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른하르트 슐링크의 고백, 사랑은 심판하지 않는다
이 글은 강신주의 베스트셀러 『감정수업』을 길잡이 삼아, 스피노자의 48가지 감정중 10가지 감정을 소설과 함께 다시 읽어 내려가는 인문학 연재입니다.
한나는 문맹이라는 수치심을 극복하고 미하엘과 대등하게 소통하기 위해 글을 배워 편지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미하엘은 답장 대신 침묵하며 계속해서 녹음테이프만 보냈습니다.
그의 침묵은 한나에게 "나는 너의 비밀(문맹)을 알고 있으며, 글을 깨우친 현재의 너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는 잔인한 선언이었습니다.
‘의심’이 사라지고 미하엘의 거절이 ‘확실한 현실’이 되자, 한나는 스피노자가 말한 깊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18년의 수감 생활 끝에 출소를 앞둔 날 새벽, 한나는 자살을 선택합니다.
자유로운 삶이 시작되는 바로 그날, 그녀는 자신이 글을 배웠던 장소인 교도소 도서관에서 목을 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녀가 죽음을 택한 것은 감옥 밖의 낯선 삶이 두려워서가 아니었습니다.
스피노자의 말처럼, 그녀를 죽인 것은 ‘절망’이었습니다.
미하엘이 자신의 비밀을 알고도 모른 척했다는 배신감. 그리고 글을 깨우쳐 대등한 인간으로 서고자 했던 자신의 노력이 그에게 철저히 무시당했다는 사실이 그녀를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출소 전 면회 온 미하엘은 늙어버린 한나를 보며 거리감을 느꼈고, “과거에 대해 생각하느냐”고 물으며 심판관처럼 굴었습니다. 한나는 그에게서 사랑이 아닌 의무감을 읽었을 것입니다.
희망의 끈이 완전히 끊어진 자리에서, 그녀는 더 이상 비루한 동정의 대상이나 과거의 유물로 남지 않기 위해,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마지막 수단으로 죽음을 택한 것입니다.
이 소설을 쓴 베른하르트 슐링크는 독일의 법학자이자 헌법재판소 판사였습니다. 1944년생인 그는 독일의 ‘전후(戰後) 세대’입니다. 그는 평생 한 가지 거대한 질문과 싸워야 했습니다.
“나치 시대를 살았던 부모 세대를 어떻게 이해하고 사랑할 것인가?”
작가는 나치 부역자였던 한나를 사랑한 미하엘을 통해 자신의 세대가 겪는 딜레마를 고백합니다.
미하엘은 한나를 사랑했지만, 동시에 나치 부역자인 그녀의 죄를 용서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는 한나를 이해하고 싶었지만, 이해하는 순간 그녀의 죄까지 정당화할까 봐 두려워했습니다.
이것은 슐링크 자신이 속한 전후 세대의 ‘비겁함’과 ‘오만’에 대한 고백이기도 합니다.
작가는 왜 이토록 잔인한 결말을 썼을까요?
그것은 ‘회피’와 ‘기만’, 그리고 ‘침묵’으로는 결코 진정한 화해나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미하엘은 재판장에서 그녀의 비밀을 알렸어야 했고, 그녀가 편지를 보냈을 때 답장을 했어야 했습니다. 그가 침묵한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한나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서였지만,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문맹인 한나’여야만 자신이 우위를 점하고 지배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편안한 기억(책 읽어주는 남자)과 도덕적 우월감을 지키기 위해, 타인의 절박한 변화를 외면했습니다.
슐링크는 이 소설을 통해 묻습니다.
우리는 과연 타인을, 그리고 역사를 제대로 마주하고 있는가? 아니면 미하엘처럼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듯 방관하고 있는가?
스피노자의 말처럼 절망은 불확실함이 아니라, 끔찍한 진실이 확실해질 때 찾아옵니다.
한나를 절망에 빠뜨려 죽게 만든 것은, 감옥이라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그녀의 존재와 변화를 부정한 미하엘의 태도였습니다.
우리는 종종 타인을 내가 원하는 모습, 내가 기억하는 편한 모습으로만 규정하려 합니다.
상대가 변하고 성장하려 할 때, 그것을 응원하기보다 “너답지 않아”라며 과거의 틀에 가두려 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상대방에게는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깊은 절망이 될 수 있음을 모른 채 말입니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변화한 모습에 답장을 보내는 것.
침묵 대신 진실된 목소리를 건네는 것.
그것이 절망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인지도 모릅니다.
한나는 떠났지만, 그녀가 남긴 유산(돈과 틴케이스)을 유대인 생존자에게 전달하며 미하엘은 비로소 과거와 화해하는 법을 배웁니다.
� 자기 삶으로 돌아보는 질문
Q. 당신은 누군가를 당신이 편한 방식대로만 기억하고 규정하고 있지 않습니까?
Q. 누군가가 간절히 보낸 변화의 신호를 무심코 무시하거나 침묵으로 짓밟은 적은 없나요?
Q. 지금 당신의 진심 어린 '답장'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