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2부 면도날처럼 날카롭게
현실을 인식하라
47. 불행을 잘 극복하는 것보다 아예 처음부터 피하는 게 더 낫다.
어렵고 위험한 일은 피하라. 이성의 불빛 아래 걷는 사람은 항상 문제 앞에서 매우 신중하다. 그런 사람은 위험을 극복하는 것보다, 처음부터 관여하지 않는 것이 더 용기 있는 행동임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이미 그런 일에 관여한 어리석은 사람이 있더라도 어리석은 자가 둘이 되지 않도록 그 일을 피한다.
아이들이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남편은 직장을 잃었다. 돌봐주던 분마저 갑자기 이사를 간다고 했다. 당장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었다. 아이들이 어리니 누군가는 곁에 있어야 했다. 나는 가장으로서 회사를 다녀야 했고, 자존심을 내려놓고 남편에게 말했다. “당분간은 당신이 아이들을 잘 돌봐줘. 돈은 내가 벌게.”
수입은 반토막, 대출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하지만 아이들만은 잘 돌보고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2년쯤 지났을까, 남편은 점점 사업 쪽에 관심을 보였다. 아이들 케어보다는 외부 사람들과의 만남이 잦아졌고, 학부모들과 자주 어울렸다. 특히 둘째 아이 엄마와 유독 가까워 보였다. 결국 그 둘은 올바른 어른의 행동을 하지 못했다.
어느 날 남편은 체인점을 하겠다고 했다. 나는 소박한 카페 정도가 낫겠다고 말했지만, 그는 이미 레시피 교육까지 마쳤고, 오직 돈만 필요하다고 했다. 2억이라는 돈. 직장 없는 남편은 나에게 대출을 요구했다. 설득은 감언이설로 시작됐고, 끝내 나는 못 미더운 상황 속에서도 대출을 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였다. 남편과의 틈은 걷잡을 수 없이 벌어졌다. 지금 돌아보면, 내가 불행을 자초한 순간은 바로 그 사업 승낙이었다. 그 후로 20년, 남편은 나를 온갖 방식으로 속였다. 결국 집에는 빨간 딱지가 붙었고, 빚쟁이들이 회사와 집 근처는 물론 아이들 학교까지 찾아와 협박했다. 남편은 해결은커녕 늘 남 탓만 했다. 나는 일터에서도, 거리에서도, 심지어 집 앞에서도 끊임없이 불려 다녔다. 직원들까지 나를 찾아와 밀린 월급을 달라고 했다.
남편은 지금도 내 차를 가져간 채 돌려주지 않는다. 보험료나 세금은 한 번도 낸 적 없다. 그는 늘 “힘들다”, “죽고 싶다”는 말만 반복한다. 정작 나는 병에 걸렸고, 앞으로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예감까지 든다. 그래서 모든 걸 정리하고 싶어 차를 돌려달라고 문자를 보냈다. 돌아온 답장은 입원해서 차를 가져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불행은 결혼과 함께 시작됐던 걸까. 나는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나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평범한 가정을 꿈꿨지만, 감정에 이끌려 선택을 했다. 내가 만든 불행은 결국 병이 되었다. 치료가 끝나기도 전에 또다시 새로운 스트레스를 견뎌야 하는 나날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혹시라도 비슷한 상황에 놓였다면, 부디 처음부터 불행을 피하길 바란다. 그것이야말로 진짜 용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