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박애 : 『레 미제라블』

by 설탕바른위로

이 글은 강신주의 베스트셀러 『감정수업』을 길잡이 삼아, 스피노자의 48가지 감정중 10가지 감정을 소설과 함께 다시 읽어 내려가는 인문학 연재입니다.


[3부] 비참한 사람들(Les Misérables)은 누구인가


어제까지의 이야기


빵 도둑에서 마들렌 시장으로, 그리고 다시 도망자가 된 장 발장. 그는 팡틴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코제트를 구해냈습니다. 하지만 운명은 그를 가만두지 않았습니다. 1832년, 파리는 혁명의 불길에 휩싸였고, 코제트가 사랑하는 청년 마리우스는 그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장 발장은 딸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죽이러 가는 것과 다름없는 바리케이드로 걸어 들어갑니다.


1832년의 바리케이드: 용서의 완성


1832년 6월 5일, 라마르크 장군의 장례식을 기점으로 파리 도심 곳곳에 바리케이드가 세워졌습니다. 정부군과 시민군의 총격전이 오가는 생사의 현장. 그곳에서 장 발장은 뜻밖의 인물과 마주칩니다. 바로 혁명군에게 스파이 혐의로 붙잡혀 처형을 기다리고 있는 자베르 형사였습니다.


혁명군은 장 발장에게 자베르를 처형할 권한을 넘깁니다. 19년의 옥살이, 그리고 출소 후 십수 년간 이어진 지독한 추격. 장 발장에게 자베르는 자신의 인생을 망친 장본인이자,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방아쇠만 당기면 모든 악연을 끊고 평생의 자유를 얻을 수 있는 완벽한 기회였습니다.


하지만 장 발장은 자베르를 묶은 밧줄을 칼로 끊어버립니다. 그리고는 허공에 총을 쏘아 그를 처형한 척 위장한 뒤, 자베르에게 도망치라고 말합니다.


"당신은 이제 자유요. 가시오."


자베르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왜 나를 죽이지 않나?"라고 묻는 그에게 장 발장은 자신의 집 주소를 알려주며 나중에 체포하러 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자비가 아니었습니다. 장 발장은 '미움'의 사슬을 끊어내는 유일한 방법은 '용서'뿐임을, 미리엘 주교에게 받은 은촛대를 통해 이미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는 원수를 갚는 대신, 악을 선으로 갚음으로써 자베르라는 인간의 영혼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하수구: 박애의 정점, 자발적 가난


정부군의 총공세로 바리케이드는 무너지고, 청년들은 몰살당합니다. 장 발장은 총상을 입고 의식을 잃은 마리우스를 둘러업고 필사적인 탈출을 감행합니다. 지상에는 도망칠 곳이 없었습니다. 그가 선택한 길은 파리의 지하, 오물과 악취가 진동하는 거대한 하수구(L'intestin de Léviathan)였습니다.


이 장면은 『레 미제라블』에서 가장 상징적인 대목입니다. 장 발장은 지금 누구를 살리고 있습니까? 마리우스입니다. 마리우스가 살아난다면, 장 발장의 유일한 삶의 이유인 코제트는 마리우스와 결혼하여 그의 곁을 떠날 것입니다. 즉, 장 발장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아 갈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똥물 속을 기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원리는 본질적으로 '무소유'입니다. 내가 소유한 것을 지키려는 마음이 있는 한, 그것은 온전한 사랑이 아닙니다. 장 발장은 자신의 행복(코제트를 곁에 두는 것)을 철저히 포기하고, 타인의 행복(코제트와 마리우스의 결합)을 위해 자신을 '자발적 가난'의 상태로 몰아넣습니다.


"비참한 사람들보다 더 비참해지려는 결의, 그들보다 더 가난해지려는 결의."


빛도 들어오지 않는 어둠 속, 무릎까지 차오르는 오물을 헤치며 마리우스를 업고 나가는 장 발장의 모습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성자의 고행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는 하수구라는 도시의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숭고한 박애를 완성했습니다.


자베르의 투신: 율법의 붕괴


하수구를 빠져나온 장 발장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또다시 자베르였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자베르는 장 발장을 체포할 수 있었지만, 그를 놓아줍니다. 평생 법과 원칙을 신처럼 떠받들던 자베르에게, 장 발장이 보여준 숭고한 희생과 용서는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이었습니다.


"법은 완벽해야 한다. 죄인은 처벌받아야 한다. 그런데 저 죄인이 나를 구원했고, 나 또한 저 죄인을 놓아주려 한다. 그렇다면 내 평생의 신념은 무엇이었단 말인가?"


자베르는 혼란에 빠집니다. 그는 선한 범죄자(장 발장)와 악한 법 집행자(자신)의 공존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박애가 없는 정의, 인간에 대한 사랑이 배제된 율법은 결국 자신을 파괴하는 칼날이 되었습니다. 견딜 수 없는 인지부조화 속에서 자베르는 센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합니다. 이는 '사랑'이 결여된 '정의'가 얼마나 허망한지를 보여주는 비극적인 결말입니다.


촛대 아래서의 죽음: 위대한 완성


마리우스와 코제트는 결혼식을 올립니다. 장 발장은 자신의 전과 사실이 두 사람의 앞날에 짐이 될까 봐 스스로 그들의 곁을 떠나 홀로 고독하게 늙어갑니다. 뒤늦게 테나르디에를 통해, 바리케이드에서 자신을 구한 생명의 은인이 장 발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마리우스는 코제트와 함께 장 발장의 집으로 달려갑니다.


