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박애 : 『레 미제라블』

by 설탕바른위로

이 글은 강신주의 베스트셀러 『감정수업』을 길잡이 삼아, 스피노자의 48가지 감정중 10가지 감정을 소설과 함께 다시 읽어 내려가는 인문학 연재입니다.



[1부] 당신의 촛대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당신은 당신을 배신한 사람에게, 그가 훔쳐 간 것보다 더 귀한 것을 쥐여줄 수 있습니까?


1862년, 19년이라는 긴 망명 생활을 견뎌낸 한 늙은 작가가 세상에 내놓은 소설이 있습니다. 벽돌처럼 두꺼운 이 책의 제목은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 우리말로 '비참한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이 거대한 이야기는 19세기 프랑스의 빈곤이나 혁명의 역사를 넘어 우리에게 근원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법과 제도가 인간을 심판할 때, 사랑은 인간을 어떻게 구원하는가?"


오늘 우리는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을 감옥에서 보내고, 인간이기를 포기했던 한 남자, 장 발장의 여정을 통해 이 질문에 답해보고자 합니다.


박애(Benevolentia): 타인의 고통에서 나를 발견하다


우리는 흔히 '박애'를 그저 불쌍한 사람을 돕는 착한 마음, 혹은 여유 있는 자가 베푸는 시혜 정도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철학자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박애를 훨씬 더 강력하고 능동적인 욕망으로 정의합니다.


"박애(benevolentia)"
우리가 불쌍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친절하려고 하는 욕망이다.

스피노자, 『에티카』


이것은 단순한 동정이 아닙니다. 스피노자는 우리가 누군가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자신과 유사한 어떤 것이 고통받는 것을 볼 때"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즉, 박애는 '타인의 고통 속에서 나의 고통을 발견하는 능력'이자, 그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나를 던지는 행위입니다.


장 발장은 처음부터 성인(聖人)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사회가 만든 괴물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 괴물이 어떻게 다시 인간이 되었는지, 그 기적 같은 과정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19년의 지옥, 그리고 노란 통행증


이야기는 1796년, 굶주림에 지친 일곱 조카를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치다 체포된 한 가지치기 일꾼에서 시작됩니다. 그는 원래 5년 형을 선고받았지만, 네 번의 탈옥 시도 끝에 형량은 19년으로 늘어났습니다.


1815년 10월, 그가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 그는 더 이상 '장 발장'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24601'이라는 수감 번호로 불리는 위험한 전과자였습니다. 위고는 출소 당시 장 발장의 상태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장 발장은 흐느끼고 떨면서 감옥에 들어갔고, 무감정한 사람이 되어서 거기서 나왔다. 그는 거기에 절망해서 들어갔고, 거기서 침울해져서 나왔다."


감옥은 그를 교화시키기는커녕 그에게서 인간성을 앗아갔습니다. 그는 사회를 증오했고, 인간을 불신했습니다. 출소한 그의 주머니에는 그가 위험인물임을 알리는 '노란 통행증'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사회가 그에게 찍은 영원한 낙인이었습니다.


그는 며칠을 걸어 디뉴라는 도시에 도착했습니다. 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관 주인은 그의 노란 통행증을 보고 그를 쫓아냈습니다. 심지어 그는 개집에 들어가 잠을 청하려 했으나, 개조차 그를 보고 으르렁거렸습니다. 세상 모든 존재가 그를 거부했습니다. 그때, 광장에서 만난 한 부인이 그에게 저기 보이는 작은 집, 주교관의 문을 두드려보라고 말합니다.


은식기: 짐승의 본능과 인간의 환대


그곳에는 미리엘 주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넓은 주교관을 가난한 환자들을 위한 병원으로 내어주고, 자신은 작은 방에서 지내며 녹봉의 대부분을 빈민 구제에 쓰는, 살아있는 성자였습니다. 장 발장이 문을 두드렸을 때, 주교는 그의 험악한 몰골과 노란 통행증을 보고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식탁에 초대했습니다.


"당신은 신분을 밝히지 않아도 좋았소. 여기는 내 집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집이오. 당신이 굶주림과 목마름을 느끼고 있다면, 잘 찾아오셨소."


하지만 19년 동안 짐승 취급을 받았던 장 발장의 영혼은 이미 병들어 있었습니다. 그는 호의를 호의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따뜻한 침대에서 잠을 자면서도, 그는 식탁 위에 놓여 있던 은식기를 떠올렸습니다. 그것은 청빈한 주교가 가진 유일한 사치품이었습니다.


장 발장의 내면에서는 격렬한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사회에 대한 복수심, 생존 본능, 그리고 오랜만에 느낀 인간적인 대우에 대한 혼란. 결국 그는 모두가 잠든 새벽, 쇠렛대를 들고 주교의 침실로 들어갑니다. 잠든 주교의 평온한 얼굴을 내려다보던 그는 순간 멈칫하지만, 이내 은식기를 훔쳐 달아납니다.


