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대담함 : 조지오웰 『1984』

조지 오웰의 『1984』, 사랑은 어떻게 공포를 이기는가

by 설탕바른위로

이 글은 강신주의 베스트셀러 『감정수업』을 길잡이 삼아, 스피노자의 48가지 감정중 10가지 감정을 소설과 함께 다시 읽어 내려가는 인문학 연재입니다.


[1부] 사랑은 어떻게 비겁한 사람을 용사로 만드는가


당신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비굴해져 본 적이 있습니까?


거대한 힘 앞에서 생존을 위해 고개를 숙이고, 하고 싶은 말을 삼키며, 모멸감을 견뎌내야 했던 순간 말입니다. 그때 우리는 스스로를 얼마나 초라하게 느낍니까.


하지만 만약 그 비굴함의 끝에서, 당신이 목숨 걸고 지키고 싶은 단 한 사람이 생긴다면 어떨까요?

평소의 당신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떨리는 다리를 억지로 지탱하며 거대한 공포 앞을 막아서는 당신을 발견하게 될 테니까요.


1949년, 결핵으로 죽어가던 한 작가가 쓴 소설 『1984』는 바로 이 기적 같은 변화, 비루한 인간을 용사로 만드는 비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대담함(Audacia): 두려움보다 더 큰 욕망


철학자 스피노자는 이 놀라운 감정의 도약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대담함 (Audacia)
"동료가 맞서기 두려워하는 위험을 무릅쓰고 어떤 일을 하도록 자극되는 욕망이다."

스피노자, 『에티카』 3부 정의


우리는 흔히 대담함을 타고난 강철 같은 성격이나 불굴의 의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스피노자는 그것을 ‘욕망’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상식을 뒤집는 매우 중요한 통찰입니다.


우리가 위험을 무릅쓰는 이유는 두려움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그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얻고 싶은 더 큰 기쁨, 즉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강렬한 욕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우리 안에 잠든 대담함을 깨우는 것입니다.


잿빛 도시의 무기력한 부속품, 윈스턴 스미스


소설의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대담함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사는 런던은 "빅 브라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BIG BROTHER IS WATCHING YOU)"라는 포스터가 도배된 전체주의 국가 오세아니아의 제1공대(Airstrip One)입니다. 거리마다 설치된 텔레스크린은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심지어 표정 하나만 잘못 지어도 '표정죄'로 체포되어 쥐도 새도 모르게 증발해 버리는 세상입니다.


윈스턴은 진리부(Ministry of Truth) 기록국에서 일하는 외부당원입니다. 그가 하는 일은 과거의 신문 기사를 조작하여 당의 예언이 항상 옳았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어제는 초콜릿 배급을 줄인다고 발표해 놓고, 오늘은 배급량을 늘렸다고 역사를 수정하는 식입니다. 그는 자신의 일이 거짓임을 알면서도, 생존을 위해 기계처럼 그 일을 수행합니다.


그의 삶은 비루함 그 자체였습니다. 거친 비누와 무딘 면도날, 구역질 나는 싸구려 승리주(Victory Gin)로 하루하루를 연명합니다. 그의 유일한 일탈은 텔레스크린의 시야가 닿지 않는 방 한구석에 숨어 일기를 쓰는 것입니다.


"타도하자 빅 브라더"라고 휘갈겨 쓰면서도, 언제 사상경찰이 들이닥칠지 몰라 공포에 떠는 나약한 인간이었습니다.


혐오에서 피어난 기적


윈스턴에게 같은 부서에서 일하는 여자, 줄리아는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허리에 '반성 동맹'의 붉은 띠를 두르고 다니는 그녀는 당의 열성 당원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윈스턴은 그녀가 자신을 감시하는 사상경찰이 아닐까 의심하며 그녀를 증오하고 두려워했습니다.


하지만 운명의 날, 복도에서 넘어진 줄리아를 윈스턴이 부축해 주었을 때, 그녀는 윈스턴의 손에 쪽지 하나를 쥐여줍니다. 화장실에 숨어 떨리는 손으로 펴본 그 쪽지에는 단 세 단어가 적혀 있었습니다.


"당신을 사랑해요 (I love you)."


이 짧은 문장이 윈스턴의 세계를 송두리째 뒤흔듭니다. 고립된 섬처럼 살아가던 그에게 누군가 손을 내민 것입니다. 그 순간 윈스턴을 지배하던 공포는 사라지고, '살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솟구칩니다.


대담함의 시작: 황금빛 숲에서의 밀회


줄리아와의 사랑이 시작되자 윈스턴은 변합니다. 그들은 감시의 눈을 피해 교외의 숲, 윈스턴이 꿈속에서 보았던 '황금빛 숲(Golden Country)'에서 만납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당이 금지한 육체적 사랑을 나눕니다.


이 행위는 단순한 쾌락의 추구가 아닙니다. 윈스턴은 이렇게 독백합니다.


그들의 포옹은 전투였고, 절정은 승리였다. 그것은 당에게 가하는 일격이었다. 그것은 정치적 행위였다.


이것이 바로 대담함의 작동 방식입니다.

사랑은 개인에게 삶의 기쁨을 되찾아줍니다. 그리고 그 기쁨을 지키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은, 이전에는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던 거대한 권력에 맞설 용기를 부여합니다. 줄리아와의 사랑을 통해 윈스턴은 더 이상 비루한 부속품이 아닌, 감정과 욕망을 가진 하나의 주체적인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전체주의가 사랑을 두려워하는 진짜 이유


빅 브라더와 당이 개인의 성욕과 사랑을 그토록 철저히 탄압했던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줄리아의 통찰처럼, "성욕을 박탈하면 히스테리가 생기고, 당은 그 에너지를 전쟁광이나 지도자 숭배로 돌려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통해 행복해진 개인은 당의 선동에 열광하지 않습니다. 내 옆의 연인이 주는 기쁨이 너무나 크기에, 빅 브라더 따위는 안중에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두 사람을 강력하게 연결했고, 그 연대는 전체주의가 가장 두려워하는 ‘통제 불가능한 사적 영역’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들은 낡은 골동품 가게 위층에 비밀 은신처를 마련합니다. 그 좁은 방, 쥐가 나오는 낡은 침대 위에서 그들은 당의 간섭이 없는 유토피아를 경험합니다. 그곳에서 윈스턴은 화장을 한 줄리아를 보며 여성성을 느끼고, 진짜 커피와 설탕을 맛보며 인간다운 삶의 감각을 되찾습니다.


이 사랑이라는 대담함은 그들을 무모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믿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죽일 수는 있어도, 우리 마음속까지 지배할 수는 없어.


그들은 육체는 구속당할지언정, 서로를 향한 사랑과 신념이라는 내면의 성역만큼은 절대 정복당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가진 대담함의 정점이었습니다.


하지만 과연 인간의 대담함은 끝까지 지켜질 수 있을까요? 전체주의의 폭력이 인간의 가장 내밀한 감정조차 부서뜨릴 수 있을까요?


(내일 2부에서 계속됩니다)


� 오늘의 질문

Q. 당신에게도 세상의 시선이나 두려움 따위는 잊게 만들 만큼 지키고 싶은 소중한 존재가 있나요?

그 사람(혹은 가치)을 위해서라면 평소의 나보다 조금 더 용감해질 수 있었던 경험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Q. 혹시 오늘 하루, 타인의 눈치를 보느라 삼켰던 말이나 행동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었나요?

수,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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