하지만 장 발장은 이미 죽음의 문턱에 있었습니다. 재회한 코제트와 마리우스에게 장 발장은 마지막 유언을 남깁니다.


"서로 깊이 사랑해라. 세상에서 서로 사랑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단다."


그의 곁에는 평생 간직해온 두 개의 은촛대가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그는 비참한 죄수였지만, 박애를 실천함으로써 가장 위대한 성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묘비에는 이름도 없이, 누군가가 연필로 쓴 4행시만이 남겨집니다.


그는 잠들었다. 비록 운명은 그에게 기이했으나,
그는 살았다. 천사를 잃자 그는 죽었다.
올 것은 가고, 갈 것은 간다.
낮이 가면 밤이 오듯이.


작가의 고백: 빅토르 위고의 삶


이 방대한 서사시를 쓴 빅토르 위고(Victor Hugo). 소설 속 장 발장의 삶은 사실 작가 자신의 삶과 깊게 공명하고 있습니다.


1. 딸의 죽음과 19년의 침묵

위고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큰딸 레오폴딘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1843년, 열아홉 살이던 레오폴딘은 센강에서 보트 전복 사고로 익사하고 맙니다. 남편이 그녀를 구하려다 함께 죽음을 맞이한 비극이었습니다. 딸의 죽음은 위고에게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었고, 그는 이후 10년 넘게 붓을 꺾고 절필했습니다. 『레 미제라블』에서 코제트를 향한 장 발장의 헌신적인 부성애, 그리고 코제트가 떠나자 급격히 쇠약해져 죽음을 맞는 설정은, 잃어버린 딸 레오폴딘에 대한 위고의 사무치는 그리움이 투영된 것입니다.


2. 망명자의 삶: 현실의 장 발장

위고는 1851년 나폴레옹 3세의 쿠데타에 반대하다가 조국 프랑스에서 추방당했습니다. 그는 영국령 건지 섬(Guernsey)에서 무려 19년 동안 망명 생활을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장 발장이 감옥에 갇혀 있던 시간과 똑같은 19년입니다. 위고는 망명지에서, 저 멀리 보이는 프랑스 해안을 그리워하며 『레 미제라블』을 집필했습니다. "자유가 없는 프랑스에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고독을 견뎌낸 위고의 삶은, 신념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도망자로 살아야 했던 장 발장의 삶과 닮아 있습니다.


3. 왜 이 소설을 썼는가?

위고는 서문에 이렇게 썼습니다.

"지상에 무지와 빈곤이 존재하는 한, 이 책 같은 종류의 책들도 무익하지만은 않으리라."

그는 "단테가 시로 지옥을 그려냈다면, 나는 현실로 지옥을 만들어내려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본 지옥은 바로 19세기 프랑스의 비참한 현실이었습니다.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의 발달로 부는 넘쳐났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더 비참해졌습니다. 법은 자베르처럼 냉혹했고, 혁명은 미완성인 채 피를 흘렸습니다.


위고는 이 혼돈 속에서 사회를 구원할 유일한 해법으로 '박애'를 제시했습니다. 자본주의의 자유(소유)와 사회주의의 평등(분배) 사이에서, 서로를 불쌍히 여기고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내어주는 '사랑의 원리'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마치며: 21세기의 레 미제라블


소설의 배경이 된 1832년 6월 봉기, 그리고 위고가 펜을 들었던 19세기 중반으로부터 약 200년이 지났습니다. 빅토르 위고는 "19세기는 위대하지만, 20세기는 행복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과연 우리는 행복한 세기에 살고 있습니까?


우리 곁에는 여전히 '레 미제라블(비참한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법의 사각지대에서 신음하는 사람들, 경쟁에 내몰려 서로를 적으로 여기는 우리의 모습이 바로 그들입니다. 자베르와 같은 냉혹한 원칙주의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박애는 거창한 구호가 아닙니다. 그것은 장 발장이 보여주었듯, 내 옆의 사람이 추위에 떨 때 기꺼이 내 옷을 벗어주는 마음, "자신과 유사한 고통"을 느끼는 공감에서 시작됩니다.


장 발장이 미리엘 주교에게 받은 은촛대를 평생 간직했듯, 우리도 마음속에 작은 촛불 하나를 켜두어야 하지 않을까요? 차가운 계산과 원칙 대신, 따뜻한 눈물과 용서가 흐를 수 있도록 말입니다. 위고가 꿈꾸었던, 그리고 장 발장이 완성했던 그 사랑의 기적이 오늘 당신의 삶에도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 자기 삶으로 돌아보는 질문


당신은 누군가를 용서함으로써 오히려 자신이 자유로워진 경험이 있습니까? 혹은, 아직 용서하지 못해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감옥은 무엇입니까?


장 발장은 코제트를 위해 자신의 행복(소유)을 포기했습니다.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이나 공동체를 위해 나의 '당연한 권리'를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이 긴 이야기를 마친 지금, 당신의 마음속에 켜진 '은촛대'는 무엇을 비추고 있습니까?


[다음 편 예고 - 마지막 회] 희망(Spes):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


수, 목, 금 연재
이전 26화09 박애 : 『레 미제라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