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욕정 : 톨스토이 『악마』

톨스토이의 두 가지 결말과 아스타포보의 마지막 밤

by 설탕바른위로

이 글은 강신주의 베스트셀러 『감정수업』을 길잡이 삼아, 스피노자의 48가지 감정중 10가지 감정을 소설과 함께 다시 읽어 내려가는 인문학 연재입니다.


[3부] 톨스토이의 고백, 그리고 멈춰버린 시계


어제까지의 이야기


욕망과 도덕 사이에서 분열된 예브게니. 그는 자신의 욕정을 '악마'라 부르며 스테파니다를 저주했습니다. 아내와 스테파니다, 두 여자 사이에서 질식할 것 같은 고통을 느끼던 그는 결국 두 여자를 살리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내면 전쟁을 끝내기 위해 권총 자살이라는 제3의 출구를 선택합니다.


서재에서 울린 한 발의 총성. 그것이 그의 대답이었습니다.


두 개의 결말, 하나의 비극


사실 톨스토이는 이 소설의 결말을 두 가지 버전으로 썼습니다.


첫 번째 결말 (자살): 예브게니가 자신의 관자놀이에 총을 쏘아 생을 마감합니다. 사람들은 그가 정신병을 앓았다고 수군거리지만, 가족들은 그가 누구보다 건전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기에 비극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두 번째 결말 (살인): 예브게니가 총을 들고 스테파니다에게 찾아갑니다. 그는 헛간에서 일하던 그녀에게 총을 세 발이나 쏘아 죽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외칩니다. "내가 저 여자를 죽였어! 저 여자는 악마야!"


어느 쪽이든 결말은 파국입니다.

톨스토이는 뼈아픈 진실을 보여줍니다. 욕망을 긍정하고 통합하지 못한 채 억압하기만 한다면, 그 끝은 자기 파괴(자살)이거나 타인 파괴(살인)일 수밖에 없음을 말입니다.


작가의 고백: 의자 속에 숨겨야 했던 진실


이 끔찍하고 처절한 이야기는 단순한 허구가 아니었습니다. 소설 『악마』는 대문호 톨스토이의 '숨겨진 참회록'이었습니다.


1. 숲 속의 농노 여인

젊은 시절의 톨스토이는 예브게니처럼 욕망이 넘치는 남자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영지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농노의 아내 '악시냐 바지키나'와 깊은 관계를 맺었습니다.


톨스토이는 일기에

"나는 그녀에게 반했다. 나는 나 자신을 혐오한다. 하지만 내일 또 그녀를 찾아갈 것이다"

라고 썼습니다. 그들 사이에는 사생아 '티모페이'까지 태어났습니다.


2. 잔인한 솔직함

톨스토이는 34세에 18세의 어린 소피아 베르스와 결혼을 결심합니다. 그는 "부부 사이에 비밀이 없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자신의 방탕했던 과거가 적힌 일기장을 어린 신부에게 보여줍니다. 그 속에는 악시냐와의 관계, 사생아에 대한 이야기까지 적나라하게 담겨 있었습니다. 소피아에게 그것은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었습니다.


3. 의자 속에 숨긴 원고

톨스토이는 예브게니처럼 괴로웠습니다. 그는 자신의 분열된 자아와 죄책감을 소설 『악마』에 쏟아부었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을 발표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내 소피아가 받을 충격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결국 톨스토이는 원고 뭉치를 서재의 안락의자 덮개 속에 꿰매어 숨겨두었습니다. 이 원고는 그가 죽고 난 뒤에야 딸에 의해 발견되어 세상의 빛을 보게 됩니다.


작가는 왜 이토록 가혹해야 했을까?


톨스토이는 평생 '성자'와 '짐승' 사이에서 줄타기를 했습니다. 그는 금욕과 청빈을 주장하는 '톨스토이즘'의 창시자였지만, 동시에 80세가 넘어서도 끓어오르는 육체의 욕망을 감당해야 했던 한 인간이었습니다.


그가 소설 속 예브게니를 죽음으로 내몬 것은, 어쩌면 자기 안에 있는 '짐승'을 단죄하고 싶었던 간절한 열망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스피노자는 톨스토이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욕망을 악마라 부르지 마십시오. 그것은 당신이 살아가게 하는 힘입니다."


섹스는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사랑이 시작되는 계기일 뿐입니다. 욕망을 억압하고 부정할수록, 그것은 음란한 괴물이 되어 우리를 찾아옵니다.


만약 톨스토이가 자신의 욕망을 '악마'가 아닌 '삶의 에너지'로 받아들였다면, 예브게니의 결말도, 톨스토이 부부의 불행했던 말년도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마치며: 아스타포보의 멈춘 시계


1910년, 82세의 톨스토이는 아내와의 불화와 내면의 갈등을 견디다 못해 가출을 감행합니다. 그리고 열흘 뒤, 아스타포보 간이역의 역장 관사에서 쓸쓸히 숨을 거둡니다.


그가 마지막 숨을 거둔 방의 시계는 지금도 그가 사망한 시간인 오전 6시 5분에 멈춰 있습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집을 떠나 방황했고, 평생 자신을 괴롭힌 도덕과 욕망의 딜레마 속에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의 묘비에는 이름도 비석도 없이 그저 흙무덤만 남겨달라는 유언이 지켜졌습니다.


『악마』는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내 안의 욕망과 화해했습니까? 아니면 여전히 그것을 억누르며, 언젠가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욕망은 죄가 아닙니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나의 삶으로 통합해내는 용기. 그것이 우리를 파멸이 아닌, 진정한 자유로 이끄는 열쇠일 것입니다


� 자기 삶으로 돌아보는 질문

Q. 지금 당신의 마음속 의자 깊숙한 곳에 숨겨둔 원고는 무엇입니까?


Q. 남들에게는, 아니 스스로에게조차 들키고 싶지 않아 꽁꽁 숨겨두었지만, 사실은 당신을 살아있게 만드는 그 '욕망'은 어떤 모습입니까?


[다음 편 예고] 대담함(Audacia): 조지 오웰의 『1984』 거대한 공포 앞에서도 인간을 비겁하지 않게 만드는 힘. 사랑이 만들어낸 가장 대담한 반란에 대하여.


수,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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