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희망 : 『위대한 유산』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 족쇄가 된 헛된 기대

by 설탕바른위로

이 글은 강신주의 베스트셀러 『감정수업』을 길잡이 삼아, 스피노자의 48가지 감정중 10가지 감정을 소설과 함께 다시 읽어 내려가는 인문학 연재입니다.


[1부] 희망이라는 이름의 색안경: 나는 왜 나를 부끄러워하게 되었나


당신을 잠 못 들게 하는 가장 간절한 소망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이루어지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지만, 동시에 "만약 안 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이 당신의 오늘을 갉아먹고 있지는 않습니까? 1861년, 영국의 대문호 찰스 디킨스는 바로 이 '희망의 이중성'에 사로잡힌 한 소년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소설의 제목은 『위대한 유산(Great Expectations)』.


우리는 흔히 '위대한 유산'이라는 제목에서 막대한 재산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돈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만드는, '희망'이라는 무서운 착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당신의 희망은 당신을 구원합니까, 아니면 당신을 스스로에게서 소외시킵니까?"


안개 낀 늪지대, 족쇄, 그리고 "잊지 않겠다"


이야기는 춥고 음산한 늪지대 마을의 묘지에서 시작됩니다. 주인공 핍은 부모님의 얼굴조차 모르는 고아입니다. 그는 괄괄하고 거친 누나와 그녀의 남편인 대장장이 조 가저리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매형 조는 핍에게 아버지이자 친구 같은 존재였습니다. 핍은 조의 어깨너머로 대장장이 일을 배우며, 비록 가난하지만 조와 함께라면 굶어 죽지는 않을 것이라는 소박한 믿음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어느 날 저녁, 부모님의 무덤가에서 핍은 탈옥수와 마주칩니다. 발목에 족쇄를 차고 굶주림에 지친 흉악한 인상의 사내는 핍을 협박합니다. "줄(file)과 먹을 것을 가져오지 않으면 네 심장과 간을 꺼내 먹겠다." 공포에 질린 핍은 집에서 음식과 족쇄를 끊을 줄을 훔쳐 그에게 가져다줍니다.


죄수는 허겁지겁 음식을 먹습니다. 그는 짐승처럼 거칠었지만, 어린 핍이 가져온 음식 앞에서 묘한 눈빛을 보입니다. 그는 족쇄를 끊으며 안개 속으로 사라지기 전, 핍을 깊이 응시하며 "너는 잊지 않겠다"는 말을 남깁니다. 이 짧은 만남은 핍의 기억 속에서 곧 잊히는 듯했습니다. 죄수는 다시 잡혀갔고, 핍은 자신이 대장장이가 될 운명임을 의심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이 만남은 훗날 핍의 운명을 송두리째 뒤흔들 '보이지 않는 족쇄'가 됩니다.


"에스텔러를 사랑하라!": 저주가 된 희망


핍의 영혼이 송두리째 흔들린 것은 마을의 대저택 '새티스 하우스(Satis House)'에 초대받으면서부터입니다. 그곳은 시간이 멈춘 폐허였습니다. 주인인 미스 해비셤은 결혼식 당일 약혼자에게 버림받은 충격으로, 수십 년째 빛을 차단하고 썩어가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곁에는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얼음처럼 차가운 양녀, 에스텔라가 있었습니다. 핍은 에스텔라를 보는 순간, 설명할 수 없는 강력한 힘에 이끌려 사랑에 빠집니다. 하지만 에스텔라는 핍의 거친 손과 두꺼운 신발을 경멸하며 그를 "천한 녀석(common labouring boy)"이라 부릅니다. 핍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손이 거칠다는 것을, 자신의 신발이 투박하다는 것을 부끄러워하게 됩니다.


미스 해비셤은 핍에게 주문을 걸듯 말합니다.


"에스텔러를 사랑하라!"


이것이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미스 해비셤의 이 말은 핍의 가슴에 불가능해 보이는 희망을 심어놓았습니다. 하지만 그 희망은 핍에게 행복을 준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현재를 비루하게 만들었습니다. 핍은 처음으로 자신의 거친 손과, 무식하지만 다정한 매형 조, 그리고 대장간의 삶을 혐오하기 시작합니다. 에스텔라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희망(Spes)과 불확실성: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마음


철학자 스피노자는 그의 저서 『에티카』에서 희망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희망(spes)"
우리들이 그 결과에 대하여 어느 정도 의심하는 미래나 과거의 사물의 관념에서 생기는 불확실한 기쁨(inconstans laetitia)이다.

스피노자, 『에티카』


이 정의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불확실한'입니다. 스피노자에게 희망은 단순히 긍정적인 기대가 아닙니다. 그것은 '의심'과 짝을 이루는 감정입니다. "그렇게 되면 너무나 기쁠 텐데(기쁨), 안 될 수도 있다(의심/불확실성)"는 상태인 것이죠.


이것이 희망이 우리를 괴롭히는 이유입니다. 희망이라는 나무가 커질수록, '불확실성'이라는 그림자도 짙어지기 때문입니다. 핍에게 에스텔라는 거대한 희망의 나무였습니다. 그녀를 사랑하면 할수록, 그녀가 자신을 선택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확실성의 그림자는 핍의 영혼을 잠식했습니다. 핍은 이 불확실성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불확실성'을 제거해 줄 확실한 수단을 갈망하게 됩니다. 바로 신분입니다.


런던에서 온 남자, 재거스(Jaggers)의 등장


핍이 열여덟 살이 되어 대장장이 도제로 일하고 있던 어느 날, 런던에서 한 남자가 찾아옵니다. 그는 어두운 기운을 풍기는 유능한 변호사, 재거스였습니다. 그는 핍에게 믿을 수 없는 소식을 전합니다.


"어떤 분이 너에게 막대한 유산(Great Expectations)을 물려주기로 했다. 조건은 단 하나, 런던으로 가서 신사 수업을 받을 것. 그리고 후원자가 누구인지 절대 묻지 말 것."


여기서 핍은 치명적인 착각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핍은 이 변호사 재거스를 이미 본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미스 해비셤의 집, 새티스 하우스에서 말이죠. 재거스는 미스 해비셤의 법률 자문인이었습니다.


이 우연의 일치—자신에게 돈을 주는 변호사가 미스 해비셤의 변호사라는 사실—는 핍에게 '잘못된 확신'을 심어줍니다.

"나의 후원자는 미스 해비셤이다! 그녀가 나를 신사로 만들어 에스텔라와 결혼시키려는 거야!"


하지만 재거스는 핍의 착각을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그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비밀을 지킬 뿐입니다. 핍은 이 유산이 사랑을 위한 선물이라 확신하며, 자신을 키워준 조와 친구들을 버리고 런던으로 떠납니다. 핍은 생각합니다. 돈이 있으면 사랑도, 신분도, 행복도 모두 '확실해질' 것이라고.


이제 핍은 런던행 마차 안에서 찬란한 미래를 꿈꾸지만, 그가 향하는 곳은 축복의 땅이 아니라, 변호사 재거스가 설계해 둔 거대한 비밀의 미로였습니다.


내일 [2부]에서 계속됩니다.


� 오늘의 질문


지금 당신이 간절히 바라는 희망 때문에, 혹시 지금 당신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이나 현재의 평온한 일상을 '시시한 것'으로 치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돈만 있으면", "성공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가 혹시 당신의 눈을 가리고 있지는 않나요?


수, 목, 금 연재
이전 27화09 박애 : 『레 미제라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