소리 없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게라심은 무무를 데리고 처음 그녀를 발견했던 강으로 갔습니다. 노 젓는 배를 타고 강 한복판까지 나아갔습니다.


벽돌을 밧줄로 묶어 무무의 목에 걸었습니다. 무무는 주인을 신뢰했기에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그 신뢰를 배반해야만 지킬 수 있는 존엄.


게라심은 눈을 감고 그녀를 물속에 던졌습니다.


비루함과의 결별


“무무를 강물 속에 던지는 순간, 게라심은 농노로서 가지고 있던 비루함도 함께 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행위는 과거 타티야나를 포기했던 것과 본질적으로 달랐습니다. 만약 도망쳤다면 그는 평생 쫓기는 공포 속에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스스로 끊어냄으로써, 주인이 자신을 협박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없애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존재를 죽이는 극한의 고통을 통과하며, 그는 비루함을 극복했습니다. 그는 노예에서 주인으로 거듭났습니다. 자기 자신의 주인으로.


침묵의 저항


무무를 수장시킨 게라심은 그날 밤 저택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짐을 챙겼습니다. 그리고 여지주의 허락 없이 자신의 고향 마을로 걸어서 떠났습니다.


이것은 농노로서 가장 중대한 불복종 행위였습니다.


농노제라는 시스템에 대한 궁극적인 거부. 자유를 향한 첫 주체적 행동이었습니다.


투르게네프는 그의 마지막 행적을 “야생적이고 억제되지 않은 사자”에 비유합니다. 그는 더 이상 끌려다니는 황소가 아니었습니다.


여지주는 처음에는 분노했지만, 왠지 모를 두려움에 게라심을 찾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게라심은 고향으로 돌아가 추수 작업을 도우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소설은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평생 동안 여자와 교류하거나 개를 기르지 않았다.”


왜 투르게네프는 이런 비극적인 결말을 썼을까요? 사실 이 소설은 허구가 아니었습니다.


(내일 마지막 3부에서 계속됩니다)


� 오늘의 질문

당신이 사랑하는 것을 지킬 수 있습니까? 아니면 누군가가 언제든 그것을 빼앗을 수 있습니까?


게라심은 “내 손으로”를 선택했습니다. 그것은 잔인한 포기가 아니라, 비루한 삶을 끝내기 위한 처절한 선언이었습니다.


당신은 지금 수동적 슬픔 속에 있습니까, 아니면 능동적 결단을 향해 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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