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희망 : 『위대한 유산』

by 설탕바른위로

이 글은 강신주의 베스트셀러 『감정수업』을 길잡이 삼아, 스피노자의 48가지 감정중 10가지 감정을 소설과 함께 다시 읽어 내려가는 인문학 연재입니다.


[2부] 흉터 난 손목이 가리키는 진실, 그리고 무너지는 희망의 탑


어제까지의 이야기


늪지대 소년 핍은 에스텔라를 사랑하며 신분 상승을 꿈꿨습니다. 미스 해비셤의 변호사인 재거스로부터 '막대한 유산'을 받게 된 핍은, 미스 해비셤이 자신을 에스텔라의 짝으로 점지했다고 확신하며 런던으로 떠났습니다.


런던의 지배자 재거스, 그리고 기묘한 하녀 '몰리'


런던에 도착한 핍은 재거스의 후견 아래 '신사' 수업을 받습니다. 그는 돈을 물 쓰듯 쓰고, 사교 클럽에 가입하며 겉모습을 치장합니다. 하지만 런던의 삶은 그가 상상했던 고상한 세계가 아니었습니다. 재거스의 사무실은 범죄자들의 의뢰로 가득 차 있었고, 교수형 당한 죄수들의 데스 마스크가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재거스는 런던의 범죄자들을 변호하여 무죄를 받아내는 뒷골목의 제왕이었습니다.


어느 날, 핍은 재거스의 집에서 열린 저녁 식사에 초대받습니다. 그곳에서 핍은 재거스의 하녀, 몰리(Molly)를 만납니다. 그녀는 창백한 얼굴에, 유령처럼 조용히 움직이는 40대 여성이었습니다.


식사 도중 재거스는 손님들에게 몰리의 손목을 보여주며 기이한 자랑을 합니다.

"이 여자의 손목을 보시오. 이보다 강한 힘을 가진 손목을 본 적이 있소? 이 손목에는 깊은 흉터가 있지."


몰리의 손목에는 끔찍한 흉터가 있었고, 그녀의 손은 기이할 정도로 힘이 세 보였습니다. 재거스는 그녀가 과거에 질투심에 눈이 멀어 자신보다 훨씬 큰 여자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으나, 자신의 변호 덕분에 무죄로 풀려났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내비칩니다.


그 순간, 핍은 몰리의 얼굴과 손짓에서 소름 끼치는 기시감을 느낍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차가운 눈빛, 무언가를 움켜쥐는 손동작... 그것은 바로 핍이 그토록 사랑하는 에스텔라의 모습과 겹쳐 보였습니다.


하지만 핍은 이 불길한 징조를 애써 무시합니다. 에스텔라는 고귀한 미스 해비셤의 양녀이고, 몰리는 살인 혐의를 받았던 비천한 하녀일 뿐이니까요. 핍의 '희망'은 그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연결 고리가 있을 것이라는 상상조차 거부하게 만들었습니다. 핍은 '희망의 오류'에 빠져 있었습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어버리는 것 말입니다.


에스텔라의 경고와 핍의 착각


핍은 에스텔라가 런던 사교계에 데뷔하자 그녀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닙니다. 하지만 에스텔라는 핍에게 차갑게 경고합니다.


"나에게는 심장이 없어. 부드러움도, 동정심도 없어."


그녀는 자신이 미스 해비셤의 복수를 위해 '사랑할 줄 모르는 인형'으로 키워졌음을 고백합니다. 심지어 그녀는 핍에게 "나를 사랑하지 마. 나는 너를 상처 입힐 뿐이야"라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핍은 그 경고를 듣지 않습니다. 그는 에스텔라가 자신에게만은 특별하다고 착각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뒤에는 (그가 믿기로는) 미스 해비셤이라는 거대한 후원자가 버티고 있으니까요. 미스 해비셤이 에스텔라를 훈련시킨 것도, 자신에게 유산을 물려준 것도, 결국 둘을 맺어주기 위한 시련이라고 합리화합니다.


폭풍우 치는 밤, 계단을 올라온 발자국 소리


핍이 스물세 살이 되던 해, 런던에는 며칠째 거친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습니다. 핍의 내면도 빚과 공허함으로 폭풍우처럼 요동치고 있었습니다. 폭풍우가 절정에 달하던 밤, 계단을 올라오는 묵직한 발소리가 들렸습니다. 문을 열자, 60대의 늙고 초라한 사내가 서 있었습니다. 비에 젖은 낡은 외투, 짐승처럼 거친 피부.


핍은 처음에 그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사내가 핍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기이한 열망과 감격, 그리고 소유욕이 서려 있었습니다. 그는 다름 아닌, 핍이 어린 시절 늪지대 묘지에서 족쇄를 끊을 줄과 음식을 가져다주었던, 바로 그 탈옥수 매그위치였습니다.


매그위치는 핍에게 충격적인 진실을 털어놓습니다.


"그래, 핍. 내가 너를 신사로 만들었다! 내가 너의 후원자다!"


핍의 세상은 산산조각 났습니다.

자신을 후원한 것은 고상한 미스 해비셤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누려온 부와 지위, 그 호화로운 생활의 자금은 핍이 그토록 경멸하던 범죄자 매그위치가 호주로 추방당해, 땡볕 아래서 양을 치고 거친 노동을 하며 번 피 묻은 돈이었습니다.


재거스는 그저 매그위치의 돈을 관리하는 대리인이었을 뿐, 미스 해비셤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던 것입니다. 미스 해비셤은 핍의 착각을 알면서도 즐겼을 뿐입니다.


희망의 역설: 가짜가 무너져야 진짜가 보인다


핍은 절망했습니다. 하지만 이 순간, 핍의 머릿속에서 흩어져 있던 퍼즐 조각들이 비명처럼 맞춰지기 시작합니다.


재거스는 미스 해비셤의 변호사이자, 동시에 매그위치의 변호사였습니다.

그렇다면 재거스의 하녀, 몰리는 누구인가?

핍이 에스텔라와 닮았다고 느꼈던 그 여자.

매그위치는 핍에게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합니다. 그에게는 잃어버린 딸이 하나 있다고 했습니다.


핍은 공포에 질려 깨닫습니다.

매그위치는 에스텔라의 친아버지이고, 살인 혐의자 몰리는 에스텔라의 친어머니였습니다.


스피노자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가짜 희망'의 필연적 붕괴였습니다.

핍의 희망은 '돈'과 '신분'이라는 외적 조건에 의존한 것이었기에, 그 조건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 삶 전체가 공포로 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핍이 그토록 고귀하다고 믿었던 에스텔라의 출신이, 사실은 핍이 가장 경멸했던 매그위치의 핏줄이라니. 이것은 핍이 가지고 있던 '신분과 계급에 대한 환상'을 박살 내는 잔인한 진실이었습니다.


내일 [3부]에서 계속됩니다.


� 오늘의 질문


핍은 '희망' 때문에 눈앞에 보이는 몰리와 에스텔라의 닮은 점을 애써 무시했습니다. 혹시 당신도 간절히 바라는 것 때문에, 명백한 진실이나 경고 신호를 외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당신이 믿고 있는 '나를 구원해 줄 무언가(돈, 합격, 결혼 등)'가 사실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른 본질을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수,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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