이것이 '비루함'입니다. 사회로부터 받은 멸시가 내면화되어, 타인의 선의조차 믿지 못하고 스스로를 파괴하는 상태 말입니다.


촛대: 악을 선으로 갚은 충격


얼마 못 가 헌병에게 붙잡힌 장 발장이 주교 앞에 끌려왔을 때, 그는 다시 감옥에 갈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이번에 들어가면 종신형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헌병들은 주교에게 "이 자가 은식기를 훔쳤는데, 당신이 주었다고 주장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주교는 장 발장을 보자마자 다가와 뜻밖의 말을 던집니다.


"아, 돌아오셨군요! 반갑소. 나는 당신에게 은식기뿐만 아니라 은촛대도 주었는데, 왜 그건 가져가지 않았소?"


주교는 헌병들 앞에서 장 발장의 명백한 도둑질을 '선물'로 둔갑시켰습니다. 그리고는 벽난로 위에 있던 두 개의 은촛대를 집어 장 발장의 손에 쥐여주었습니다. 그것은 은식기보다 더 값비싼 물건이었습니다.


헌병들이 물러가고 단둘이 남았을 때, 장 발장은 혼란과 충격에 휩싸여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주교는 그에게 다가가 나지막이, 그러나 단호하게 말합니다.


"장 발장, 나의 형제여. 이 은을 정직한 사람이 되는 데 쓰겠다고 약속해 주시오. 나는 당신의 영혼을 샀소. 나는 당신을 암담한 생각과 비탄의 정신에서 끌어내어 하나님께 바치겠소."


이것은 단순한 용서가 아니었습니다. 주교는 장 발장의 죄를 덮어주는 것을 넘어, 그의 '가능성'을 믿어준 것입니다. 그는 장 발장이라는 '비참한 사람'에게서 '자신과 유사한'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것이 스피노자가 말한 박애의 실체입니다.


쁘띠 제르베 사건: 진정한 회심의 순간


하지만 감동적인 영화나 뮤지컬에서 자주 생략되는 중요한 장면이 하나 더 있습니다. 주교의 집을 나온 장 발장은 곧바로 성인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영혼은 너무나 오랫동안 굳어 있었기에, 주교의 엄청난 자비가 오히려 그를 혼란스럽게 했습니다.


황야를 걷던 장 발장은 굴렁쇠를 굴리며 놀던 쁘띠 제르베라는 어린 소년을 만납니다. 소년이 가진 40수짜리 은화 한 닢이 땅에 떨어져 장 발장의 발치로 굴러옵니다. 장 발장은 자신도 모르게 발로 그 동전을 밟습니다. 소년이 울며 돈을 돌려달라고 애원하지만, 장 발장은 으르렁거리며 소년을 쫓아버립니다.


소년이 울며 사라진 뒤, 장 발장은 퍼뜩 정신을 차립니다.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은 것입니다. 19년 감옥살이 동안 굳어진 '강탈의 본능'이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주교가 심어준 빛이 그의 어둠을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미친 듯이 소년의 이름을 부르며 황야를 뛰어다닙니다. "쁘띠 제르베! 쁘띠 제르베!" 하지만 소년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장 발장은 길바닥에 주저앉아 19년 만에 처음으로 통곡합니다.


이 눈물이야말로 진정한 회심의 순간입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끔찍한 괴물이었는지를 자각했습니다. 주교의 용서가 씨앗이었다면, 이 뼈저린 후회는 그 씨앗을 틔우는 비가 되었습니다. 그날 밤, 전과자 장 발장은 죽고, 훗날 가난한 이들의 아버지가 될 '마들렌'이라는 새로운 사람이 태어났습니다.


정리하며: 당신의 은촛대


장 발장의 변화는 '법'이나 '처벌'이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자베르 형사처럼 법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은 사회의 질서를 유지할 수는 있어도, 사람의 영혼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사람을 바꾸는 것은 오직 사람의 온기, 즉 '박애'뿐입니다.


미리엘 주교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은촛대를 내어줌으로써 한 영혼을 샀습니다. 그는 19세기 프랑스 혁명의 구호였던 '박애'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내 것을 희생하여 타인을 살리는 구체적인 실천임을 보여주었습니다.


내일 [2부] 법은 사람을 가두고, 사랑은 사람을 구한다에서 장 발장이 어떻게 이 사랑을 사회 속에서 실천해 나가는지, 그리고 법의 화신 자베르와 어떤 대결을 펼치는지 계속됩니다.



� 오늘의 질문

당신은 누군가의 명백한 실수나 잘못을 덮어주고, 오히려 더 큰 것을 내어준 '은촛대'의 기억이 있습니까?


혹시 지금 당신의 주변에 '노란 통행증'을 가진 것처럼 소외되고 비참한 처지에 놓인 '장 발장'은 없나요? 그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수,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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