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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들어본 엄마 이름의 카드

by 또 다른세상

며칠 전부터 엄마는 놀이터에서 듣고 온 이야기를 자주 꺼내셨다. 요즘 어르신들 사이의 화제는 ‘민생회복지원금’이었다. 누가 언제 주민센터에 갔다고 하고, 얼마를 받고 어떻게 받았는지 서로 이야기 나눈단다. 평소엔 방송에도 관심이 없으시던 분이었는데, 매번 다녀오신 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시는 걸 보니 마음이 끌렸던 모양이다.


25일, 주민등록번호 끝자리로 엄마가 신청 가능한 날이었다. 아직 신청 기간이 남아 있으니 천천히 가도 된다고 생각했지만, 어르신들 사이에선 이미 "누가 뭘 샀다더라"는 얘기가 오가는 터라 마음이 급하셨던 것 같다. 마침 둘째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가 꼭 오늘 가야 한다고. 하지만 언니는 바빠서 동행이 어렵고, 요양사 선생님과 함께 가야겠다고 했다.


연일 이어지는 무더위에 엄마가 외출하는 게 내심 걱정이었다. 요양사님도 주민센터 신청 창구가 2층이라 오르내리기 어렵다고 걱정하셨다. 다행히 가까운 농협에서도 신청이 가능하다고 하니, 요양사님께서 직접 나서주셨다. 내 건강 상태를 알고 계시기에, 나 대신 엄마와 함께 가주신 것이다. 휠체어를 밀고 한여름 뙤약볕을 나서는 일이 쉬운 건 아닐 텐데 말이다.


운동 삼아 다녀오겠다는 엄마의 말에 더는 말릴 수 없었다. 주민등록증과 통장을 챙기시고, 덥다고 부채까지 손에 들고서야 문을 나서셨다.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하라고 신신당부했지만, 더위와 엄마의 건강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두 시간이 지나 문이 열리고, 엄마는 환하게 웃으며 들어오셨다. “잘 됐어?”라고 묻자, 엄마는 카드 하나를 꺼내 보이셨다. “현금카드 만들었어.” 가까운 농협에서는 발급이 되지 않아 조금 떨어진 곳까지 갔다고 했다. 카드 비밀번호는 잘 기억해두라고 몇 번이나 강조하셨고, 통장에 든 돈도 쓸 수 있는 카드라며 설명을 덧붙이셨다.


엄마 이름으로 처음 만들어본 카드가 무척 신기하셨던 모양이다. 시골에서 통장 하나로만 살아오셨던 엄마는 카드가 필요하다는 것조차 모르고 계셨다. 그날 저녁엔 둘째 언니와 통화하며 민생회복지원금을 카드로 받았다고 자랑까지 하셨다.


요양사님의 세심한 배려와, 낯선 것에 적극적으로 다가서려는 엄마의 용기가 고맙고 대견했다. 나중에야 알게 됐다. 엄마는 놀이터에 나가 카드 만든 이야기를 이웃들과 나누며, 하루 종일 웃고 계셨단다. 작고 소박한 변화였지만, 엄마에게는 오랜만에 찾아온 자존감과 활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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