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다섯 시. 어둠이 아직 남아 있는 집 안에 거친 숨소리와 함께 또렷한 숫자 세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하나, 둘, 셋…” 며칠 전부터 자주 들리던 낯선 소리다. 화장실에서, 거실에서, 그리고 엄마의 침대에서도 들려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궁금한 마음에 무거운 다리를 조심조심 움직여 엄마 쪽으로 다가가 본다.
엄마는 침대 위에서 몸을 좌우로 움직이며 숨을 몰아쉰다. 이윽고 다리를 들어 올렸다 내리는 동작을 반복한다. 스스로 운동을 하고 있는 모습에 순간 놀라움이 밀려온다. 중환자실에서 노환으로 고비를 넘긴 분이 맞나 싶다. 조용히 내 방으로 돌아오며 그 장면을 되새긴다. ‘엄마가 다시 시작하셨구나…’
잠시 후, 일차 운동을 마친 엄마는 화장실로 향하신다. 용무를 보신 후에도 한참 동안 나오지 않으신다. 걱정스런 마음에 살며시 문 쪽을 보니, 화장실 수건걸이를 두 손으로 잡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계신다. 입술 사이로 들리는 숫자 셈, “198, 199, 200.” 그리고는 살짝 숨을 고르며 목욕 의자에 앉으신다.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세수대야에 물을 담아 발을 담그시며 조용히 휴식을 취하신다. 이 모습은 예전의 엄마가 아니다. 운동을 하고 땀을 흘리고, 다시 땀을 닦는 모습이라니. 과거엔 자식들이 아무리 운동을 권해도, 아프다는 이유로 거절하시곤 했다. 우리는 점점 약해지는 엄마의 몸이 늘 걱정이었고, 무기력한 시간이 길어질까 두려웠다.
아침식사 전에 나는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엄마, 요즘 운동 열심히 하시네요. 몸무게 한번 재볼까요?” 예전 같으면 짜증부터 내셨을 텐데, 오늘은 뜻밖에도 “그래, 한번 재보자” 하신다. 병원에서 마지막으로 잰 몸무게는 106kg. 수술 후 재활조차 버거운 몸이었다. 체중계를 엄마 발 앞에 놓고, 보조워커를 이용해 천천히 일어서신다. 우리 둘 다 숨을 죽인다. 숫자는 103.5kg.
숫자를 확인하신 엄마는 뜻밖의 말씀을 하신다. “30킬로는 더 빼야겠어.” 깜짝 놀란 나는 “엄마, 너무 무리예요. 90kg만 되어도 움직이기 훨씬 편할 거예요”라고 말해 본다. 원래 쉽게 결심을 바꾸지 않는 분인데, 엄마에게 무슨 변화가 생긴 걸까. 무슨 각오라도 하신 걸까.
생각해보면, 친정식구들 모두가 내 모습을 보고 동기부여를 받는다. 운동을 거의 안 하던 엄마도 밤마다 스트레칭을 시작했고, 가까이 사는 언니는 요즘 저녁마다 종종 찾아온다. 형제들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소식은 그 자체로 다행이다. 아프고 나서야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걸, 우리 모두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이틀 후 다시 체중계를 달라고 하셨다. 조금 덜 먹었으니 또 내려가 있기를 기대하시는 듯하다. 다시 확인해본 숫자는 101.5kg. 이틀 만에 2kg이 줄었다. 엄마는 몸으로 의지를 보여주신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나도 모르게 숙연해진다. ‘이건 내가 배워야 할 태도다.’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그다음이었다. 실내에서는 네발 보조워커에 의지하며 다니시던 엄마가 오늘 아침엔 세발 지팡이만으로 걷기 시작하셨다. 힘겹고 더딘 걸음이었지만,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엄마의 작은 기적은 분명히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되고 있다.
우리는 이제 매일을 기록할 것이다. 다시 걷는 엄마의 발걸음처럼, 나도 오늘의 기적을 매일 조금씩 써 내려가고 싶다. 이 기적은 언젠가 나의 글에서, 엄마의 몸에서, 그리고 우리 가족의 일상에서 천천히 꽃필 것이다.
https://suno.com/s/N0ylZchsGpPEgarT?time=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