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강신주의 베스트셀러 『감정수업』을 길잡이 삼아, 스피노자의 48가지 감정중 10가지 감정을 소설과 함께 다시 읽어 내려가는 인문학 연재입니다.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을 감옥에서 보낸 장 발장은 세상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리엘 주교는 그에게 은촛대를 내어주며 '악을 선으로' 갚았습니다. 그 충격적인 박애 앞에서 장 발장은 통곡하며 회심했고, 전과자 신분을 감춘 채 '마들렌'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1823년, 장 발장은 몽트뢰유 쉬르 메르의 시장이 되었습니다. 그는 흑구슬 제조법을 개량하여 막대한 부를 쌓았지만, 그 돈을 자신을 위해 쓰지 않았습니다. 그는 미리엘 주교에게 받은 은혜를 사회에 환원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병원과 학교를 세웠습니다. 그는 이제 '박애의 수혜자'에서 '박애의 주체'로 거듭난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과거가 들통날까 봐 두려워하며, 타인과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하고 시스템 뒤에 숨어 선행을 베풀었습니다. 이 '거리두기'가 비극을 잉태합니다.
그가 운영하는 공장에 '팡틴'이라는 여직공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젊은 시절 사랑했던 남자에게 버림받고 딸 '코제트'를 홀로 키우는 미혼모였습니다. 팡틴은 딸을 맡긴 테나르디에 부부에게 양육비를 보내기 위해 뼈빠지게 일했습니다. 하지만 공장의 작업반장은 그녀가 미혼모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시장(장 발장)에게 보고도 하지 않고 그녀를 매몰차게 해고해 버립니다.
가난의 나락으로 떨어진 팡틴은 머리카락을 팔고, 앞니를 뽑아 팔고, 결국에는 몸까지 파는 비참한 지경에 이릅니다. 훗날 장 발장은 거리에서 팡틴을 구해주려 하지만, 팡틴은 장 발장을 보자마자 그의 얼굴에 침을 뱉습니다. "당신이 나를 쫓아내서 내가 이 꼴이 되었다"며 울부짖는 그녀 앞에서 장 발장은 큰 충격을 받습니다.
그는 깨달았습니다. 높은 곳에서 베푸는 시혜적인 선행은 진정한 박애가 아니었습니다. 한 사람의 고통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지 않는 사랑은, 의도치 않게 또 다른 비극을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 것입니다.
팡틴은 병들어 죽어가고 있었고, 장 발장은 그녀에게 딸 코제트를 데려오겠다고 약속합니다. 하지만 그때, 운명은 그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습니다.
자신을 끊임없이 의심하던 자베르 형사가 찾아와 "자신이 착각했다"며 사과를 합니다. 훔친 사과를 가지고 있던 '샹마티외'라는 노인이 장 발장으로 지목되어 체포되었고, 곧 재판을 받아 종신형에 처해질 것이라는 소식이었습니다.
장 발장은 밤새도록 고뇌합니다. 위고는 이 내적 갈등을 '뇌골 속의 폭풍(Tempête sous un crâne)'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자신의 어두운 과거는 영원히 묻히고, 존경받는 시장으로 남은 생을 편안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가 운영하는 공장의 수많은 노동자들을 위해서라도 그는 시장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는 합리화도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그 대가로 무고한 노인 한 명이 그를 대신해 지옥 같은 감옥살이를 해야 합니다.
"나를 구할 것인가, 타인을 구할 것인가?"
이것은 미리엘 주교가 준 은촛대의 진정한 시험대였습니다. 박애는 단순히 남을 돕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여기고, 나를 희생하여 그를 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장 발장은 법정으로 달려갑니다. 그는 재판장과 배심원들 앞에서 자신의 소매를 걷어붙이고 외칩니다.
"내가 바로 장 발장이오! (Who am I?)"
그는 다시 도망자 신세가 되었지만, 자신의 양심을 지켰습니다. 그는 감옥을 탈출하여 약속대로 팡틴의 딸 코제트를 구하러 갑니다.
