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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두 시 고구마, 너도 대단한 딸이야.”

by 또 다른세상


바스락, 바스락. 식탁 위에서 들려오는 비닐 소리. 강한 조명 아래 엄마가 앉아 계신다. 어젯밤, 삶은 고구마를 먹다 남긴 것을 비닐에 두 개 넣어두었다. 저녁밥을 같이 먹었는데도 “출출하면 먹게 식탁에 놔둬라”고 하셨다. 느낌상 하나는 껍질 벗겨 드신 듯하다.


며칠 전 병원에서 식이조절에 대해 들으셨지만, 엄마는 “이 나이에 무슨 다이어트냐”고 웃으셨다. 조절해보겠다고는 했지만 쉽지 않다. 그래도 다행이다. 한 개만 드셨으니.


나는 손가락, 발바닥의 통증에 더는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 키보드 위에서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해본다. 몸속 항암제가 얼마나 남아 있을까. 얼마나 더 물을 마셔야 빠져나갈까. 막막하다.


할수 있는 것이 유일하게 TV시청,

요즘은 점심을 먹고 나면 거의 매일 나는 자연인이다를 본다. 최근 가장 인상 깊었던 회차는 75세 작은 체구의 남성 주인공. 잘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어렸을 때, 공부를 못 한 게 한이 되어 자살을 기도했고, 50세부터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중학 검정고시부터 시작해 무려 20년 동안 공부해 성균관대 박사학위에 2개의 박사학위를 더 땄단다. 공부의 한을 씻고 산속으로 들어간 그는 지금도 새벽이면 책을 읽고 명상을 한다. 나는 그 이야기를 새벽부터 깨어 있던 엄마에게 들려드렸다.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시더니 나를 바라보며 말씀하신다.

“우리 딸도 대단한 사람이야.”


“무슨 이유로 그런 말씀을 하세요?” 내가 묻자, 엄마는 말한다. 몸이 아픈 와중에도 기회만 되면 강의를 듣고 공부하려는 내 모습을 보며 그렇게 느꼈다고. 나는 웃으며 말한다.

“엄마, 그건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그런 거예요.”


책도 읽기 어렵고, 글도 쓰지 못할 때 나는 쿠션 위에 다리를 올려놓는다. 밤새 부은 다리가 조금이라도 가라앉기를 바라며. 겨우 5분 의자에 앉을 수 있게 되면 다시 퉁퉁 붓는다. 걸을 수도 없다.


그나마 귀는 정상이다.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민간자격증이라 해도 괜찮았다. 관심 있는 강의를 듣고 시험을 보면 자격증을 받을 수 있었다. 우선 심리학 강의부터 듣기 시작했고, 3개의 자격증이 집으로 배송됐다. 회계, 세무, 수납 강의까지. 아프기만 하다고 생각했지만, 조금씩 식사도 할 수 있고, 컨디션도 좋아지면서 배움에 대한 갈증도 되살아 조금씩 가능하게 되었다.


생활 반경은 좁아졌지만, 배움의 선택의 폭은 오히려 넓어졌다. 수시로 듣고 싶은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지금,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엄마가 “대단하다”고 하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엄마가 훨씬 더 대단하다는 걸.


새벽마다 식탁에 앉아 책을 필사하시고, 한 자리에 세 시간 넘게 앉아 계시는 그 집중력. 여든 여섯의 나이에 그런 열정을 지닌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게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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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 우리 모녀는 각자의 공부를 하며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조용히 하루를 연다. 서로를 칭찬하고 응원하는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더 이상 아름다운 아침이 있을까.


자연스레 두 손을 모은다.

“엄마와 함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힘을 조금만 주세요. 딸보다 더 대단한 어머니잖아요.”

그렇게 또 새벽이 밝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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