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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두부가 뭐라고

미각을 잃은 딸과, 마음을 잃지 않은 엄마

by 또 다른세상

어제 오후, 요양사님이 시장에 가신다기에 오랜만에 두부를 부탁드렸다. 그런데 친정엄마는 “두부 말고 초두부를 사오라”고 당부하셨다. 단백질 보충을 위해 부탁드린 건데, 엄마는 초두부를 꼭 집어 말씀하셨다. 달걀과 오이도 같이 부탁드렸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엄마가 요청한 건 전부 내가 자주 먹는 것들이다.


저녁은 엄마 혼자 드셨다. 나는 속이 울렁거려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초두부는 소화가 잘 되니 조금이라도 먹으라고 몇 번 권하셨지만, 끝내 손이 가지 않았다. 대신 운동 삼아 아파트 단지를 걸었다.


지팡이를 들까 하다가 괜히 남들 시선이 신경 쓰여 그냥 나왔다. 몇 주 만에 나서는 산책. 아파트 화단에는 등서화와 백합이 예쁘게 피어 있었다. 사진도 찍다가 균형을 잃고 넘어질 뻔했다. 향기는 유난히 진하게 느껴졌다.


조금 걸었을 뿐인데, 어디라도 앉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계를 보니 나온 지 10분. 이토록 체력이 떨어졌다는 걸 실감했다. 한 바퀴 더 돌고 올라가 식탁 정리도 하고, 설거지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집에 돌아오니 엄마는 다시 초두부 이야기를 꺼내신다. "지금은 못 먹겠어요." 속이 울렁거려 나중에 먹겠다고 말씀드렸다. 식은 초두부는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이른 새벽,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 겨우 잠들었고, 눈을 떠보니 8시가 넘었다. 평소 같으면 7시쯤 아침을 챙기는데 오늘은 한 시간 늦었다. 그 시간 동안 엄마는 조용히 딸이 일어나기를 기다리셨다. 식탁 위엔 엄마가 드시려던 야채와 물 한 병이 놓여 있었다.


아침 인사도 잊고 얼른 냉장고에서 초두부를 꺼내 데우기 시작했다. 반찬도 꺼내 식탁 위에 놓았다. 어제 영양제를 맞은 탓인지 속이 더부룩했다. 한동안 입맛이 돌아 많이 먹기도 했는데, 며칠동안 못 먹었던 과자며 피자 같은 것들까지 먹어댔다. 죄책감도 들었지만 유혹을 참지 못했다.


엄마는 워커를 소리 내 끌며 식탁으로 오셨다. 초두부를 국그릇에 담아 밥 옆에 놓고, 내 몫도 함께 준비했다. 묵은지를 얹어 먹었다. 시큼한 맛이 괜찮았다.


나는 한 그릇을 다 비웠다. “원래 이런 맛인지 잘 모르겠네”라고 말하자, 안드시겠다고 밀어놓았던 그릇을 끌어당겼다. 엄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한 숟가락 드셨다.


항암 치료로 미각을 잃은 나는 상한 초두부도 알아채지 못하고 다 먹었던 것이다. 엄마는 조심스레 말했다. “맛이 좀 변한 것 같네…”


그런데 그 초두부를 그대로 드신다. 버리면 아까워서일까, 딸이 상한 음식을 먹고 혼자만 또 탈이 날까 걱정돼서일까.


내가 엄마였다면 먹지 않았을 텐데.

천오백 원이면 새로 사올 수 있는 초두부. 그 한 그릇이 뭐라고, 엄마는 오늘도 말없이 힘든 선택을 한다.


엄마 다음엔 햄버거~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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