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의 유언, 사랑이 없으면 인간도 없다
이 글은 강신주의 베스트셀러 『감정수업』을 길잡이 삼아, 스피노자의 48가지 감정중 10가지 감정을 소설과 함께 다시 읽어 내려가는 인문학 연재입니다.
101호실의 쥐 고문 앞에서 윈스턴은 무너졌습니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연인 줄리아에게 고통을 떠넘기며 절규했습니다. "나 말고 그녀에게 해!" 이 배신의 순간, 그를 지탱하던 사랑과 대담함,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풀려난 윈스턴은 더 이상 예전의 그가 아닙니다. 그는 진리부의 한직을 맡아 무의미한 일을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반역자들이 최후를 맞이하기 전 머무는 곳인 밤나무 카페(Chestnut Tree Cafe)에서 보냅니다. 싸구려 승리주(Victory Gin) 냄새에 찌든 채, 그는 죽은 사람처럼 하루하루를 부유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우연히 줄리아와 마주칩니다. 그녀 역시 고문을 겪고 변해 있었습니다. 그녀의 몸은 뻣뻣해졌고 이마에는 흉터가 남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끔찍한 변화는 외모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았지만, 그 눈빛에는 과거의 애정은커녕 욕망조차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담담하게, 거의 혐오감에 가까운 감정으로 서로에게 고백합니다.
"나는 당신을 배신했어."
"나도 당신을 배신했어."
그때의 배신은 단순히 정보를 누설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고문대 위에서 당신은, 저 사람에게 하라고, 나한테 하지 말라고 소리치지. (...) 그리고 나서는 다신 똑같이 느낄 수 없어." 그들은 서로를 살리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던 '대담함'을 잃었고, 상대를 자신의 고통을 떠넘길 제물로 삼음으로써 사랑이라는 감정의 뿌리를 스스로 잘라버린 것입니다.
그들은 사랑을 잃음으로써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영원히 타인이 되어버렸습니다.
다시 카페로 돌아온 윈스턴은 텔레스크린에서 들려오는 오세아니아 군의 거대한 승전보를 듣습니다. 그 순간, 그의 내면에서 거대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과거라면 비웃거나 의심했을 그 선전 문구에 그는 격렬한 환희를 느낍니다.
그는 상상합니다. 자신이 애정부의 하얀 타일이 깔린 복도를 걷고 있다고. 그리고 무장한 간수의 총알이 마침내 자신의 머리를 꿰뚫고 들어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 '총살당하는 환상'은 공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토록 그를 괴롭히던 자아, 끊임없이 당의 논리에 저항하려 했던 '고집스러운 자신'이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다는 안도감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지난 40년 동안 빅 브라더의 품을 떠나 얼마나 어리석게 방황했는지를 깨닫습니다. 술 냄새 나는 눈물이 그의 코를 타고 흘러내립니다.
그는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 (He loved Big Brother).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단순한 복종이 아닙니다. 줄리아가 떠난 텅 빈 마음, 사랑이 파괴된 그 공허한 자리를 결국 거대한 권력에 대한 의존이 채워버린 것입니다. 그는 강제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의지를 꺾고 굴복하는 '자신과의 투쟁'에서 승리했습니다.
불의에 저항하던 대담한 영혼은 죽고, 권력에 완전히 길들여진 껍데기만 남았습니다. 사랑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노예의 행복뿐이었습니다.
이토록 끔찍하고 절망적인 디스토피아를 그려낸 조지 오웰(본명 에릭 아서 블레어). 그는 왜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결말을 썼을까요?
사실 『1984』는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 오웰 자신의 처절한 투쟁기였습니다.
오웰은 1936년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습니다. 파시즘에 맞서 싸우기 위해 펜 대신 총을 들었죠. 그곳에서 그는 무정부주의자들과 함께 싸우며 평등한 세상의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목격한 것은 같은 편이라고 믿었던 공산주의자들의 배신과 숙청이었습니다. 목에 총상을 입고 간신히 탈출한 그는 "혁명이 어떻게 권력욕에 의해 배신당하고 전체주의로 변질되는지"를 뼈저리게 체험했습니다.
이 소설의 집필 과정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인물이 있습니다. 오웰의 첫 번째 아내, 아일린 오쇼네시(Eileen O'Shaughnessy)입니다. 그녀는 오웰의 문학적 동반자였고, 『동물농장』의 기획을 도왔습니다. 심지어 그녀는 오웰을 만나기 전인 1934년에 이미 「세기말, 1984」라는 시를 써서 미래 사회의 암울함을 예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일린은 1945년, 오웰이 『1984』를 구상하던 시기에 수술 도중 급작스럽게 사망합니다. 오웰은 아내를 잃은 깊은 상실감과 죄책감 속에서, 그리고 자신의 지병인 폐결핵과 싸우며 외딴섬 주라(Jura)에서 이 소설을 집필했습니다.
각혈을 하며 생명을 갉아먹는 고통 속에서, 그는 사랑하는 존재의 부재가 인간을 얼마나 황폐하게 만드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오웰은 죽어가면서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사랑이 없다면, 인간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권력과 공포뿐인 세상에서 우리는 과연 인간일 수 있는가?"
스피노자는 말했습니다. "대담함은 욕망이다."
그리고 오웰은 보여주었습니다. 그 욕망의 불씨인 사랑이 꺼졌을 때, 인간이 얼마나 비참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말입니다.
『1984』의 비극은 윈스턴이 죽어서가 아니라, 그가 사랑을 포기했기 때문에 완성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무기를 스스로 내려놓았습니다.
우리는 윈스턴처럼 고문실 101호에 갇혀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또 다른 형태의 '빅 브라더'로 우리를 위협합니다. 디지털 감시, 데이터 수집, 알고리즘에 의한 통제...
그때 우리를 비겁함에서 건져 올리는 것은 거창한 이념이 아닙니다.
내 곁에 있는 사람, 내가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을 지키십시오. 그것은 연인을 지키는 일을 넘어, 부조리한 세상 앞에서 당신의 존엄과 대담함을 지키는 유일한 길입니다. 사랑하는 한, 당신은 패배하지 않습니다.
Q. 지금 당신을 두렵게 하거나 위축되게 만드는 당신만의 '101호실(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입니까?
Q.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켜내고 싶은 '사랑'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