몽페르메유의 숲속, 물을 길으러 나온 어린 코제트는 무거운 물동이를 들고 추위와 공포에 떨고 있었습니다. 테나르디에 부부는 코제트를 하녀처럼 부려 먹으며 학대하고 있었습니다. 숲속에서 코제트를 만난 장 발장은 말없이 그녀의 물동이를 들어줍니다.
장 발장은 코제트에게서 무엇을 보았을까요? 그는 그 작고 여린 아이에게서,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학대당하던 19년 전 자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스피노자가 말했듯, "자신과 유사한 어떤 것이 고통받는 것을 볼 때" 우리는 비로소 타인을 사랑하게 됩니다.
"코제트는 내가 필요했소. 그런 까닭에 나는 그 아이를 사랑하기 시작한 것이오."
장 발장은 거금을 주고 코제트를 테나르디에의 손아귀에서 구해냅니다. 그리고 파리의 한 수녀원으로 숨어들어 갑니다. 그곳에서 장 발장은 코제트의 아버지가 되어주었고, 코제트는 장 발장에게 생전 처음으로 '사랑하는 법'을 알려준 존재가 되었습니다. 장 발장에게 코제트는 단순한 양녀가 아니라, 그의 얼어붙은 영혼을 녹이고 삶의 이유를 만들어준 구원자였습니다.
반면, 장 발장의 뒤를 그림자처럼 쫓는 자베르 형사가 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죄수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자신의 비천한 출신을 극복하기 위해, 누구보다 철저하게 법과 질서를 맹신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에게 세상은 '법을 지키는 선량한 시민'과 '법을 어기는 범죄자'로 명확히 나뉩니다.
자베르에게 장 발장은 그저 '가석방을 어긴 위험한 전과자'일 뿐입니다. 장 발장이 아무리 선행을 베풀고 사람을 구해도, 자베르의 눈에는 '법을 어긴 범죄자'라는 낙인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범죄자는 영원히 범죄자일 뿐, 갱생은 불가능하다."
자베르는 '박애가 결여된 정의'의 상징입니다. 법은 사회를 유지하는 도구이지만, 인간에 대한 사랑과 이해가 없는 법 집행은 폭력이 될 수 있음을 그는 보여줍니다. 그는 끈질기게 장 발장을 추격하며, 장 발장과 코제트가 숨어 있는 파리의 은신처까지 찾아냅니다.
시간이 흘러 코제트는 아름다운 숙녀로 성장했고, 장 발장은 그녀를 데리고 수녀원을 나와 세상 밖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파리의 뤽상부르 공원에서 코제트는 '마리우스'라는 젊은 청년과 눈이 마주치고, 운명적인 사랑에 빠집니다.
하지만 시대는 평화롭지 않았습니다. 1832년, 프랑스는 다시 끓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왕정복고와 7월 혁명을 거쳤지만, 여전히 민중들의 삶은 비참했고 전염병(콜레라)까지 돌았습니다. 마리우스는 왕정 타파를 외치는 공화주의자 청년들, '아베쎄(ABC)의 벗들'과 함께 혁명을 준비합니다.
정부군과 시민군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던 6월, 라마르크 장군의 장례식을 기점으로 파리 도심에 거대한 바리케이드가 세워집니다. 마리우스는 코제트와의 사랑과 혁명에 대한 의무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결국 동료들이 있는 바리케이드로 향합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장 발장은 충격에 빠집니다. 자신이 목숨보다 사랑하는 딸 코제트가 사랑하는 남자가 죽으러 간 것입니다. 질투심과 부성애 사이에서 갈등하던 장 발장은, 결국 딸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무기를 들지 않은 채 그 위험한 바리케이드 속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장 발장은 포로로 잡혀 처형을 기다리고 있는 자신의 평생 원수, 자베르를 발견합니다.
내일 [3부]에서 계속됩니다.
당신은 '자베르'처럼 원칙과 규정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장 발장'처럼 그 사람의 사정과 고통에 먼저 공감하고 있습니까?
내가 옳다고 믿는 신념(정의) 때문에 누군가를 아프게 하거나, 용서할 기회를 놓친 적은 없나요?
장 발장에게 코제트가 그랬듯, 당신의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존재'는 누구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