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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을 자격이 없다는 말

by 또 다른세상

이른 새벽, 화장실 문 옆에 흰 속옷이 조심스레 접혀 있다. 몇 번이고 눈에 밟혔지만, 세탁기에 넣지 못했다. 허리를 숙이는 일조차 버거워 가만히 바라보다 말았다. 밤새 근육통에 진통제를 두 알이나 먹고도 몸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자꾸 시선이 느껴졌다. 아무 말 없이, 나의 행동을 지켜보는 눈. 바로 엄마다.

‘어서 치워야지, 네 실수잖아.’ 속으로 그런 말을 하고 계신 건 아닐까. 그런 오해가 내 안에서 피어오른다. 그러다 문득 엄마 앞에 고개를 숙였다. 네 번째 반복된 실수였다. 조심스레 속옷을 집었고, 엄마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조용히 시선을 피했다.


“속옷 챙겨 입었어요?” 조심스레 물었다. 엄마는 눈을 마주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신호가 오면 바로 화장실에 가야 한다고 그렇게 말씀드렸는데, 엄마는 가끔 참으신다. 자신은 아직 괜찮다고, 조금만 더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걸까. 샤워도 권했지만, 오늘도 조용히 거절하셨다.


아침을 드시고 요양사 선생님과 함께 동네 놀이터로 산책을 나가신다. 부채 두 개와 모자를 챙기신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잘 다녀오세요” 인사했지만, 마음 한쪽이 불안하다. 요즘 따라 작은 실수가 잦아졌다. 그래도 집에서 한 번 겪으셨으니 오늘은 괜찮겠지, 애써 다독인다.


나는 미역국을 데우고, 보리차를 끓였다. 어느덧 두 분이 돌아올 시간이 되었다. 현관문이 열리는데, 엄마는 얼굴이 노랗게 질려 휠체어에 앉아 계셨다. 꼼짝도 하지 않으신다.

“움직이면 나올 것 같아…”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요양사 선생님이 다정하게 말씀드린다. “잘 참고 일어나 보세요, 어르신.” 엄마는 조용히 나를 바라본다. 그 눈빛에 담긴 감정을 나는 다 알지 못한다.


천천히 일어서는 엄마. 양말 끝으로 물이 흘러내리고, 거실 바닥에도 소변이 떨어진다. 요양사 선생님은 익숙하게 엄마를 화장실로 모신다. 나는 묵묵히 걸레를 집는다. 그리고 조용히 점심상을 차린다. 마음은 속이 터질 듯 복잡한데, 어떤 말도 쉽게 꺼낼 수 없다.


잠시 후, 엄마는 미역국을 다 드시고 밥에 고추장을 쓱쓱 비벼 드신다. “이렇게 비벼 먹으니 맛있다~” 하시며 요양사 선생님께도 한 숟갈 권하신다. 그렇게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식사를 하시더니, 문득 수저를 내려놓고 말씀하신다.


“오줌이나 싸면서 밥 먹는 내가 한심해…”


그 말에 숨이 턱 막힌다. 요양사 선생님이 조용히 덧붙인다. “내일은 조금만 더 일찍 집으로 들어와요, 어르신.” 나는 눈앞에 고등어를 가리키며 “이건 왜 안 드세요?” 하고 엉뚱한 말을 꺼낸다. 너무 많은 감정이 얽혀 차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엄마에게 놀이터는 유일한 즐거움이다.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웃는 그 시간만큼은 아픔도, 나이듦도 잠시 잊는다. 그래서 시간을 잊고 대화에 빠져드는 일도 잦다. 화장실 가자고 말씀드려도 괜찮다고 손을 젓는 엄마다. 그리고 때로는 그 괜찮음이 무너진다.


새벽의 작은 실수. 엄마 마음은 어땠을까. 자꾸 생각난다. 그런데도 나는 그 어떤 말도 쉽게 꺼내지 못했다.


그저 조용히 말했다.


“엄마, 나이 들면 다 그래요. 어르신들 기저귀가 왜 있는 줄 아세요? 다 필요하니까 있는 거예요.”

그리고,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속으로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 지금처럼만 지내요. 잘 드시고, 친구분들이랑 웃고 이야기하고… 실수해도 괜찮아요. 엄마니까, 다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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