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외면보다 내면을 더 중시하라.

by 또 다른세상

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1부 인간의 위대함은 운이 아니라

미덕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미덕

27. 책의 가치를 두께로 평가하지 말라.

외면보다 내면을 더 중시하라. 완벽함은 양이 아닌 질에 달려 있다. 가장 좋은 것은 모두 늘 드물고 특이한데, 수가 많으면 가치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만능인은 모든 곳에 있고 싶지만, 결국 아무 데도 없기 때문이다. 반면 내적인 부분은 탁월함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본질이 숭고하면 영웅적인 수순이 된다.


휴가를 나온 아들은 친구들과 만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침에 가족 얼굴을 보고는 밤늦게야 돌아온다. 그동안 군 생활이 얼마나 답답했을까를 짐작할 수 있다. 매번 빈손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뭔가를 사 오지만, 정작 식탁에 앉아 온전히 먹는 모습은 보기 어렵다. 군대 식단도 괜찮다고 말하곤 했지만, 역시 바깥세상에서 먹고 싶던 음식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 아들의 모습을 보며, 그 시기에는 그렇게 보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게 된다. 사람들을 만나고, 웃으며 즐기는 시간은 꿀맛 같을 것이다. 그런 시간이 있어야 군 생활의 고단함도 조금은 씻겨 내려갈 테니 말이다.


지금의 나는 아들과는 조금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항암치료로 인한 부작용이 몸에 여러 변화를 가져왔다. 얼굴은 검게 변했고, 손과 발, 다리가 심하게 부어 외출조차 쉽지 않다. 걷는 것도 힘겨워 조용히 집 안에 머무는 날들이 많아졌다. 항암제와 부작용약이 내 몸 안에서 치열하게 싸움을 반복하고 있다.


가끔 맛있는 걸 사주겠다며 연락을 주는 회사 동료들이 있지만, 그에 응하지 못하는 나를 보며 아쉬움과 고마움이 교차한다. 예전엔 당연했던 일상들이 이제는 건강할 때만 가능한 소중한 경험임을 깨닫는다. 지금은 조용히 있는 것도 괜찮다. 집 안에서 멍때리기, 명상하기, 글쓰기, 엄마와 도란도란 대화 나누기, 충분한 휴식 등을 통해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연령대마다 하고 싶은 일은 다른 법이다. 나 역시 20대 초반엔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면 왠지 모르게 뒤처지는 것처럼 느껴지곤 했다.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두꺼운 경제학, 인문학, 과학책을 읽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책의 두께에 기가 죽었다는 표현이 꼭 내 얘기 같았다.


혼자서는 쉽지 않았다. ‘평단지기’ 독서모임을 통해 함께 읽으며 조금씩 내면을 채워왔다. 특히 『내면소통』이라는 책은 아직도 깊은 인상으로 남아 있다. 지금은 『종의 기원』에 도전하고 있고, 이해는 더디지만 천천히 읽어가고 있다. 병행해서 읽고 있는 『사람을 얻는 지혜』는 하루 한 페이지씩 읽으며 일상 속 사색에 도움이 된다.


두꺼운 책의 가치도,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도 각자 느끼는 바는 다르다. 친구의 폭을 넓혀가는 시기가 있는가 하면, 나처럼 인간관계를 정리해야 하는 시기도 있다. 독서 역시 마찬가지다. 때로는 수많은 책에서 지혜를 얻고 싶을 때가 있고, 때로는 시력 저하나 피로로 인해 한 줄도 읽기 힘든 시간이 오기도 한다. 그럴 땐 새로운 방법을 찾으면 된다. 듣는 책, 요약본, 글 대신 영상이나 명상으로의 전환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면이다. 내면을 채우기 위한 작은 습관과 꾸준함, 그리고 자신만의 리듬을 지켜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지금의 나에게 꼭 필요한 삶의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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