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대담함 : 조지오웰 『1984』

사랑이라는 최후의 성역, 그리고 인간성의 파괴

by 설탕바른위로

이 글은 강신주의 베스트셀러 『감정수업』을 길잡이 삼아, 스피노자의 48가지 감정중 10가지 감정을 소설과 함께 다시 읽어 내려가는 인문학 연재입니다.


[2부] 대담함이 무너지는 순간: 101호실의 쥐



어제까지의 이야기


무기력하고 비루한 삶을 살던 윈스턴은 줄리아를 만나 사랑에 빠지며 스피노자가 말한 '대담함'을 얻었습니다. 사랑은 그에게 삶의 기쁨을 주었고, 그 기쁨을 지키려는 욕망은 그를 빅 브라더의 통제에 맞서는 위험한 반역자로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마음속은 지배할 수 없다"고 믿으며 둘만의 은신처에서 행복을 누렸습니다.


순진했던 대담함, 그리고 함정


하지만 그들의 대담함은 너무나 순진했습니다. 그들이 안전하다고 믿었던 골동품 가게의 주인 채링턴은 사실 사상경찰(Thought Police)이었습니다.


더욱 치명적인 것은 윈스턴이 내부당원 오브라이언(O'Brien)을 믿었다는 점입니다. 윈스턴은 오브라이언의 눈빛에서 자신과 같은 반역의 기운을 읽었다고 착각했습니다. 그는 줄리아와 함께 오브라이언의 호화로운 저택을 찾아가, 전설적인 반체제 조직 '형제단(The Brotherhood)'에 가입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이것은 비극적인 실수였습니다. 오브라이언은 형제단의 일원이 아니라, 윈스턴과 같은 사상범을 색출하여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7년 전부터 그를 지켜봐 온 당의 충실한 간부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들의 은신처에 사상경찰이 들이닥칩니다. 벽에 걸려 있던 그림 뒤에서 텔레스크린이 드러나고, 윈스턴이 소중하게 여겼던 산호가 든 유리 문진은 산산조각이 납니다. 그것은 그들이 꿈꿨던 사적인 세계의 파괴를 상징했습니다.


애정부(Ministry of Love): 영혼을 개조하는 공장


두 사람은 악명 높은 애정부로 끌려갑니다. 이곳은 이름과 달리 사랑을 나누는 곳이 아니라, 고문과 세뇌를 통해 인간의 영혼을 당의 입맛에 맞게 개조하는 곳입니다.


창문도 없는 하얀 방, 끊임없이 켜져 있는 불빛 아래서 윈스턴은 굶주림과 구타, 전기 고문을 당합니다. 그의 고문관은 다름 아닌 오브라이언이었습니다.


"윈스턴, 내가 손가락을 네 개 펴고 있다. 당이 이것을 다섯 개라고 한다면, 몇 개지?"


윈스턴은 고통 속에서도 "네 개"라고 대답하려 애씁니다. 하지만 계속되는 고문에 그의 이성은 마비됩니다. 나중에는 정말로 손가락이 다섯 개로 보이는 환각 상태에 이릅니다.


이것이 바로 당이 요구하는 '이중사고(Doublethink)'입니다. 명백한 현실과 당의 거짓말을 동시에 받아들이고, 거짓말을 진실로 믿어버리는 정신 상태 말입니다.


내면의 성역과 최후의 보루


그럼에도 불구하고 윈스턴이 끝까지 놓지 않았던 마지막 보루가 있었습니다. 바로 줄리아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는 육체가 망가져 뼈와 가죽만 남았어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여전히 그녀를 사랑했습니다.


"나는 자백을 말하려는 게 아니야. (...) 중요한 건 감정이야. 예컨대 그들 때문에 내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게 된다면, 그게 진짜 배신이란 얘기지."


윈스턴에게 '배신'은 고문을 못 이겨 그녀의 행적을 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음속에서 사랑하는 감정이 사라지는 것, 그것이 진정한 패배였습니다. 그가 그녀를 사랑하는 한, 그의 내면 깊은 곳에는 빅 브라더가 정복하지 못한 자유의 공간이 남아있는 셈이었습니다.


101호실: 대담함의 소멸


하지만 전체주의의 치밀함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오브라이언은 윈스턴이 아직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간파합니다. 그는 윈스턴을 애정부의 가장 깊은 곳, 101호실로 데려갑니다.


101호실에는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누군가에게는 불이고, 누군가에게는 익사입니다. 윈스턴에게 그것은 '쥐'였습니다.


오브라이언은 굶주린 쥐가 든 철창 우리를 윈스턴의 얼굴 앞에 고정시킵니다. 문이 열리면 쥐들은 윈스턴의 눈과 입을 파먹을 것입니다. 이 극한의 공포, 뼈속까지 얼어붙게 만드는 동물적인 공포 앞에서, 윈스턴의 이성과 사랑, 신념은 순식간에 증발해 버립니다.


그는 비명을 지릅니다.


"내가 아니야! 줄리아한테 해! 나한테 하지 마! 줄리아한테 하라고! 그 여자에게 무슨 짓을 하든 상관없어. 얼굴을 찢어발기든, 뼈까지 발라먹든 상관없단 말이야. 나 말고! 저 여자한테 해!"


이 순간, 윈스턴의 대담함은 완전히 소멸했습니다.


스피노자가 말한 대담함은 '사랑하는 이를 지키려는 욕망'이었습니다. 하지만 윈스턴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고통의 방패막이로 던져버렸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생존 본능의 발현이 아닙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통해 얻었던 인간으로서의 존엄, "나는 너를 배신하지 않았다"는 자긍심을 스스로 파괴한 행위였습니다.


대담함의 근원인 사랑을 스스로 부정하는 순간, 인간은 다시 가장 비루한 존재, 주인의 처분만을 기다리는 노예로 추락하고 맙니다.


그가 잃어버린 것은 줄리아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잃어버렸습니다.


(내일 3부에서 계속됩니다)


� 오늘의 질문

Q. 당신은 너무나 큰 두려움이나 압박 때문에 소중한 가치나 사람을 외면하고 싶은 유혹을 느껴본 적이 있습니까?

Q. 혹은, 끝까지 지키고 싶었지만 상황에 밀려 포기해야 했던 '나만의 원칙'이 있다면 무엇이었나요?

수,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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